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Aug 13. 2024

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1. 그냥 뭐 운동하며 지내요

퇴사했다.

사실 실감이 안 났다.

왜냐면 금요일 퇴사라 다음날이 주말이었기 때문에

내가 퇴사를 한 건지, 그냥 주말을 쉬는 건지 모호했다.


퇴사 후 고민하던 헬스를 재등록했다.


고개를 내리니 볼록 나온 배와

여기저기 체지방이 그득그득 낀 몸이 보였다.

한창 살 뺀 직후에 옷을 샀기에 옷을 사는 것보다

살을 빼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지방이 그득그득 낀 몸을 보는 게 사실 꽤나 괴로웠다.

love yourself라고 하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고개를 갸우뚱

그래, 이제 남아도는 게 시간인데 운동을 다시 하자

그 생각이 우선 들었다.


-


터벅터벅 QR코드로 체크인을 하고 신발장에 신발을 꺼냈다.

오 3달 만인가?

사실 헬스장 6개월 연장했었는데 막판 3개월엔 안 갔다.

유산소라도 할까 했는데 그때 잠깐 길게 무력감을 겪었던 시기였다.

운동이라도 하세요, 하다 못해 나가 산책이라도 하세요!!라고

온 세상이 떠들었지만 '~라도'라는 것조차 해내기 어려웠던

그냥 세상살이 모든 게 버거웠던 시기였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딱 한 번 헬스 PT를 시험 삼아해 주셨던 선생님이 웃으며 반겨주셨다.


"아이고 네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머쓱한 얼굴로 수건을 한 장 목에 두르고 터벅터벅

기구로 다가갔다.


그래도 나름 PT를 오래 받았던 몸인데 기억할까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건 나 밖에 없다잖아

내 몸은 내가 바꿀 수 있고 그건 매우 정직하다 그랬잖아

그래, 내가 뭐 세상을 바꿀 것도 아닌데

일단 내 몸부터 바꾸는 게 맞으려나

체력이 올라가면 뭐라도 하고 싶을까

와 근데 이 무게로 겨우 이거 하는 거 실화야?

나 그래도 나름 힘 좋았던 거 아니었나

이게 맞나, 자극이 여기로 오는 게 맞나

아 진짜 유산소 하기 싫다

뛸까, 걸을까, 계단을 탈까 고민되네 뭘 해야 하나


머릿속의 온갖 잡생각이 꺼지지 않았다.

잡생각이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운동을 한 개씩

좀 커지면 무게를 하나씩 추가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된 곳에는 헉헉대는 내가 있었다.


운동하는 사실보다 좋았던 건

'내 시간을 내가 자유롭게 원할 때 쓸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겐 운동 강박이 있었다.

30분 근력 + 30분 이상 유산소

첫 PT를 받았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개인운동을 하는 날엔

꼭 지켰던 나만의 강박이자 습관이었다.


직장인 시절, 퇴근 후에도 충분히 가능하긴 했으나

6시 퇴근 후 전철-버스를 타고 헬스장에 도착하면 8시 언저리

30분 근력 + 30분 이상 유산소를 하고 나면 9시가 훌쩍 넘는다.

버스앱을 보며 후다닥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면 9시 30분

씻고 머리 말리고 앉으면 10시. 곧 자야 할 시간이었다.


그냥 그렇게 하루가 끝난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싫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탈 수 있을까 없을까 가늠하는 것도

내 앞에서 만석이 되어 터벅터벅 뒤에 올 다른 버스를 타러 가는 것도

심지어 퇴근시간에 타는 직장인이 아닌 사람들을 미워했다.

아니 뭐 하는 사람들이길래, 이 시간에 이 버스를 타서

날 못 타게 하는 거지? 정말이지 답 없는 미움이었다.


그런데 운동을 하고 나도 내게 남아있는 시간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쾌감을 선사할 줄 몰랐다.

아무리 운동을 길게 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한 시간의 여유


퇴사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여유롭게 운동하기


그렇게 여유롭게 운동하며 지낸답니다.

작가의 이전글 퇴사하겠습니다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