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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로케 May 25. 2024

샴푸의 요정

여성일지, 남성일지 모르겠지만요.

2년 전 여름이었습니다. 7월 말이었나, 한 여름의 중반에 딱 걸친 그런 밤이었어요. 날이 무척 덥길래 창가에 머리를 두고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습하고 더운 바람 사이로 비누향기인지, 샴푸향기인지, 딱 씻고 나왔을 때 맡을 수 있는 그런 향기 있잖아요. 그런 향이 솔솔 나는 거예요. '와, 향기 정말 좋다.' 생각하며 책을 읽었거든요. 그 뒤로도 비슷한 시간, 창가에 머리를 대고 책을 읽으면 그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는데 얼마나 좋던지.


냄새가 뇌에 주는 영향이 얼마나 강한지,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상황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날 읽었던 책까지 또렷하게 기억나니 말 다한 거죠. 후각이 신생아 뇌 발달에 큰 영향을 준다잖아요. 정말 '향'은 중요한가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20대 초반부터 '나만의 향'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지나가기만 해도 '어? OO이가 여기 있었나 보네.'라고 생각되는 사람이요. 그게 아무리 지독한 향수라도, 자기만의 향이 있는 사람이 무척 부러웠어요.


갑자기 이런 생각이 왜 났냐면요. 우습게도 이것도 '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향보다는 냄새에 가깝지만요. 5월인데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어찌나 더운지, 창을 다 열어놨습니다. 한창 머리카락을 말리는데, 글쎄 어느 집인지 생선을 굽는 것 같아요. 생선냄새가 풀풀 납니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니 이 시간이면 제가 그리워하던 그 샴푸냄새가 은은하게 나야 하는데 생선냄새라니. 샴푸의 요정이 여성일지, 남성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이사를 갔나 봅니다.


이런 생선구이 냄새였어요. ⓒpixabay

'나만의 향'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이전에 누가 '어떤 브랜드를 제일 좋아하세요? 왜 좋아하세요?'라고 물었는데 답을 못했습니다. 갑작스럽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날 이후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이거 보자마자 너 생각이 났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제법 취향이 단단해진 듯해서 기분이 좋아요. 샴푸향에서 시작해, 자기만의 취향을 가지라는 이야기로 끝나지만 어쨌든 다 제가 좋아하는 거네요. 샴푸향도, 자기만의 취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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