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을 이끄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발제를 준비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때마다 나는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서재가 있는 호수 독서 모임의 모든 과정에는 꼭 해야 하는 법칙 같은 건 없다. 나는 남들이 발제라고 말하는 그것을 발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제가 떠오르지, '자! 이제부터 발제 준비!'라고 마음을 먹고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걸 발제라고 이름 붙이기는 좀 어색하다. 책을 읽다 보면 책 속에는 길이 있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는 뜻과 책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의미도 있다. 책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책을 충분히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보인다. 어떤 책을 정독하면 반드시 밑줄을 굿게 하는 문장을 만난다. 그때는 주저 없이 밑줄을 굿는다. 생각할 재료를 주는 내용이 발견되면 그 자리에도 표시한다. 문장과 연관된 이야기가 생각날 때면 따로 메모하고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기면 참고도서나 팟캐스트 등을 이용해 자료를 수집하거나 배경지식을 공부한다.
보통은 이 과정이 끝나면 구성원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대강 정해진다. 그렇게 정독으로 한 번을 읽고 두 번째는 밑줄 그은 곳 위주로 다시 읽는다. 그때는 구성원들이 헷갈릴 만한 문장이나 표현을 찾아 포스트잇을 붙이고 그 문장에 대한 나의 이해력도 체크한다. 그 다음은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다. 익히 알던 작가라도 새로운 정보나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 구성원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메모하고 작가의 최근 인터뷰나 출간 의도가 담긴 기사 등을 찾아 읽으며 공유할 부분이 있는지 확인한다.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있다면 보면서 원작과 영화가 다른 점을 찾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단톡방에 영화 정보를 미리 알려 준다.
이렇게 여유 있게 책과 그 주변을 살펴볼 수 있는 건 서재가 있는 호수 독서모임이 한 달에 한 번 열리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정보나 나눌 이야기를 찾아가는 과정에도 시간을 여유롭게 낼 수 있는 이유는 이 모임이 수익을 내는 독서모임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개의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사실 발제를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다고 말한다. 한 분기의 책을 미리 정하는 이도 나름 있다. 그래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고 참석할 수 있고, 대출 중인 책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으니까. '모든 일정은 여유롭게, 진행 방법은 느슨하게 하는 게 좋다. 나 역시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쫓기는 일은 있어도 독서모임 자체로 바쁜 경우는 거의 없다. 나눌 이야기가 준비되었어도 구성원들에게 미리 공유하지 않는다. 공유한 경험이 여러 번 있는데 그다지 좋은 결과를 낳지 않았다. 내가 공유한 문장이나 질문 자체가 긴장도를 높이는지 재밌게 읽던 책도 갑자기 어려워진다는 구성원이 많았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절한 질문이 오가는 지금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지, 공부처럼 느껴지는게 싫다고들 한다. 어쩐지 예습을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며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많았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독서모임을 이끌어갈 준비는 거의 혼자 한다. 읽고 나눌 책의 종류와 내용에따라 이때다 싶은 순간에 준비했던 질문을 하나씩 던진다. 자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좋았던 문장에대해 말하는 구성원이 있을 때, 소극적인 구성원이 한마디도못하고 있을 때, 대화가 끊기는 순간 등등 그때마다 미리 메모한 내용을 꺼내거나 질문을 하기도 하고 나의 감상을 깊게 이야기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밖으로 끌어낸다. 적어놓고 보니 거저 먹는 독서모임 같은데 맞다. 적어놓고 보니 거저 먹는 독서모임 같은데 맞다. 누워서떡 먹는 것처럼 쉬운 독서모임이 바로 내가 원하는 독서모임이다. 정색하고 발제를 준비하는 대신 공감되는 이야기가상대의 입을 열게 한다는 짧은 문장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