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시계를 들여다보시나요?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거나 방 안의 벽시계를 보는 일이 흔할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대를 설정해 놓았음에도 시계마다 약간의 오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이 작은 차이를 볼 때마다 ‘왜 이렇게 다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시계가 완벽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사실 어떤 기계도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시계의 비유’를 통해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가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두 철학자가 제시한 시계의 이미지는 단순한 기계적 오차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육체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육체는 정신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먼저 데카르트의 입장을 보겠습니다. 그는 인간이 정신과 육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실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습니다. 정신은 사유하는 비물질적 실체이고, 육체는 물질적 실체로서 물리법칙을 따릅니다. 문제는 이 둘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데카르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육체를 정교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시계에 비유했습니다. 시계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듯, 우리의 몸도 생리적 법칙에 따라 움직입니다. 심장은 스스로 뛰고, 소화 기관은 저절로 작용하며, 신경은 외부 자극에 반응합니다.
그러나 시계는 스스로 시간을 조정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맞춰주어야 합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정신이 바로 그 ‘조정자’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손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신호가 몸에 전달되어 실제로 손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정신과 육체의 연결점을 송과선에서 찾았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17세기 당시 데카르트에게는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정신과 육체를 연결하는 물리적 접점이 필요했으며, 송과선이 그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신이 이러한 교통로를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정신과 육체가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라이프니츠는 정신과 육체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신이 처음부터 이 둘을 완벽하게 조율해 놓았기 때문에 마치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설명하는 예정조화설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두 개의 시계 비유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서로 연결되지 않은 두 개의 시계가 항상 동일한 시간을 가리킨다면, 이를 설명할 방법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두 시계가 서로 영향을 주고 시간을 맞춘다. 둘째, 누군가가 주기적으로 시계를 맞춰준다. 셋째, 애초에 두 시계가 완벽하게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도록 설계되었다. 여기서 첫째 설명은 데카르트, 둘째는 말브랑슈, 셋째는 라이프니츠의 설명입니다.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은 신이 우주를 완벽하게 조율하여 모든 사물과 사건이 독립적으로 움직이지만 결과적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는 개념입니다. 이는 신이 완벽한 질서를 부여한 덕분에 정신과 육체가 직접적인 인과관계 없이도 마치 동기화된 것처럼 보이도록 작동한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사결정과 행동 역시 신의 계획에 의해 이미 정해진 흐름을 따르는 것이며, 표면적으로는 자유롭게 보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예정된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는 “서로 영향을 주거나 중간에서 조정하는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해 두었기 때문에 두 시계가 항상 같은 시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정신과 육체는 독립적으로 작동하지만, 신이 처음부터 모든 것을 조율했기에 마치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철학적 논의에서 신의 역할도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데카르트에게 신은 시계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보정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정신과 육체가 실제로 통하는 구조를 신이 마련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라이프니츠의 신은 더욱 완벽한 설계자로, 한 번 설정해 두면 더 이상 개입할 필요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이 차이는 결국 인간의 자유의지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데카르트의 관점에서는 정신이 의지를 통해 결정을 내리고 육체가 이에 따라 움직이므로 자유의지가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신이 미리 정해놓은 조화 속에서 움직이는 것일 뿐입니다. 즉, 자유의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정교하게 조율된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시계 비유는 여전히 우리의 사고를 자극합니다. 두 개의 시계가 같은 시간을 가리킬 때, 그것은 서로 영향을 주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미 정해진 조화 때문일까요? 정신과 육체, 자유와 운명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스마트폰 시계와 벽시계가 일치하도록 신경 써서 맞추는 편인가요, 아니면 약간의 오차는 개의치 않고 흘러가는 대로 두는 편인가요? 데카르트의 입장이 더 공감되시나요, 아니면 라이프니츠의 관점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시나요? 혹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고, 시계는 계속 돌아갑니다. 이때, 내 정신이 육체를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철학적 탐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