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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Nov 30. 2023

도쿄 사람의 공간.

손바닥 만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하는 사람들. 


일본인의 방에 대한 감각. 


대학원에서 논문 세미나 수업에서 한 학생이 VR기기 이용자들의 부의 수준을 '방의 크기'를 기준으로 조사했다는 논문을 소개했다. 이 때 한 일본계 교수님이 손을 들고 "이 연구는 미국을 대상으로만 진행된 건가요? 예를 들어, 일본과 미국의 방에 대한 감각이 너무나 다른데, 방이 작다고 해서 부의 수준이 낮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을 했다. 아, 도쿄와 홍콩은 정말 집이 작다고 했었지. 그 질문이 왠지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알게 된다.  일본 사람들은 정말 작은 곳에서 많은 것을 해내는구나. 



엄청나게 조그만 음식점들. 


도쿄의 골목 골목을 돌면서, 정말 충격적으로 작은 음식점들을 많이 보았다. 이번 남편의 출장 미션 중 하나가 '요코초'(골목)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낮이나 밤이나 하모니카 요코초, 신주쿠의 골든 가이와 신주쿠 요코초, 우에노 등 오래된 골목에 형성된 상점거리를 구석 구석 돌아다녔다. 각 가게는 5평이 채 되지 않아보였다. 


아주 작은 주방에 5명의 사람들이 불 앞에서 일을 하고 있고, 내가 지금 앉아 있는 공부방의 1/4만한 크기에서 2명이 야끼토리를 굽고 8명이 옹기종기 어깨를 붙이고 앉아 식사를 한다. 한국의 김밥천국이나 칼국수 음식점도 이렇게 빡빡하게 운영하는 경우가 있지만, 도쿄의 상점은 아예 차원이 다르다. 옆 사람과 어깨를 포개며 식사를 하고, 도로를 지나갈 때 식사하는 사람을 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좌) 의자가 도로로 살짝 나와 있다. (우) 골든 가이의 문닫은 상점들.



오사카에 갔을 때도 작은 상점을 보았지만, 도쿄의 작은 상점들은 놀라울 정도였다. 워낙 인구가 많이 몰린 대도시라 이렇게 공간 한 줌 한 줌이 소중한 것일까? 그렇게 작은 곳에서 요리를 내고 계산을 하려면, 끊임 없이 치우고 치우고 버리고 또 버려야 할 테다. 일본에서 정리의 신 '마리에 콘도'가 나왔다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살다보면 사람끼리 부대끼는 것에도 익숙해지는 듯하다. 남편은 길 거리에서 어깨를 치고 가는 도쿄 사람들에 깜짝 놀랐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남편의 어깨를 치고 가고 미안하다고 하지 않았다. 미국 사람들이라면 펄쩍 뛰며 사과를 했을 것이다. 남편은 말했다. 


"도쿄 사람들이 미국인들보다 훨씬 정중할 줄 알았는데..." 


그치만 비좁은 공간을 계속 겪다보니, 우리는 나름대로 우리를 치고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높은 인구밀도의 도시에서 살다보면 타인과 부딪치는 일은 피할 수 없고, 매번 미안하다고 하기도 지치는 일일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넘어가나보다. 남편은, 남보다 빨리 가려고 일부러 밀치는 것은 아니고 길을 가다가 치는 것이라 미운 마음이 들지는 않다고 했다. 



정말 작지만,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 없는 편의 시설을 갖춘 공중 화장실. 


시애틀에선 공중 화장실을 갈 때 용기가 필요하다. 청결도가 복불복이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아주 깨끗하지만, 어떤 곳은 엄청난 냄새와 알 수 없는 액체를 감당해야 한다. 도쿄의 공중 화장실은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있기만 하다면) 아주 깨끗하고 휴지나 시트 클리너가 넉넉히 구비되어 있었다. 물소리가 나오는 음향 장치도 항상 작동했다. 써보진 않았지만 비데도 잘 되리라. 한 번 구비한 이상 고장난 채로 두지 않는 것 같았다. 


신기한 것은 모든 화장실 칸에 아기를 올려놓을 수 있는 베이비 홀더가 있었다는 점이다. 백화점, 지하철, 카페, 어디든.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자 화장실엔 베이비 홀더가 없다는데, 아마 일본도 여성에게 양육 책임이 주어지나보다. 하여튼 변기에 앉으면 무릎이 문에 닿을랑 말랑하는 좁은 같은 공간에 베이비 홀더 같은 추가 설비를 욱여넣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세면대. 비데가 있는 화장실. 아이를 올려 놓는 곳. 옆의 판때기는 옷을 갈아입을 때 신발 벗고 올라가기 위해 쓰는 것이라고 한다.




작지만 사랑스러운 호텔. 


비록 2시간 만에 급히 결정한 여행이지만, 5박이나 묵어야 했기에 나름 여러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호텔을 골랐다. 


1. 가격! 절대 20만원이 안 넘었으면 했다.  

2. 청결. 왠지 모텔 느낌이 나는 빤짝이 침구는 싫었다. 우리 예산제약상 합리적인 초이스는 도요코인 같은 '정갈함'이라고 생각했다.  

3. 지하철 근접도. 택시가 악명 높게 비싼 일본이기에 무.조.건. 지하철을 타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신주쿠 역까지 한 방에 가는 노선의 가까운 곳에 위치한 호텔을 찾았다. 

