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벽장을 부수고 나온 '나'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을 보고 나서요.

by 고로케

요즘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유병욱 작가의 『인생의 해상도』인데요. 책을 보면 작가는 '어린 시절 벽장 속에 있던 나를 깨우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다가 무릎을 탁 쳤어요. 왜냐하면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제 벽장 속의 '나'는 벽장을 부수고 나왔거든요.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을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서요.


'진격의 거인'은 한 10년 전?에 초반만 읽다가 말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킹왕짱 갓 리바이 병장이 나오기 전에 읽기를 중단한 만화책이에요. 중도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작화 때문인데, 초반 등장인물이 10명이라면 그 10명이 다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이 안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중도포기했던 것 같아요. (바보 같은 과거의 나!)


지금 저는 '진격의 거인'에 빠졌습니다. 빠진 것뿐 아니라, 진격의 거인을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성우 시장, 애니메이션 ost시장, 일본어까지 제 관심사가 확장되고 있어요. 마치 물감 한 방울을 도화지에 떨어뜨린 것처럼요. 만화와 언어를 좋아했던, 더 나아가 크리에이티브를 요하는 일을 좋아했던 '벽장 속의 나'를 진격의 거인이 깨운 거죠.


20대 중반에 스페인어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이력서에서 dele 점수를 본 면접관이 묻더군요. "우리 회사는 스페인어 필요 없는데, 이건 왜 배웠어요?" 진실을 밝히자면 이렇습니다. FC바르셀로나의 열렬한 팬이었는데요, 그중에서도 메시를 정말 좋아했어요. 어느 날 유튜브에서 메시 영상을 보는데 메시가 말하더군요. "No English. Only Spanish." 아르헨티나 출신이긴 하지만, 영어를 아예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저는 그 길로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이유가 참 간단하죠?


메시가 서울에 왔을 때 경기도 보러 갔는데, 축구는 안 하고 벤치에서 잠만 자다가 욕을 쌍끌이로 먹고 돌아가더군요. 그 뒤로 스페인어에 대한 열기가 조금 식었고 지금은 '아주 조금 할 줄 안다.'정도가 됐어요. 과거의 저는 하나에 미치면 진짜 바닥까지 가봐야 직성이 풀렸는데, 지금 제가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게 이런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지 몰랐어요.(웃음) 그래서 요즘 '진격의 거인'이 가져다준 열정이 싹을 틔우는 걸 보는 게 참 재밌고 고맙습니다.

소소한 돈지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 만화책 전집도 샀다 합니다.


keyword
이전 21화'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