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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Mar 24. 2024

내가 너무 싫은 날에

현요아 지음

#내가너무싫은날에_현요아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비슷비슷한 상념에 젓는다. 얼핏 보면 여러 갈래로 뻗는 가지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그게 그거인 생각들이다. 대체로 나를 못 믿는 마음의 발동이다. 바닥을 뒹구는 자존감을 들어 올릴 힘도 없어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나, 뭐라도 쓰려고 하면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 같아서 주춤하는 나. 그런 나를 몸에서 빠져나간 영혼이 머리 위에서 보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내 쓰다 보면 지금 하는 작업이 좋은지 아닌지 판단하게 되고 편집자에게 보여줘도 될지 여기서 그만둘지 고민하면서 시간을 허비한다. 이상한 상상도 한다. 편집자에게 보여줬다가 이 작가는 어쩌자고 이렇게 구린 글을 썼을까 혼잣말하는 상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말을 못 하고 끙끙 앓겠지. 고심 끝에 간곡한 메일을 쓰고 전송 버튼에 커서를 갖다 대는 그의 손가락.

나는 누군가의 반응에 휘둘리고야 마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나도 좋을 리가 없다.
타인의 반응을 민감하다 못해 무서워하는 이유가 뭘까? 나 같은 사람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 작업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은 가만있어 봐… 독자의 반응에 휘둘리는 게 싫고 좋고의 문제인 건가? 내 글에 대한 독자의 호불호를 즐기지는 못하더라도 당연하게는 받아들여야 하는 거 아닌가. 어차피 피할 길이 없는 일이라면 어떤 말을 듣든 견딜 수 있는 멘탈을 길러야 하는 거였다.
그러나 깨달았으면서도 어려웠고 뒤이어 나는 또 한없이 작아져 버렸으니 나를 좋아하는 일과 한 발자국 더 멀어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좀 냉정한 분석법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내 글이 별로라고, 지나치게 어둡다고 말 한 사람이 어떤 책을 읽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실소가 나왔다. 그는 도저히 나와는 맞추려야 맞출 수 없는 결을 가진 작가들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건 단순히 취향이나 기준이 다른 거였다. 그날 이후로는 나는 새겨들을만한 평가를 걸러내는 것만 신경 쓴다.

현요아 작가도 책에 비슷한 이야기를 썼다. 남의 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그래서 미워지는 자신에게 자신만의 해법을 이야기한다. 살면서 내가 밉고 싫은 순간이 한두 번이겠는가.
이 책은〔내가 너무 싫은 날에〕라는 제목 아래에 친절하게 쓰여있는 문장처럼 불안하고 예민한 당신에게 권하는 아주 사적인 처방전이다.



본문 안에서-

어떤 이에게는 감정을 절제해 담담하게 쓰인 글이 잘 쓰인 글이다. 한 사람이더라도 시간에 따라 예전에는 저 글이, 요즘에는 이 글이 더 잘 쓰인 글처럼 느껴질 테다. 이토록 변화무쌍한 정의라면 굳이 따르지 않아도 될 텐데 괜한 사람들을 시샘하며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은 앞으로도 계속 찾아올 게 분명하다. 나는 요즘 이 작가의 글에 꽂혀서 이 작가처럼 되고 싶다는 아쉬움이 물밀듯 흐르겠지만 그것 역시 그 분야를 좋아해서 일어나는 당연한 마음이니까 타인의 재능을 칭찬하는 동시에 나의 재능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느낀다.
.....중략 ..... 꾸준하게 이 글을 마무리한 오늘만큼은 나를 미워하지 않아도 된다.
p 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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