4. 소음. 남편은 소음이 있으면 잠을 못잔다. 리뷰에 소음 관련 불만이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그렇게 구한 숙박시설이 기요즈미 정원 근처에 위치한 'Comfort Hotel' 이었다. 하룻밤 비용은 15만원(조식 포함). 이케부쿠로에 더 넓은 호텔들이 있었지만, 고토 구 쪽이 하네다 공항에서 가깝고 고즈넉할 것 같았다. 블루보틀이 도쿄에 최초로 상륙한, 오랜 커피의 고장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리뷰에서 좋은 동네 목욕탕이 있다고 하니 그것도 +1 포인트. 호텔에 24시간 운영되는 무료 카페가 있다는 것도 매력 포인트였다. 우리 예산으로 보는 호텔들은 대부분 근사한 로비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철 역 출구에서 30초 걸린다고 했는데, 실제 가보니 5초 수준이었다. 하루에 2만 보 씩 걷는 험한 여행을 하다보니 이 근접성을 여행 내내 감사히 여겼다. 



일본 특유의 우주선 같은 화장실
이 사진은 방이 크게 나온 것..... 다행히 침대는 꽉찬 더블 침대였다. 


호텔방은 작은 줄은 알았지만, 실제 들어가보고 살짝 충격을 받았다. 유스호스텔과 에어비앤비를 포함해 내가 본 방 중 가장 작았다. 남편이 식탁에 앉아 있으면 나는 그 뒤에 있는 냉장고에 닿을 수가 없었다. 식탁 의자가 침대에 닿아 길을 막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 둘 다 서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둘 중 한 명은 반드시 침대 위에 앉아 있어야 했다. 캐리어 두 개를 바닥에 펼쳐놓는 것은 불가능했다. 교통 카드, 동전, 호텔 카드 등을 책상 위에 늘어놓으면 책상이 금방 쓰레기 더미처럼 된다. 그래서 강제로 여행 내내 정리를 했다. 


남편과 밖에서 투닥거린 날이면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고역이었다. 짐이 가득가득찬 방에서 오갈 데 없이 강제로 계속 얼굴을 마주보고 있어야 했으니. 여행기간 동안 우리의 스트레스 레벨이 높았던 데에는 이 좁은 공간이 한 몫 했을 수도 있다. 비좁은 이코노미 석을 타고 와서 비좁은 호텔에서 지내다가, 미국의 (평소 작다고 생각했던) 원베드룸 콘도에 들어서니 운동장 만큼 넓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ㅎㅎ



그래도 우리는 짐이 좀 간편하다면, 이 호텔에 다시 올 의향이 있다!! ㅎㅎ 


먼저, 바로 인근에 위치한 기요스미 정원이 아름다웠다. 우린 마지막 날 공항에 가기 전에 짧게 방문했을 뿐이지만, 입장료 100엔의 가치를 충분히 하는 곳이다. 


호텔 내에 밤 12시까지 영업하는 무료 카페가 있다. 오전 10시부터 24시까지 무료 커피와 간단한 무료 음료가 제공된다. 리뷰에 24시간 영업이라고 되어 있지만, 오전에는 조식장으로 활용되어 카페로는 이용할 수 없다. 조식도 간단하지만 한식, 양식, 스무디까지 제공되어 꽤 실한 편이다. 


카페에는 밤 늦게까지 문제집을 형광펜으로 빼곡이 칠하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대체 왜 호텔까지 와서 저렇게 공부를 하는걸까?' 물으니 남편은 다른 지역에서 도쿄로 시험을 보러 와서 이 호텔을 예약한 사람들인 것 같다고 했다. 아! 그러고보니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시험의 나라겠구나. 


정말 고마웠던 카페. 열공족이 많았다. 


어차피 노트북 족인 나에게 크고 근사한 호텔 로비는 무용지물일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지난 번 교수님이 묵던 샌프란시스코 포시즌스 호텔에서 팀플을 한 적이 있는데, 공간이 넓고 근사하긴 했지만 노트북 충전기를 꼽을 아울렛이 없고 오래 앉아 있기도 애매해서 불편을 겪었다. 차라리 와이파이 잘 되고 아울렛이 넉넉하게 있는 곳이 최고! 


화려했던 포시즌스 호텔 로비 


마지막으로, 호텔의 서비스가 정말 친절하다. 비좁은 공간 구석구석까지 호텔측이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하다. 예를 들면, 욕조가 특이하게 조그맣지만 안 쪽으로 깊다. 그래서 온천입욕제를 풀어 놓고 몸을 담그기엔 제격이다. 왜 다른 곳은 욕조를 깊게 만들지 않을까? 궁금해질 만큼 꽤 훌륭했다. 잠옷이나 면도기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고, 'Do not disturb'를 붙여놓아도 하루치 목욕 수건과 세수용 수건을 문고리에 걸어둔다. 남편이 베개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하니, 예쁘게 포장된 새로 세탁한 베개 2종을 전달해주었다. 


뭐랄까, 겉모습은 소박하지만 내실이 꽉차 있는 곳이었다. 좁은 것만 감수한다면(일찍 예약해서 가급적 트윈 룸을 쓸 것이다) 호텔 서비스로 인해 기분을 망칠 일은 없어 보였다. 심지어 기요스미를 지나는 E선도 경제적인 지하철 노선에 속했다. 도쿄의 지하철은 신기하게도 가격이 노선마다 천차만별인데, E선은 기본 요금이 110엔이고 먼 거리를 가더라도 300엔을 잘 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은 다홍색의 E선에 각별한 애정을 갖게 되었다. 


매일 긴긴 여정을 마치고 기요스미 역에 도착해서 편의점에 야식을 사러 갈 때마다 남편이 내게 속삭였다. 



나는 우리 동네가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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