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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Sep 27. 2021

쉽게 풀어쓴 미국법이 필요해

소개글

안녕하세요. 저는 아름다운 시애틀의 워싱턴주립대학교 로스쿨에서 박사과정(Ph.D.) 3년차에 접어든 학생입니다. 그리고 이번 북 프로젝트를 통해서 제가 그간 관찰해 온 미국의 법체계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한국에 모호하게만 알려져 있는 보통법(커먼로) 국가의 특징,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인권을 신장시킨 주요 판례와 법리에 대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알려드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렵기만 했던 미국법.... 


미국에 오기 전에도 저는 공무원으로서 법령 개정과 정책 수립 업무를 하면서 그리고 법학과 대학원에 다니면서 미국법을 종종 접하였었는데요. 388 U.S. 199, 38 S.Ct. 198 등으로 써 있는 판례번호가 무슨 말인지, 왜 법률을 지칭할 때 48 U.S.C. §388 또는 The Communications Act of 1984 같은 이름을 혼재해서 쓰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연방과 주가 각각 다른 법과 사법시스템을 갖는다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판결문은 너무 길었고, 법률 용어도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 제가 이해가 하기 어려웠던 것이 당연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정말로 미국 법체계는 복잡하고 자본주의적(...)입니다. '자본주의적'이라 함은 50개 주의 판례와 법령에 원활하게 접근하려면 굉장히 비싼 민간 웹사이트를 구독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학생인 기간 동안에는 무료로 접근할 수가 있지만, 졸업 후에는 접근을 못할 듯합니다. 우리나라의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처럼 일목 요연하게 법령과 판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등을 정리해 둔 공공 데이터베이스는 없습니다. 3단 비교표로 법률-시행령-시행규칙을 보여주고 제, 개정 사항을 표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법령정보센터를 얼마나 그리워하였는지! 


이렇게 legal material에 대한 접근성은 낮지만, 미국 사람들은 법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혹시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의 이름을 몇 명 정도 알고 계시나요? (전 잘 모릅니다...) 지나가는 미국 사람을 붙잡고 9명의 연방대법관 이름을 대보라고 하면 아마 3-4명 정도의 이름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는 아마 '종신제'라는 특성 때문도 있을 것입니다. 젊을 때 임명이 되면 수십년 간 재직하기도 하니까요.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처럼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대법관도 있고, '동성애혐오자'(homophobia)라며 돌아가신 후에도 욕을 먹는 대법관도 있습니다. 



아마도 미국 역사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린, 긴스버그 대법관 (출처: 저자 그림)



중요 대법원 판결이 있을 때마다 심층적인 판례 분석 기사가 나오고, 낙태권이나 표결권 등 예민한 이슈에 대해 심리가 이루어질 때에는 어떤 결론이 나올까 일반 시민들도 초조해하고 자신이 지지하는 진영이 더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기부를 하기도 합니다. 또 대법원 판결문이 나올 경우 당일에는 저렇게 출력본으로만 제공이 되기 때문에 기자들은 가장 빨리 보도를 하기 위해 저렇게 뛰어간다고 합니다(핫스팟이 안되는건지 궁금합니다...). 


2015년 동성혼금지 위헌 판결문을 들고 달려가는 기자들 (출처: esquire.com)



더 나아가 일상생활에서도 국민들은 경찰이 자동차 불심검문을 하면 "영장(warrant)"이 있는지 묻고, 범죄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probably cause)가 무엇인지 되물을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법무부가 테러리스트의 아이폰 비밀번호를 풀 수 있도록 애플에 요청을 했을 때 애플이 거부하고 법무부가 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자 미국 국민들의 여론이 뜨겁게 양분되었습니다. 애플의 결정을 지지하는 사람들, 법무부의 반테러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각각 가두시위를 벌이기도 합니다. (결국 법무부가 스스로 기술적 조치를 통해 비밀번호를 풀면서 소송은 취하되었습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법원의 일을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는 미국 사람들을 보면서 감탄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로스쿨 생활의 가장 큰 재미는 연방대법원의 뜨거운 심장이 담긴 판결문을 읽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의 판결문은 정말 길고 이상하지만 저자의 분노와 슬픔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자세하기도 합니다.



연방대법원 판결을 공부할 만한 이유 


매년 100여 개 밖에 나오지 않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문은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애환, 평등과 기쁨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개인이 높은 품질의 공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지, 보편적인 의료에 접근할 권리가 있는지, 동성결혼을 할 권리가 있는지, 테러범인지 의심될 지라도 휴대폰을 도청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는지, 추방당하지 않고 미국땅에 살 권리가 있는지 등 모두 어렵고 복잡한 질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중 상당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판결문의 복잡성과 연방주의 등 우리나라와 다른 기본 전제 때문에 미국법 체계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글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00년 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 중 오늘날에도 유효한 고민을 담고 있는 몇 개의 판결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보기로 하였습니다. 가급적 가장 평이한 언어로 판결문이 탄생한 맥락을 충분히 설명하고 문화적 배경과 관습을 소개하는 에세이도 포함할 계획입니다이 글들을 통해 독자분들께서 인권과 평등,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덧] '수정헌법'이 무슨 말일까? 


혹시 수정헌법 제1조, 수정헌법 제14조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는 First Amendment와 Fourteenth Amendment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Amendment를 개정이라고 번역하기 때문에 저는 처음에 First Amendment가 첫 번째 개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아래 그림에서처럼 헌법 1장~7장까지 마친 후, 그 뒤에 첨부된 1조부터 27조까지의 내용을 지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소 혼란스러운 구조가 형성된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미국 연방헌법 핸드북과 수정헌법


1770년대에 영국과의 독립 전쟁에서 승리한 동부 13개 주는 어떻게 미국 연방정부를 구성할지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독립전쟁으로 인한 빚이 많은 주와 적은 주도 입장이 달랐다고 하구요. 이 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익명으로 Federalist Paper를 발행하며 연방정부와 주 정부 간의 권한 분배를 어떻게 할지, 화폐를 통일할지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쟁을 하게 됩니다. 당시 노예제도 등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여 결국 13개 주는 1788년 의회, 행정부, 사법부의 권력구조에 관한 내용을 담은 헌법을 비준합니다. '비준'이라는 것은 각 주가 해당 헌법 초안의 내용을 지지한다는 것에 투표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해당 헌법초안에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내용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1791년부터 기본권에 관한 내용을 ‘수정헌법(Amendment)’이라는 이름으로 뒤에 조문을 추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수정헌법 제1조는 오늘날에도 매우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 수정헌법 제2조는 개인이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권리로 오늘날 해석되고 있는 무기소지권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4조는 영장 없이 수색이나 압수를 당하지 않을 권리, 제5조는 공정한 형사재판을 받을 권리, 제13조는 노예제의 금지, 그리고 제14조는 평등권(Equal Protection Clause)과 적법절차 권리(Due Process Rights) 등을 보호하는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수정헌법은 제27조까지 제정되어 있으며, 1791년에 마련된 제1조부터 제10조까지를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고 부릅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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