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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11. 2024

퇴사하겠습니다 (끝)

무덤덤했던 마지막 날

버스 호출벨 어플을 눌렀다.

마지막이라니. 괜히 싱숭생숭.

안 하던 화장도 하고 원피스도 꺼내 입었다.

날 위한 마지막은 잘 장식하고 싶었으므로


괜히 삼성역에서 내렸다.

이제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 테니. 이어폰을 꽂고 눈에 새기듯 주변 풍경을 눈에 꾹꾹 눌러 담았다.

흐드러진 녹음의 가로수, 정돈된 도로, 뾰족뾰족 높은 빌딩,

적응하지 못했던 시절 도망쳤던 다이소, 올리브영, 서점

라떼가 맛있었던 카페, 종종 들러 도넛을 사가던 던킨도넛,

때때로 사치 부리고 싶을 때 가던 테라로사, 뜨거웠던 열기가 한 김 식은 후 구경 갔던 팀홀튼까지.

눈에 꾹 눌러 담고 뚜벅뚜벅 사무실로 향했다.


어김없이 나는 1등으로 도착. 문을 열고 에어컨을 켰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하니 하나둘씩 출근했다.

인사를 하고 9시가 되자 매일 하는 오전업무를 시작했다.


마지막 점심이라며 키득대고 직장인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점심시간이라며 장난을 쳤다. 법카로 사 먹는 마지막 커피를 얻어 마시고 자리로 복귀하니 오후 1시.

2시 반에 회의실로 모인다고 한다.


비로소 마지막 송별회가 시작됐다.

회사입장에선 개인의 행복까지 충족해 줄 수 없는 부분이 있으므로 아쉽지만 여기서 마무리한다는 대표님 말씀과 함께 마무리를 향해 가는 게 보였다.

한 마디 하라는 말씀에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3년간 얼레벌레 들어와 다녔는데 덕분에 잘 적응하며 다녔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꾸벅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작은 선물과 함께 박수를 받고 자리가 정리됐다.

다 정리했으면 퇴근해도 좋다는 팀장님의 메신저.

서둘러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컴퓨터를 껐다.


대표님 부사장님 전무님 타 팀 대리님 사원분

팀장님 과장님 주임님들 순으로 악수를 하고

꾸벅 그동안 감사했다고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진짜 끝났다.


내 3년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여름의 공기는 더웠고 습했다.

쏟아지는 햇빛이 뜨거웠다.

들뜨는 발걸음을 꾹 누르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육아휴직 중인 과장님께 저 진짜 퇴사했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답이 왔다.

어떠냐는 질문에 그냥 후련하다고 답을 보냈다.


시원섭섭하지 않았다.

아, 드디어 끝났다. 진짜 끝났다. 끝났어.

허탈하면서 무덤덤하고 동시에 진이 쭉 빠지는 마지막이었다.


여러 알바를 관두던 때도 시원섭섭할 때가 많았는데

3년을 재직한 회사의 마무리가 이토록 진 빠질 줄이야


치열하게 나와 싸우던 시간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고슴도치가 되어 가시를 세우던 날들, 여기저기에 돈을 쓰며 허함을 달랬던 시간들,

때론 즐거웠고 자주 분노했으며 빈번히 허탈했던 시간들이


'사직원'이라는 종이 한 장에 마무리 됐다.


들어갈 땐 생기발랄했는데,

'저는 일을 잘합니다. 저 안 뽑으시면 후회하실걸요?' 하던

패기 넘치던 막내는


나올 때 '퇴사하니까 어때?'라는 질문에

'그냥 그래. 대단히 기쁘지도 않고 무덤덤해'라고 답하는

무채색의 사람이 됐다.


비로소 끝났다.

4년간 업계에 있었다.

큰 노력을 요구하지 않았고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됐다.

그래서 안정적이었고 평화로웠다.


나는 그런 평화가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웠다.

그냥저냥 다닌다고 하기에 내 안의 불꽃은 꺼질 줄 몰랐고

불꽃이 꺼진 자리엔 존재마저 태워버린 내가 있었다.

재로 변한 채 잔잔히 존재하는 나를 견딜 수 없었다.


계절은 이토록이나 아름다운데

하늘은 이렇게나 찬란한데

세상은 이렇게나 변해가고 다채롭게 존재하는 데.


재로 무기력하게 가라앉은 나는 다시 불꽃이 되고 싶었다.

나는 일상은 잔잔하게 삶은 불꽃처럼 살고 싶은 이였다.

그 모순마저 사랑하는 사람이라 원치 않는 평화는 감옥 같았다.


친구들은 벌써 대리, 과장을 달고 있는 시기

결혼하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욕해도 아등바등 살아도

회사 속에 잘 다니는 친구들이 더 많은 시기.

안정적으로 따박따박 꽂히는 월급을 뒤로하고

매번 같은 일상 속 평화를 뒤로하고


나는 타보고 싶어서 타올라보고 싶어

세상으로 스스로를 내던졌다.

이번엔 날 위해 타올라보고 싶었다.


비로소

직장인 신분이

왕복 4시간의 출퇴근이

반복되는 일상과 안정적인 월급이

끝나는 날이었다.


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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