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권력과 폭력은 함께 할 수 없다

by 정지영

"권력과 폭력은 서로 정반대이다. 하나가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에서는 다른 하나가 부재한다. 폭력은 권력이 위태로울 때 나타나지만, 그 자체의 과정대로 놔두면 결국 권력의 소멸로 이어진다."(Power and violence are opposites; where the one rules absolutely, the other is absent. Violence appears where power is in jeopardy, but left to its own course it ends in power's disappearance.)(한나 아렌트, <공화국의 위기> 중에서)


길거리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고 가정해봅시다. 시민들은 평화롭게 변화를 요구하지만, 정부는 이를 강경하게 진압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폭력의 강도는 세져가고, 정부는 더욱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과연 폭력으로 유지되는 권력이 진정한 의미의 '권력'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한나 아렌트는 『공화국의 위기』에서 "권력과 폭력은 서로 상반된 것으로,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곳에서는 다른 쪽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권력이 강할수록 폭력은 불필요하며, 반대로 폭력이 사용될수록 권력은 약해집니다. 그렇다면 '권력'과 '폭력'은 어떻게 구분되며,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한나 아렌트의 권력 개념 아렌트는 권력을 단순한 강제력이 아닌, 공동체의 합의와 공적 행위를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봅니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의견을 나누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행동할 때 권력이 생겨납니다. 이는 개인의 명령이나 강압이 아닌, 다수의 자발적 동의와 협력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권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토론과 실천을 이어가야 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권력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즉, 적극적인 참여와 상호 신뢰가 있을 때 권력은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아렌트는 이를 '행동(Action)' 개념과 연결 짓습니다. '행동'은 단순한 물리적 활동이 아닌,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공동의 결정을 내리는 정치적 행위를 뜻합니다. 이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 차원에서 이루어지며, 인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실현됩니다.


결국 '행동'은 권력의 핵심 요소이며, 이를 통해 공동체는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은 아렌트의 정치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개념과도 맥을 같이합니다. 그에게 권력은 단순한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아닌, 공적 영역에서의 토론과 참여를 통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반면, 폭력은 이러한 공적 공간을 허무는 요소입니다. 폭력은 빠른 결과를 가져오지만, 지속적으로 사용될 경우 공동체의 신뢰와 합의를 무너뜨리고 결국 권력 자체를 와해시킵니다. 아렌트가 전체주의 체제를 분석하면서 강조한 점도 바로 이것입니다. 나치 독일과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서 볼 수 있듯이, 폭력적 수단을 통한 지배는 일시적으로 유지될 수 있으나 결국 내부 붕괴를 초래합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적용 오늘날 민주사회에서도 권력과 폭력의 관계는 핵심적인 쟁점입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합의와 지지를 토대로 움직이는 체제이므로, 폭력이 늘어날수록 그 정당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경찰의 과잉 진압이 논란이 되는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처음에는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여겨질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시민들의 불신과 반발을 불러일으켜 정부의 정당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아렌트의 개념은 조직이나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리더가 구성원들의 신뢰와 동의를 바탕으로 조직을 이끌 때, 권력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반면 강압적 통제와 처벌이 계속되면 구성원들은 점차 수동적이 되거나 반발심을 키우게 되어 조직의 전반적인 역량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아렌트가 강조했던 '공공 영역'과 '자발적 참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신뢰와 합의의 힘 아렌트의 철학이 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진정한 권력은 폭력이 아닌 신뢰와 합의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권력을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을까요?


지속 가능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나 조직 내 갈등이 발생했을 때 강압보다는 민주적 절차와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며, 권력을 가진 이들은 폭력 대신 설득과 소통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고 구성원들의 신뢰를 쌓아가야 하고, 시민들은 권력이 폭력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감시와 견제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렌트의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폭력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 있으나 결국 권력을 약화시키고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반면 권력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합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되며, 이는 공공 영역의 활성화와 직결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 직장, 가정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권력과 폭력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할 것이며,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어야 할까요? 이러한 질문을 깊이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첨언 : 권력과 폭력이 함께 할 수 없으며, 권력이 폭력에 의지하면 망하기 마련이라는 아렌트의 통찰이 우리 한국 사회에 어느 때보다 필요한 조언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keyword
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구독자 311
이전 29화꺽을 수 없는 불신의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