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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15. 2024

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2. 새벽빗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안심하며 지내요 

'쏴아아아아'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졌다. 

노랗게 밝아진 하늘은 이 시간에 나온 이들의 안위 따윈 상관하지 않은 채 그저 비를 쏟아내고 토해냈다.


그때 시간은 딱 새벽 5시.


원래 직장인이었다면 내가 일어나 준비하고 있을 그 시간이었다.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 건지.

퇴사하고 한동안은 매번 일어나던 출근시간에 눈이 떠졌다. 

핸드폰으로 슬쩍 시간을 확인한 뒤 '아씨' 나지막이 내뱉고 물론 다시 잠들었지만.

그렇게 새벽 기상을 강제로 하던 어느 날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졌다.


헐레벌떡 베란다 문을 닫고 들어오는데 들리는 빗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이상기후로 인해 비가 제아무리 스콜처럼 쏟아진다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이라니.

무엇보다 나를 철렁 이게 했던 건 원래였다면 나는 이 시간에 비를 뚫고 나갔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직장인 시절,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를 마친 뒤 6시 15분쯤 버스를 탔다.

사실 그다음버스를 타도 됐지만 다음 버스를 타고 가면 사당 도착이 8시 15분~20분이었다.

사실 사당에서 선릉까진 전철 거리론 얼마 안 되지만 출근 피크 시간이라 제 때 못 타는 게 단점이었다.

2~3대를 연이어 보내고 마지못해 끼여 타야 한다는 것.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아 열차가 때론 1~2분 지연된다는 점.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 모여 선릉 도착이 50분이면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나서야 한다는 점.

내 마음을 시끄럽게 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일찍 나서는 게 낫다 주의였다.

그래서 매번 9시까지 출근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사무실 도착은 7시 45분 언저리였다.


이른 출근과 마음의 여유를 얻고 피로를 택했지만, 중학생 때부터 버스 타고 등교했기 때문에

크게 생각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딱히 문제가 된다 생각하지 않았고.

다만, 이렇게 비가 쏟아지거나 눈이 폭탄처럼 내리는 날에는 초조해지는 맘은 어쩔 수 없었다.



빗소리 때문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원래였다면 어땠을까.

내리는 비에 절망하며 반바지와 반팔티를 갖춰 입고 샌들을 신었겠지.

가방 안엔 작은 수건과 여분의 옷을 챙겼을지도 모른다.

쏟아지는 비를 우산으로 겨우 머리만 가린 채 터벅터벅 정류장으로 향했겠지.

정류장 아래 비를 피한 채 하염없이 버스가 오길 기다렸을 것이다. 

버스 승차 알림 벨을 눌러놓고도 혹시 나를 잊고 가면 어쩌나 초조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이렇게 쏟아지는 폭우 앞에 사람을 알아볼 수 어려울 테니까.

무엇보다 내가 타는 정류장은 언제나 나 혼자 탔으니깐.


비를 뚫고 버스에 올라 우산을 던지듯 정리하고 가방에서 작은 수건을 꺼내 여기저기를 닦았겠지.

에어컨 바람에 덜덜 떨면서도 금세 쾌적해지는 공기에 안심했을 것이다.

서둘러 엄마 아빠에게 무사히 버스 탔다고 카톡을 하나 보내고 이어폰을 꽂았겠지.

하나 둘 사람들이 타기 시작하고 '어유 다들 고생이 많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눈을 감았을 것이다.


이때쯤이면 의왕톨게이트를 지나야 하는데 하고 눈을 떴는데

의왕톨게이트 근처도 안 왔을 수도 있다. 폭우는 언제나 교통차량 정체를 낳았고 큰 도로 위 차들은

엉금엉금 기어갔으니깐. 


자도 자도 도착을 안 해 괜히 핸드폰을 켜 인스타그램, 유튜브, 숏츠, 릴스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의왕톨게이트에 도착한다. 만석이라 누구도 태우지 못한 채, 타고 싶은 이에게는 안된다는 표시와 함께

버스가 출발했을 거고 나는 비로소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평소라면 도착해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도착을 안 했을 때

사람들의 초조함이 버스 안에서 일렁인다. 모두가 핸드폰과 버스 앞 유리를 반복해서 바라본다.

남태령을 지나 사당에 진입한 걸 눈치채자 사람들이 서둘러 짐을 정리한다.

평소보다 45분이 늦은 도착 시간.

누군가의 출근시간은 8시까지 인 걸까

아님 나처럼 9시인데 서둘러 나오는 걸까.

작은 의문과 애타는 맘으로 조금이라도 빨리 내리기 위해 나서는 이들을 보며 나는 일어섰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쏟아지는 폭우 속 작은 우산에 겨우 몸을 가린 채 

혹시라도 이 빗길에 미끄러져 큰일이 날까 염려하며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한숨을 크게 내쉬겠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맞나'



비가 그쳐갔다.

저러다 온 세상이 잠기는 게 아닐까 했던 염려가 무심할 만큼

이렇게 쏟아질 거였으면 모두가 잠들었을 시간에 쏟아져주지. 

왜 하나 둘 자신의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쏟아져 이렇게 마음을 소란하게 하는 건지.


쏟아져내린 비가 걷어간 여름의 열기는 청명한 하늘을 낳았다.

하늘이 지독하게 예뻐서 눈을 잠시 찌푸리고 하염없이 쳐다봤다.

산뜻함을 자랑하기 위해 그 많은 습기를 토해낸 건가. 제습제야 뭐야. 


'오늘 아침에 비 온 거 봤어? 진짜 회사 도착했는데 완전 다 젖었잖아 ㅠㅠ'

'응응 새벽에 빗소리에 깼었어. 나 원래 그때가 준비시간인데 ㅎ 출근했음 난 진짜 울었다.'


나는 출근하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준비시간과 출근시간에 쏟아져 내리는 비를 보며

철렁이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지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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