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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Dec 05. 2023

도쿄의 삼십대 여성은 아름답다.

한국엔 없고 일본에 있는 것.

나는 30대가 된지 오래되었지만 30대스러운(?) 옷을 입지는 않는다. 20대에 입던 옷을 거의 그대로 입고 있다. 강희재 씨가 운영하는 '업타운걸'이라는 쇼핑몰을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뻔질나게 구경을 가고 있다. 나는 점점 늙지만, 그들이 파는 옷은 늙지 않는다. 20대에 사업을 시작해 이제는 아마도 40대가 된 강희재 씨도 여전히 20대 같은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절대 나이들지 않는 그녀! (출처: @heejaeholic 인스타그램)



한국의 30대 여성이 '아줌마' 소리를 싫어하는 이유는 '아줌마'가 지칭하는 이미지 때문이다. 촌스러운 화장에 빠글빠글한 파마머리. 우리 어머니 세대에는 20대에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고 고된 가사노동 (및 생업)에 시달리며 자신의 미를 가꾸는 것을 뒷전으로 했었다. 재벌가 며느리처럼 아예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트위드 정장을 입거나, 아니면 거의 외모를 손보지 않는 아줌마가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발목까지 오는 인견 소재의 '월남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보수적인 아빠가 그 복장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엄마가 화장을 하거나 매니큐어를 칠하면 "어디 밤무대라도 나가려고 그래?"라고 핀잔을 주었다고. 그래서 한 때 시크한 미대생이었던 우리 엄마는, 결혼과 함께 K-아줌마가 되었다.


이에 대한 반감인지, 내 친구들을 둘러보아도 결혼/출산과 무관하게 아줌마처럼 입고 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들 20대의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20대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 20대 사이에서 배꼽티에 통바지가 유행하면 그렇게 입는다. 아마 40대가 되어도 그럴 것 같다. 50대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아줌마 옷을 입는 사람들이 생길까? 그렇게 아줌마 스타일은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하는'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시애틀의 30대도 비슷하다. 미국의 30대는 꾸미는 사람과 꾸미지 않는 사람으로 나뉜다. 꾸미는 사람은 20대처럼 몸매를 드러내는 피트니스 옷을 입는다. 꾸미지 않는 사람은 몸매 때문에 어떻게 보아도 딱 아줌마 스타일이다. 생각해보면 브랜드도 연령별로 옷을 따로 만들지 않기에, 하나의 스타일을 온 연령대의 여성들이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3-40대의 고유한 패션이 존재할까.


이번, 도쿄의 거리를 걷다가 내가 발견한 것은, 30대 또는 40대 각각 연령에 맞는 스타일이었다. 단정한 컷트 머리에 넉넉한 사이즈의 베이지색 패딩, 무릎까지 오는 치마, 양말, 그리고 굽이 낮은 신발 같은. 딱히 '늙은' 스타일은 아니지만, 20대 여성이라면 입지 않을 법한 스타일이었다.


'네, 저는 나이가 들었고, 그게 좋답니다.'라고 온 몸으로 말하는 듯한.



이런 일본 3-40대 여성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 '야노 시호'라고 생각한다. 야노 시호가 이제 47세가 되었으니 세 살짜리 사랑이가 모든 국민의 마음을 빼앗던 시절에는 30대 였을 것이다. 그 때도 나는 쇼를 보면서 '예쁜 아줌마'라고 생각했었다. 우리 나라의 연예인들과 달리, 헤어스타일이나 입는 옷이 나이들어 보였다. 피부가 티없이 맑고 완벽한 몸매를 가졌는데도 그랬다.


일본에서 야노 시호 같은 여성들과 맞닥뜨리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보다 분명히 두어 살 어려보이는데 나보다 훨씬 아줌마 같은 패션을 한 사람들.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이런 옷을 입는 걸까? 저렇게 몸매가 좋다면 '업타운걸' 스러운 옷을 입어도 될텐데. 성숙함을 표시하기 위함일까? 나이에 걸맞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남편은 이런 고민을 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30대의 스타일이 도대체 뭔지 잘 모르겠다고. 그래서 이렇게 설명을 해주었다.



"<테라스하우스>에 나오는 호스트 아주머니와 <돌싱글즈>의 이혜영 씨를 떠올려봐. <테라스하우스>의 호스트 아줌마 같은데, 이혜영 씨는 전혀 아줌마 같지가 않잖아. 특히 뒤에서 보면 모두 20대인 줄 알거야. 도쿄에 있는 이 사람들은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30대야. 그리고 전혀 촌스럽지가 않아. 30대만의 고유한 스타일이 있다는 것이 나는 너무 신기해."





20대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운동을 하고, 성형 수술을 하고, 피부과를 다니고. 너무 세게 시술을 받으면 인공적인 느낌이 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선을 유지하고자 최대한 노력한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시간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생긴다. 우리는 노오력의 민족이니까! 그 사람들을 선망하면서 '뒤쳐지는' 기분을 느낀다. 겉으로는 건강 때문이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사회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갖추기 위해서다


일본의 여성들을 보면서, 나이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30대 광고 모델은 20대 못지 않은 싱그러움을 자랑하지만, 일본의 30대 광고 모델은 성숙하고 편안하고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나이들어 보인다. 그리고 아름답다. 도쿄에서 살았다면, 나도 지금쯤 아줌마 스타일의 옷을 입게 되었을까? 스티치가 놓인 에코백을 들고 니트 모자를 쓴 그들처럼.


일본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30대 여성이 30대다운 아름다움을 편안하게 뽐낼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좋겠다. TV나 회사에서도 그런 여성들이 자주 보인다면 좋겠다.



덧. 우리나라에도 아주머니층을 겨냥한 스타일리시한 브랜드들이 있다. 비싸긴 하지만....



메종 르베이지와 김윤진 씨의 르베이지 화보 (출처: 우먼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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