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꺽을 수 없는 불신의 이유

by 정지영

"의심은 증거를 통해 해소될 수 있지만, 불신은 그렇지 않다."(Doubt can be overcome by evidence; distrust cannot.)(리 맥킨타이어, [Post Truth] 중에서)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마다 의심과 불신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이 투자는 100% 수익이 보장된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의심을 품습니다. 정말 그럴까? 어떤 근거가 있을까? 하지만 실제 데이터와 사례를 확인하면서 의심은 점차 신뢰로 바뀝니다. 반면 누군가 "모든 금융 시스템은 조작되었으며, 어떤 증거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불신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는 아무리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리 맥킨타이어는 "의심은 증거로 극복할 수 있지만, 불신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의심은 논리적 탐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불신은 증거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이기에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사고방식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삶과 사회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의심과 불신의 차이: 열린 마음과 닫힌 마음

'의심'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고 과정입니다. 새로운 정보를 마주하면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하려 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과학적 연구도 의심에서 시작됩니다. "지구는 평평할까?"라는 의문을 품고 증거를 수집하고 검증하면서 우리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반면 '불신'은 단순한 의심을 넘어서, 증거가 있어도 믿지 않으려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는 논리적 판단이라기보다 감정적, 이념적 거부에 가깝습니다. "백신은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심은 과학적 데이터를 검토하면서 해소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백신은 음모다, 어떤 데이터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은 아무리 많은 증거를 제시해도 바뀌지 않습니다.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불신

리 맥킨타이어는 저서 『포스트 트루스』에서 현대 사회의 특징을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개인적 신념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오늘날의 불신이 단순한 개인의 태도가 아닌, 과학과 진실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합니다. 기후변화 부정이나 백신 거부와 같은 현상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조장된 불신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맥킨타이어는 불신을 강화하는 요인들로 다음의 세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 인지적 편향과 감정의 작용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기존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확증 편향'을 보입니다. 또한 감정적으로 강하게 믿는 것일수록 반대되는 증거를 무시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욕구 때문에 반대 의견와 을 배척하게 됩니다.


둘째,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에코 챔버의 형성 때문입니다. 소설 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이미 믿는 것과 비슷한 내용만 보여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는 다양한 관점을 접할 기회를 줄이고, 같은 생각만 반복되는 '메아리방'(에코 챔버)을 만듭니다. 에코 챔버(Echo Chamber)는 특정 신념이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과 동일한 관점을 가진 정보만 접하게 되는 환경을 의미합니다.


셋째, 허위정보의 범람입니다. 맥킨타이어는 '거짓의 홍수' 전략을 경계합니다. 너무 많은 가짜 뉴스에 노출되다 보면 결국 "무엇이 진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최근 단순한 오보를 넘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는 허위정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불신을 극복하는 길

건강한 의심은 필요하지만, 모든 것을 불신하는 태도는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데이터를 직접 확인하고, 다양한 시각을 고려하며, 신뢰할 만한 정보원을 찾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불신이 깊어질수록 다른 사람을 적으로 여기기 쉽지만, 대화를 통해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확증 편향을 경계하고, 때로는 자신의 신념과 다른 정보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내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팩트 체크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매킨타이어가 제시하는 해결책 중 재미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진실 샌드위치' 방식의 활용입니다. 이는 거짓 정보에 대응할 때는 직접적인 반박보다 '진실 샌드위치' 방식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즉 먼저 사실을 제시하고, 잘못된 정보를 설명한 뒤, 다시 한번 진실을 강조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특히 허위정보가 빠르게 퍼지는 온라인 환경에서 유용한 대응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나가며: 포스트 트루스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의심은 탐구로 이어지고, 탐구는 지식과 성장을 가져옵니다. 반면 불신은 마음의 문을 닫아 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의심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지만, 불신에 빠지면 세상을 이해할 기회를 잃게 됩니다.


앞으로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마다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건강한 의심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맹목적인 불신에 빠져 있는가?" 이러한 성찰이 우리를 더 현명하고 열린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keyword
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구독자 311
이전 28화영혼을 소비에 가두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