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존재자들의 주인이 아니라, 존재의 목자이다"(The human being is not the lord of beings, but the shepherd of Being.)(마틴 하이데거,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 중에서)
마틴 하이데거의 말은 처음에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자연과 사물을 단순히 지배하거나 소유하는 존재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인간은 존재를 이해하고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존재자"를 구분합니다.
존재자(Seiendes):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과 대상들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집, 나무, 컴퓨터 같은 것들입니다.
존재(Sein): 존재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 즉 존재자들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기반입니다. 쉽게 말해, 존재는 모든 사물이 '있다'고 느껴지는 배경이나 조건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존재자에만 관심을 둡니다. 나무를 볼 때 “어떻게 활용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들에 핀 꽃을 볼 때도 “이 꽃을 꺾어서 어떻게 꾸밀까?”만 고민하죠. 하이데거는 이것이 인간이 존재를 망각한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산에 가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는 대신, “이 나무로 뭘 만들면 좋을까?”라고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존재자의 가치를 자원으로만 축소시킨 겁니다. 하이데거는 이런 태도를 넘어서, “왜 이 나무는 여기서 이렇게 존재하고 있을까?”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라고 제안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존재의 목자"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목자는 어떤 역할을 할까요? 목자는 양떼를 소유하거나 지배하지 않습니다. 대신, 양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돌보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연과 사물, 그리고 타인을 단순히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대신, 그것들의 본질과 가치를 이해하고 돌보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하이데거의 메시지는 오늘날 더 큰 울림을 줍니다. 지금 우리는 자연과 기술을 지배하려는 태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는 자연을 단순히 자원으로 취급한 결과입니다.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인간이 기술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잃어가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하이데거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는 정말 세상을 돌보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지배하려고만 하는가? 예를 들어, 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우리는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에 지배당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플라스틱 제품을 편리하다고 계속 사용하면서 그 뒤에 쌓이는 쓰레기 문제를 외면한다면, 우리는 주인처럼 행동하는 겁니다. 하지만 플라스틱 대신 친환경 제품을 선택하거나 재활용을 고민한다면, 우리는 목자의 역할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이데거의 "존재의 목자"라는 개념은 인간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을 수단처럼 대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단순히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보거나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길 바랄 때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목자는 그런 태도를 넘어섭니다. 예를 들어,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목자의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그들의 감정과 상황을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려는 마음이 바로 그런 태도입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경험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이런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존재의 목자”라는 하이데거의 말은 우리에게 돌봄과 공존의 태도를 요구합니다. 이는 우리가 자연과 타인, 그리고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중요한 철학적 가르침입니다. 하이데거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다움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