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반납하러 잠깐 도서관에 들렀다가 만화 코너로 갔다. 문 닫기 30분 전이라 딱히 '어떤 만화를 봐야겠다.'라는 마음은 없었는데 책장을 슬슬 지나면서 '와, 이 만화도 있다고? 와, 이 만화도 있고? 와, 이건 꼭 봐야겠는데?'라는 감탄을 내뱉던 그때. 눈에 들어온 만화가 하나 있었다. '사쿠라 사쿠.'
'사쿠라 사쿠'는 사키사카 이오의 순정만화다. 20대 중반쯤에 사키사카 이오의 '스트롭 에지'라는 만화를 보고 작가의 팬이 된 나는, 사키사카 이오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만화책을 구매해 봤다. 만화책을 실물로 구매한다는 건, 이건 굉장한 찐 팬임을 인증하는 행위라 생각한다. 여하튼 스트롭 에지부터 시작해 아오하라이드, 사랑받고 사랑하고 차고 차이고(이하 사사차차)까지 구매해서 보다가 사사차차부터 사랑이 시들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사사차차부터 스토리가 붕괴되기 시작했고(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작화가 비슷하다 보니 이 주인공이 저 주인공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키사카 이오 특유 여주들의 성격 때문에 만화가 점점 질리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 뒤로 신작이 나왔지만(그것이 사쿠라 사쿠) 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제, 사쿠라 사쿠가 내 눈에 들어왔다. 뭔가에 홀린 듯 1권을 집어 빈자리에 대충 걸터 앉았다.
어느덧 나이가 꽉 차 30대 중년..에 접어든 나는 어느 순간 순정만화를 볼 때마다 설렘보다 슬픔이 더 먼저 찾아왔다. 어제도 그랬다. 사쿠라 사쿠 속 주인공들, 특히 여주는 여전히 다른 사키사카 이오의 만화처럼 답답하고 바보 같고 착해 빠졌고, 흑발머리 남주는 잘생기고 쿨했다. 얼굴을 붉히는 모습에 심장 부근이 뻐근하기보다는 '음. 아, 이런. 음' 같은 탄성이나 내뱉는 나는 변했다. 작가도, 만화 속 주인공들도 모두 같은 페이지에 있는데 나만 변했다.
순간적으로 설렜던 적이 있다. '와, 나 아직 순정만화 보고 설레는구나!' 기뻤지만 어느 순간 슬펐다. 누군가를 저렇게 아무런 조건 없이 좋아했던 적이 언제였더라, 누군가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적이 언제였더라, 내 마음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던 게 언제였더라... 순간 내 머릿속에 '언제였더라'라는 말이 가득 차 올랐다. 순정만화는 이제 내 마음 한구석 외로움을 건드리는 작은 슬픔이 된 것 같아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