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 멀리서 찾을 것 없이 남편이나 가족이 잭 친구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 남자 친구나 남편과 같이 서점에 가고 함께 책을 읽고, 이 얼마나 보기 좋은 풍경인가. 굳이 평론가처럼 토론하지 않아도 된다.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보고 나서 주인공이 잘생겼다", "영화 속 나라로 여행을 가자" 하듯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좋다. 책 표지가 예쁘다든가,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서평을 검색해 보니 이런 숨은뜻이 있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거다. 슬프게도 우리 집에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남편은 책만 읽으면 빛의 속도로 잠이 든다. 잠들지않는 날도 가끔 있지만 그런 날은 꼭 건달처럼 책에 시비를 건다. 이건 이래서 틀렸고 저건 저래서 틀렀다고 트집이다.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대뜸 납득이 안 된단다. 급기야는 뭐가 기분이 나쁜지 책표지를 소리 나게 탁 덮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책 친구를 밖에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 달리기 힘든 사람들이 런닝크루를 찾는 것처럼,
나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 함께 산책할 사람을 찾았다. 그렇게 하면 오랫동안 즐겁게 책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독서모임을 찾았다 .
인터넷 검색에 서툴러서인지 몰라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모임이 눈에 띄지 않았다. 모임 사진이 올라 와 있어 살펴보면 딸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이 스무 명 경도 있었다. 나이가 무슨 문제냐 싶었지만 그들의 입장은 다를 수 있으니 연락하기 망설여졌다. 나이가 얼추 맞을 것 같아서 반가운 마음에 지역을 살펴보니 울산과 전주였다. 거리와 나이, 주로 다루는 책의 종류까지 따지니까 내게 맞는 독서모임을 찾기가 생각보다 어려웠다. 몇 달을 찾고 찾아서 발견한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 먼저 내 나이를 말하고 괜찮으냐고 물으니 나이 든 어른의 의견이 귀하니 오히려 좋다고 말해주어서 감격했다. 어른이라는 단어가 좀 걸리긴 했다. 단순히 나이가 많은 어른이 아니라 어른다운 어른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지만, 놓치기는 싫었다. 결정하고 나니 설렘에 마음이 부풀었고 가기 전날에는 밤잠까지 설쳤다.
인생에서 첫 경험은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그건 독서모입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에 대해 말하는 사람의 입, 상대의 말을 듣는 열린 귀, 공감의 추임새, 지적 호기심을 채우려는 이글거리는 눈빛,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는 배려, 첫날은 모임의 분위기를 느끼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독서모임을 떠니지 말아야지. 그쪽에서 나가라고 하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나오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들이 심사숙고해 정했을 책 목록을 손에 쥐고 서점으로 향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 모임이었다. 생각해 보면 고된 행군이었다. 한 달에 한 번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권을 읽는 모임이다.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웠다는 기억이 없는걸 보면 아무래도 당시에는 독서에 대한 허기가 꽤 컸던것 같다. 나는 책을 갉아 먹는 벌레처럼 정신없이 읽었다. 함께 읽을 사람이 여러 명 생겼다는 게 커다란 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