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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27. 2024

퇴사하고 뭐 하면서 지내?

3. 불안감에 새벽에 뒤척이며 지내

퇴사 후 2주 동안 나의 수면 패턴은 일정했다.

11시~12시에 잠들었고 아침에 8시 즈음 눈을 떴다.

새벽 5시에 자주 깼지만 금세 다시 잠들었다.


나름 규칙적인 기상시간 - 수면시간에 만족했다.

수면패턴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핸드폰 한다고 늦게잔 날도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이 시기엔 갑자기 열심히 헬스장을 다녔다.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 후 개운하게 씻고 집에 도착해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혼자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했고 약간의 스트레칭 후 잠에 드는 일상.


완벽했고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불안해졌다.


'내가 지금 생활비가 얼마가 남았더라?'

'카드값이 얼마나 남았지?'

'내 고정 지출이 얼마더라?'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

'이 직종으로 다시는 안 돌아오겠다고 -  했는데, 어딜 가야 하지?'

'이번에도 서울로 가야 하나 자신이 없는데..'

'이래서 돈을 모아두고 퇴사하라고 하는 거구나, 나 진짜 대책 없이 관뒀다 근데 나 대책을 세우고 관두기엔 내가 죽어가는 게 보였는데 어떡하지'

'아냐 그래도 관둔 건 정말 잘한 일이야.'

'그렇지만 이제 더 이상의 수입이 없는걸?'


동생은 몸을 안 쓰니 체력이 남아돌아 잠이 안 오는 거라고 했다.

친구를 만나 만보를 걷고 돌아다녀도, 진득하게 술을 먹고 들어온 날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에도,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함으로 마무리한 날에도 나는 새벽 2시가 넘어야 겨우 잠들었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얽히고설킨 , 불안감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이건 다 나의 망상이고 생각이다, 실체 없는 두려움이다.

아무리 스스로에게 말해도 나는 계속 잡아먹혔다.


토스 어플을 켜고 들어간 잔액이 마구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퇴사 후 크게 돈이 들어간 일이라곤 몇 년 만에 머리를 한 것과

스스로에게 주는 퇴사선물로 향수를 산 게 전부였다.


매번 집에서 캡슐 커피를 내려 먹었고

운동을 가지 않는 날엔 유튜브를 틀어놓고 1시간 동안 홈트를 했다.

간혹 가다 장을 볼 때, 친구들을 만날 때 빼고는 돈 쓸 일이 없었다.

인터넷 쇼핑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그렇게 좋아하던 뮤지컬 관람도 흥미가 떨어져 좀처럼 큰돈을 쓸 일이 없었다.


부모님은 내게 언제 취업할 거냐, 언제까지 놀 거냐는 둥의 말은 일절 하지 않으셨다. '지 알아서 하는 애니까 걱정 안 한다'는 말을 언뜻 들었다. 생활비를 얼마 달라는 말을 들은 적도, 남들은 다 돈 벌어서 시집장가가고 한다는데 너는 뭐 하냐는 등의 얘기를 들은 적도 없었다.


근데 불안했다.


통장 잔고가 훅훅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퇴사로 내 인생 지축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영영 취업을 못한다거나 돈을 벌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영영 집에만 있을 것도 아닌데

돈을 못 번다고 해서, 직장인이 아니라고 해서 내 삶이, 인생 전체가, 나라는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도 아닌데


불안하고 무서웠고 두려웠다.


아무리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 해도 자꾸만 커지는 불안감에

뇌가 꺼질 생각을 안 했다. 자꾸 반짝반짝 지칠 줄 모르는 전구처럼 깨어있었고 나는 그만큼 피곤했고 예민해졌다.


제 아무리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내가 불안한 이유를 종이에 쓰고 그것을 파쇄기에 돌돌 갈며 해치우려 해도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웃겼던 건,

나의 안부를 묻는 이들에게 '백수 생활 최고야'라고 말하며 웃었다는 점이다. 부러움이 잔뜩 묻어난 말에 그저 씩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내 인생을 즐기는 척 말이다.


사실, 하나도 안 괜찮았다.

잠깐 2주 정도 즐거웠고 그  이후부터 쭉 꽤 긴 시간 동안 나는 제 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내내 나는 나와 싸웠고 계속 졌다.

이긴 날은 하루도 없었다.


내 생각과 끝없는 불안에 질 것 같아 술의 힘을 빌어보고

고강도 운동으로, 바쁜 하루로 육체를 축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내 불안은 힘이 셌다.


나는 매번 졌고 오랫동안 이기지 못했다.

밤이면 나는 무기력과 우울, 불안에 휩싸인 채 어서 이 밤이 지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두 눈을 감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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