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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n 14. 2024

제가 원래 삶을 좀 철학적으로 바라봅니다.

퇴사하겠습니다 (4)

[윤슬대리 잠깐 회의실에서 볼까요]

[넵]


빠르다 빨라. 다음날에나 할 줄 알았던 2차 퇴사면담이 1차 퇴사면담 마무리 되고 5분 뒤에 바로 이어졌다.

"어이쿠, 벌써 그렇게 빨리 소식이 돌았나요"

"그러게 말이야 무슨 일인데 왜 왜"


팀장님과 했던 퇴사면담 그 위치 그대로 상대방만 바뀐 채 나는 다시 앉았다.

부사장님과의 면담


간결하게 끝났던 팀장님과의 면담과 달리 부사장님과의 면담은 제법 길게 이어졌다.

언제부터 퇴사를 결심했는지, 

혹시 지금 당장의 생각인지

어떤 일이 힘들었는지

지금 일 외의 다른 활동들을 함으로써 부족했던 결핍을 채우지 않았는지 등

내게 오는 모든 질문에 차곡차곡 말씀을 드렸다.


'당장 내린 고민은 아니고 올해 초부터 깊게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제가 여기 4년을 있었는데, 4년의 시간이 걸려서야 내린 결론이에요.

저는 이 일과 맞지 않아요.

저는 회사일을 회사일처럼 대할  수 없는 사람이고, 

루티너리한 일 속에 안정감보다는 불안감과 도태를 느끼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는 제가 도태되고 고여있다는 느낌을 아주 싫어해요'


'회사 안에서 채워지지 않는 결핍등이 있었죠.

그래서 작년에 뮤지컬을 엄청 봤어요. 

제가 냈던 자기 계발비 영수증만 봐도 아실 수 있으시잖아요. 

뮤지컬도 엄청보고 운동에도 미쳐보고, 여러 대외활동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 갈증, 결핍을 해결했는데 올해는 무얼 해도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뮤지컬, 콘서트, 독서, 운동, 대외활동 등 그 어디서도 채워지지 않았어요'


'그리고요 부사장님.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온 우주가 이 일의 마무리를 돕는 기분으로요. 

그리고 저는 책임질 사람이 저 하나밖에 없잖아요. 

제가 결혼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고, 나라 덕분에 만 나이 적용돼서 또 어려졌고요 ㅎㅎ. 

안돼도 지금 안 됐을 때 가장 제가 질 수 있는 부담이 적은 것 같아요. 

실패해도 지금 가장 적게 실패할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 안되면 저희 집 양평에 밭 있거든요. 아빠 따라가서 농사짓죠 뭐

저 벌레도 안 무서워하고 풀도 잘 뽑아요. 

그리고 대한민국에 저 하나 일할 데 없다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 마음은 여기 입사하기 전에도 가졌던 마음이었어요'


너 만큼은 퇴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던 부사장님의 말씀에 허허 웃었다.

그럴 리가요. 요즘 세상에 평생직장도 평생 직업도 없는 세상인데요.


'일단 6월 말까지요. 그 뒤로 남은 연차 붙이겠습니다.'

'인원 안 구해지면 한 달 정도 더 요청할 수 있다?'

'안 돼요 2주. 제 담당 업체가 7월 초에 업무가 몰리는데 그거랑 

결과보고까지는 마무리 짓고 갈게요. 2주요.'

'그래 2주'

대략적인 날짜가 협의됐다.


마지막으로 부사장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붙잡고 싶은데, 디펜스가 철저해서 붙잡지도 못하겠네.

삶을 철학적으로 바라보는구나'

'네. 제가 삶을 좀 철학적으로 바라봐요 하하'

'휴, 그래 아유 머리 아파 사람 구해야 되네'


이야기가 마무리됐다. 

이제 남은 건 대표님과의 면담.


새삼 내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어떤 방향인지 내뱉고 내가 내뱉은 말을 듣고

타인으로부터 그 말을 다시 듣는 순간이었다.

나는 내 삶의 방향키를 스스로 쥐고 싶어 하는구나

으레 그렇듯 사는 게 아니라 휘청이고 무너지더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 하구나

'남들 다 그렇게 살아' 하는 삶을 살더라도 어떻게든 날 위한 순간들을 만들려고 하며 지내왔구나.


스스로 내린 이 결정에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나를 괴롭혔던 끈적한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기분이 들어 가벼웠다.


무겁고 가벼운 이 모순적인 마음


삶이란 참 복잡다단하는구나를 느끼며 대표님과의 면담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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