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상품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 자신이 구입한 자동차, 하이파이 오디오, 복층 주택, 주방 기기에서 자기 영혼을 발견한다."(The people recognize themselves in their commodities; they find their soul in their automobile, hi-fi set, split-level home, The kitchen equipment.)(허버트 마르쿠제, [1차원적 인간] 중에서)
우리는 종종 새 차를 사거나 최신 스마트폰을 손에 쥘 때 묘한 만족감을 느낍니다. 더 좋은 집, 더 세련된 옷, 더 비싼 가전제품을 가질수록 우리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의해 정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는 『일차원적 인간(One-Dimensional Man)』에서 날카로운 비판을 던집니다.
마르쿠제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일차원적 인간(One-Dimensional Man)’으로 변해간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일차원적’이라는 개념은 비판적 사고 없이 주어진 사회적·경제적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간형을 뜻합니다.
그는 현대 산업사회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단순화하고, 다양한 가능성과 사고의 깊이를 제한한다고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사회가 제공하는 가치 체계와 욕망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본주의적 질서 속에서 주어진 목표, 즉 소비, 생산성 향상, 경제 성장과 같은 가치를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 결과, 개인들은 비판적으로 사고하거나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르쿠제는 현대 사회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방식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원래 ‘소외(alienation)’는 카를 마르크스(Karl Marx)가 사용한 개념으로,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신의 노동 결과물과 분리되어 의미를 상실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러나 마르쿠제는 ‘소외’의 개념을 확장하여,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소비 중심 사회에서 개인은 점점 타율적 존재가 됩니다. 즉,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가치 기준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스스로의 욕망을 진정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대로 살게 됩니다.
오늘날 마르쿠제의 비판은 더욱 설득력을 가집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소비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결정짓습니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더 세련되었다고 평가받고, 최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능력 있어 보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자본주의가 만든 이미지와 정체성을 내면화한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이 의미하는 가치를 함께 소비합니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비싼 물건을 사고, 광고가 주입한 라이프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소비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소유보다 경험에 집중하고, 사회가 주입한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내면적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물건을 사는 것보다 여행, 배움, 인간관계에 투자할 때 더 지속적인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며, 광고와 미디어가 조장하는 소비 문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는 소비가 아니라 사고와 경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스스로의 가치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