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처음 배운 아이가 열심히 간판을 읽어보듯
요즘엔 많은 생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사라집니다. '갓 구운 생각'에 딱 어울리는 생각들이었는데 말이죠. 내년엔 손바닥 반 만한 사이즈의 작은 노트를 사서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빠르게 써볼까 해요. 좀 더 다양하고 풍성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잡기도, 쓰기도 편한 그런 노트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죠? 요즘 제가 느끼는 감정을 아주 잘 표현한 말입니다. 의술에 서투른 사람이 사람 고쳐주겠다고 나대다가 사람을 잡기까지 하고, 뭐 그런 부류의 이야기예요. 아는 지인이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심리학을 배우러 대학원에 갔어요. (대학교일 수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심리학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대학원까지 가기엔 필수 전공이라고 해야 하나요? 여하튼 그런 것들이 부족해 생각만 하다 접었는데, 선뜻 실행에 옮긴 지인이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대학원을 다니더니 모든 상황을 다 '심리'렌즈를 끼고 분석하려 하더군요. 제 지난 글을 기억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돌발성 난청과 급성 두드러기로 힘든 11월을 보냈는데요. 지인에게 이 말을 하니 대뜸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대답이었습니다. "네가 어릴 때 받은 학대 트라우마가 지금 몸으로 발현되는 거야."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조금 황당하더군요. 학대 얘기가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그분은 제 어린 시절을 모릅니다.)도 모르겠고, 전혀 예상치 못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헛웃음이 났습니다. 이 이야기를 친한 친구에게 하니까 뭐 그런 새기(욕을 조금 순화시켰습니다.)가 다 있냐고 당장 연을 끊으래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니 이 분이 이런 식의 대화를 시작한 게 딱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였어요. 그전까지는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했거든요.
팀을 옮기는 것에 대한 일상적인 말을 해도, 제 무의식에 문제가 있다로 모든 대답이 귀결되니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더라고요. 선무당인 그분이 저를 잡기 전에, 제가 그분을 먼저 잡을 것 같아, 눈치채지 못하게 슬금슬금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뭐든 너무 과몰입하면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하네요. 아니면 그런 거 있잖아요. 언어를 처음 배운 아이가 눈에 보이는 족족 열심히 간판을 읽어보듯, 새롭게 입문한 학문이 너무 즐거워 모든 현상을 '심리'렌즈를 끼고 해석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