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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복 Jul 20. 2020

사랑은 사랑이다.


사랑은 사랑이다.

내가 사랑한 시간 동안 나는 깊어지고 넓어졌다. 확장된 자아는 다음 사랑에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지나온 모든 시간은 내게 전부 사랑이었을까.

펼쳐진 블록 사이로 사랑인 척 포장한 어둠이 있다.

그때엔 미처 몰랐다고 변명하면, 시간 속에 갇힌 그대들에게 나는 면책될 수 있을까.

그러나 사랑이 아니었노라고 단언할 수 없는 것은 숨길 수 없는 나의 비겁함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사랑이다.     



감정은 순간의 것이지만, 감정이 살았던 시간은 영원의 벗이 된다.

내 감정이 살았던 시간에 대한 기억은 오늘의 공허를 위로하는 시계추 같은 것.

그것을 추억이라고 말하던가.

하지만 내 기억 속에 그대들은 흐릿하게 윤곽을 잃거나 형체가 없다.

나는 무엇을 기억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내 느낌들, 그 감정을 살아내던 찰나의 ‘나 자신’ 일 것이다.

그래, 매 사랑마다 애처로운 것은 그 안에 갇힌 여린 나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가치한 사랑의 기억은 없다.

나는 모든 사랑 앞에서 최선을 다 했으니.     



사랑을 타령하자니 민망하고, 투정하자니 어리석고, 말하자니 아둔하다.

이제 고작 서른여섯 해를 넘어섰을 뿐인 삶이 사랑이라는 광대한 가치를 표현할 길은 없다.

그저 자분 하게 고백하자면 모든 사랑은 나를 키웠다.

사랑은 달큼하기만 하진 않아서, 때로 혹독하고 더러는 고독 안에 무방비한 나를 던지며, 그리하여 처절하게 외롭게 한다. 사랑을 전부 감정의 것으로 이해하면  불행이 싹트는 이유다.     



스캇 팩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사랑은 분리됨에 있다”라고 했다.

그의 말을 이해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 더딘 기억들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가늠해 본다.

당신과 내가 분연히 분리되어 애써 멀어져 있을 때 사랑은 사랑이 된다는 것을.

내 어머니의 사랑을 그렇게 깨달았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살던 시간에 힘입어 오늘과 내일을 살아간다.

서로의 영혼에 키스를 퍼붓듯 뜨겁게 달궈진 시간도, 각자의 삶을 이어가는 분리의 여백을 통해 익는다.

그리움은 사랑을 숙성시키고, 숙성된 사랑은 감정을 넘어 존재가 되고, 내 영혼의 울타리가 된다.     



아, 사랑이 시작되었구나. 하고 자명하게 깨닫는 때가 있다.

내 삶에서는 흔치 않은 순간이어서 그 모든 찰나를 모두 액자 속에 보존하고 싶은 욕망을 돋운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은 늘 같다.

혹독하게 보고 싶지 않은 상처를 직면하는 것.

그리하여 아직도 등을 둥그렇게 말고 울고 있는 어린 나를 바라보게 한다.

부끄럽게도 마른 등줄기를 아직 쓸어안지 못했다. 언제쯤 화해할 수 있을까.     



사랑은 사랑이다.

나와 화해하지 못한 채 사랑을 잃었더라도,

내 삶의 희귀한 사랑의 시간들 마다 결국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해 상대를 포기했더라도,

사랑은 사랑이다.

나는 사랑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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