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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Jan 13. 2024

어쩌다 한방

새로운 시도(2) 한방치료를 시작하다.

꽤 오래전부터 왼쪽 골반과 엉덩이 어딘가가 아팠고 그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다. 정확한 부위도 모르겠고, 그래서 정확한 병명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누워서 하는 운동을 굉장히 싫어하고 거의 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누울 때 유독 그 부위가 아프다. 갑자기 찌르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 오면 가만히 누워 몸을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하다 보면 왼쪽 그 부위에서 '딱' 소리가 나면서 뼈가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그때 한결 편안해진다. 거의 십여 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21년 7월 아주 더웠던 그날 사건이 발생한 거다.


누워서 쿨쿨 자고 있는 강아지의 꼬순내를 맡기 위해 엎드렸고, 그 순간 갑자기 재채기가 나왔다. 푸엣취와 동시에 기억 저 멀리 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누가 그랬었지. 재채기는 1톤 트럭에 치이는 충격과 비슷하다고. 그래서 그런 걸까, 나의 왼쪽 어딘가에 정말 강한 통증이 왔고, 그날은 '뚝'이건 '딱'이건 맞춰지는 소리 없이 일어나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밤 이후, 나는 제대로 누워서 잠조차 잘 수 없었다. (글로 쓰니 다시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식은땀이 난다!)


이전 글에서 또다시 MRI를 찍게 됐다는 게 바로 저것 때문이었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데, 누워서 다리를 움직이거나 몸을 돌리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 너무 아프기도 했고, 병명이라도 알고 싶어서 MRI를 찍었다. 담당 의사 말로는 디스크가 튀어나와 신경을 건드려서 그렇다고 당장 시술인지 수술인지 여하튼 오늘, 내일 중으로 입원을 하라 했다.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는데, 동일한 시술 대기자들이 찍어낸 듯이 똑같은 상담을 받고 있어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어떤 한의원에 가게 됐다.


한의원 예약 당시, 문진표를 작성하라길래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허린지 골반인지 엉덩인지 그 어딘가에 대한 내용을 적고, 고민하다 편두통이 있다 적었다. (왼쪽 어딘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끝내고 본격적으로 편두통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몇몇 사람은 양방만 신뢰하고, 한방을 신뢰하지 않는데 사실 병만 고친다면 한방이나 양방이나 상관없었다. 이미 양방에서는 수술을 권한 마당에 그런 걸 따질 여유도 없었고... 게다가 내가 간 한의원은 특이하게 엑스레이나 MRI가 없으면 진료를 안 해 주는 곳이기도 해서 믿음이 갔다.


내 전신 엑스레이를 본 한의사는 편두통은 턱과 목때문에 온 것이라 했고, 척추측만증도 매우 심하기 때문에 지그재그로 꼬여있는 몸을 얼추 인간답게 잡아주면 편두통도 좋아질 것이라 했다. 나는 묘하게 왼쪽 얼굴이 오른쪽보다 좀 넓은 편인데, 한의사가 바로 그 점을 짚어줬고, 턱뼈가 한쪽이 더 넓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발란스가 깨진 것이라 설명했다. 평소에 '아'하고 입을 벌릴 때, 턱도 좀 틀어진 편이라(오른쪽으로 아래턱이 좀 더 돌아간다.) 왠지 의사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때부터 거의 1년을 넘게 한의원을 다녔다. 초반엔 한의원에서 진행하는 교정을 했고, 어깨와 두피, 목 등 온몸에 침을 맞고, 한약도 꾸준히 먹었다. 그리고 한의사의 조언에 따라 예방약인 토파맥스를 끊었다. 사실 토파맥스는 나에게 별로 효과가 없는 약이었다. 민망하지만 효과를 따지기도 어려웠던 게, 약을 쪼개서 아침, 저녁으로 먹어도 손이 저리길래 나중엔 하루에 반알만 복용했고, 이를 안 의사 선생님(양방)이 '그럴 거면 먹질 마.'라고 화를 내시기도 했다. 그래서 한의사가 토파맥스를 끊으라고 했을 때, 아무 망설임 없이 끊었다.


전 해 여름과 다음 해 여름을 같이 보낸 한의원. 생각해 보면 공식적인 치료종결도 아니었고, 지겨워서 중단했다.

두통약을 먹지 않을 수는 없었다. 대신 한의사는 최대한 참을 만큼 참아보고 두통약을 복용하라 헀는데, 사실 치료 기간 동안 이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양방에서는, 그리고 내가 아는 편두통 지식은, 두통의 징조가 보일 때 약을 복용해야 더 큰 고통을 막을 수 있다는 건데, 한의사는 일단 징조가 보여도 먹지 말고 참아보라고 했고, 이 때문에 거의 결정장애가 올 지경이었다. 결론적으로 이 부분은 환자 재량에 따라 판단하면 되는 거고(뭐가 맞고, 뭐가 그르다 할 수 없다. 개인 컨디션에 맞추면 된다.) 사실 나는 두통징조가 있다가도 그냥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도 있어서, 증상이 있다고 약을 막 복용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통을 참지도 않았고. 그냥 적당히 수위를 봐가며 복용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1년 동안 한의원을 다니며 나는 우수 환자가 되었다. 여기서의 우수 환자란 선생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며 치료를 잘 받는 환자가 되겠다. 그래서인지 가끔 서비스로 약침도 놔주고, 무료로 교정도 짧게 해 주고, 측만증에 좋은 운동법도 공짜로 알려주셨다. 두통도 많이 좋아졌다. 두통일기라는 어플을 쓰는데, 실제로 한의원을 다니면서 한 달 평균 4회꼴로 먹던 두통약이 1회, 많아봤자 2회로 줄었다. 토악질까지 하는 편두통 발작 같은 증상도 없었다. 지금은 다시 한 달 평균 4회꼴로 약을 먹지만, (깨달은 점: 완벽히 유지되는 치료는 없다.) 당시 효과를 꽤 많이 본 치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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