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후회와 자책의 굴레: 과거는 필연이다

2부. 부정적 감정 해체하기

by 정지영

"이것이 바로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인간의 자유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란 단지, 인간이 자신의 욕망은 의식하지만 그 욕망을 결정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아기는 자신이 자유롭게 젖을 원한다고 생각하고, 화가 난 아이는 복수를, 겁쟁이는 도망을 생각한다. 또한, 술에 취한 사람은 나중에 술이 깼을 때 말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말을 하는 것이 자신의 자유로운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

— 『서간집』 제58편


“자연법이란 모든 사물이 생성되는 자연의 법칙 또는 규칙, 다시 말해 자연 자체의 힘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 자연의 자연법은 그 힘과 미치는 범위가 같고, 결과적으로 개별 사물의 자연법도 그것이 존재하고 작용하는 힘과 미치는 범위가 같다.”

- 『정치론』 2장, 4절



새벽 3시, 잠에서 깨어 천장을 바라본다. 5년 전 그 결정이 또다시 머릿속을 맴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가 포기한 해외 유학, 헤어진 연인, 그만둔 직장. 온갖 '만약에'들이 가슴을 짓누른다. "내가 바보였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자책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 이 모든 고통의 뿌리에는 '자유의지'라는 거대한 착각이 자리하고 있다.


자유의지라는 착각: 굴러가는 돌의 의식

스피노자는 『서간집』 제58편에서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진다고 믿는 것을 '의식을 가진 돌'에 비유했다. 어떤 힘에 의해 굴러가는 돌에 만약 의식이 있다면, 그 돌은 자신이 자유롭게 굴러간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비유다. 왜냐하면 자신의 노력(굴러가려는 충동, 코나투스)은 의식하지만, 자신을 굴러가게 만드는 외부 원인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 자기를 굴렸다는 사살을 모르니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과 의도는 의식하지만, 그 욕망을 만들어낸 무수한 외부 원인들(유전자, 환경, 교육, 과거 경험 등)은 전부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착각한다.



필연성의 이해: 모든 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모든 일은 자연의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이 중력이라는 자연법칙의 필연적 결과이듯, 우리의 모든 선택과 행동도 그 순간의 조건들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다.

"그때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는데"라는 후회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전제에 기반한다. 그 순간의 나는, 그 순간의 조건들 하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만약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 순간의 나와 조건들이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와 조건들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고, 따라서 그 결과로 나온 선택 역시 필연적이었다.


이것이 절망적인 메시지일까? 스피노자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한다. 이 필연성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후회와 자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열쇠다.



후회의 해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은 없다

후회는 "그 일이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라는 부적합한 관념에 기반한다. 이는 과거의 사건이 다른 방식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보면, 일어난 모든 일은 그 순간의 원인들에 의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 사건이다.


따라서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 것을 두고 "잔인하다"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무의미하듯,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두고 "그렇게 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오해하는 것이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과거의 기억을 비디오처럼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와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reconstruction)한다. 즉 우리가 과거를 회상할 때, 우리는 '만약'이라는 반사실적 사고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편집하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낸다. 이 능력은 미래 계획에는 유용하지만, 이 편집된 시나리오를 '실제로 가능했던 과거'라고 착각할 때 우리는 후회라는 정념에 빠지게 된다. 필연성을 이해하는 것은, 뇌가 만들어낸 이 가상현실과 실제 일어났던 유일한 현실을 구분하는 이성적 훈련이다.



이해는 변명이 아니다: 결정론과 책임의 문제

물론 스피노자의 결정론이 모든 행동을 용납하는 면죄부가 된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선택이 필연적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은, 그 행동이 초래한 해로운 결과를 정당화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원인을 명확히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어떤 조건들이 그런 해로운 결과를 낳았는가'를 정확히 배우고, 미래에 다른 결과를 낳기 위해 현재의 조건을 바꾸는 진정한 책임을 질 수 있게 된다. 이해는 과거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책임감의 출발점이다.



필연성 안에서 찾는 진정한 자유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결정론의 포로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스피노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필연성을 이해하고 그와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


폭풍우 속에서 표류하는 잎사귀는 외부의 힘에 전적으로 지배당한다. 하지만 그 힘의 원리를 이해하는 항해사는 돛을 조정하여 폭풍우를 이용해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잎사귀와 항해사 모두 필연성의 지배를 받지만, 오직 항해사만이 자유롭다.


그렇다면 어떻게 미래에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이해(적합한 관념) 수준을 높이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과거의 나를 지배했던 원인들을 명확히 이해하는 행위 자체가, 미래의 나를 결정할 새로운 원인이 된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한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다른 원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 필연적으로 더 나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학습과 성장의 본질이다.



실천적 전환: 과거에서 현재로, 후회에서 이해로

후회와 자책에서 벗어나는 구체적인 방법들이다.

1단계: 필연성 인정하기
과거의 사건이 그 순간의 조건들에 의해 필연적으로 일어났음을 인정한다. "다른 선택이 가능했다"는 착각을 버린다.

2단계: 원인 분석하기
그 선택을 하게 만든 당시의 조건들(정보, 감정 상태, 환경적 압력 등)을 자책이 아닌 '이해'를 목표로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3단계: 학습 추출하기
과거의 경험에서 현재와 미래에 도움이 될 교훈을 추출한다. "그때 그런 조건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으니, 앞으로는 이런 조건을 만들어보자"는 식으로 건설적으로 활용한다.

4단계: 현재 집중하기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는 바꿀 수 있다. 과거에 쏟던 정신적 에너지를 현재의 선택과 행동에 집중한다.



'현재 집중하기'의 신경과학적 원리

스피노자의 철학적 조언은 신경과학적 원리와도 일치한다. 우리 뇌 속에는 마치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두 개의 주요 팀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바로 '생각의 방랑자' 팀'행동하는 CEO' 팀이다.


(1) '생각의 방랑자' 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우리 뇌에는 특별히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을 때, 즉 '멍하니' 있을 때 저절로 켜지는 기본 활동 모드가 있다. 이것이 바로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우리의 생각은 정처 없이 과거와 미래를 떠돌아다닌다. 주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어제의 일을 곱씹고,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며, 미래를 걱정한다. 마치 자동으로 과거의 영화를 재상영하는 뇌 속의 영화관과 같다.

바로 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우리를 후회와 자책에 빠뜨리는 주범이다. 우리가 과거의 실수에 대해 끝없이 되짚으며 후회하고 자책하는 것, 즉 '반추(rumination)'는 바로 이 DMN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같은 슬픈 영화를 계속해서 반복 상영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DMN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과거의 기억과 감정을 꺼내와 현재의 우리를 괴롭힌다.



(2) '행동하는 CEO' 팀: 집행 제어 네트워크(ECN)

면, 우리가 무언가에 의식적으로 집중하고, 목표를 세우고, 문제를 해결하고, 충동을 조절할 때 활성화되는 또 다른 팀이 있다. 이것이 바로 '집행 제어 네트워크(Executive Control Network, ECN)'다. 이 네트워크는 이름 그대로 뇌의 'CEO' 또는 '행동대장' 역할을 한다. 눈앞의 과제에 주의를 기울이고, 계획을 세우며,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하고, 목표 지향적인 행동을 이끌어낸다.


(3) 뇌 속의 시소 게임: DMN vs. ECN

뇌과학의 가장 흥미로운 발견 중 하나는, 이 두 네트워크가 마치 시소처럼 작동한다는 것이다. 한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내려간다. 즉, '생각의 방랑자(DMN)'가 시끄럽게 떠들며 활성화될 때는 '행동하는 CEO(ECN)'가 잠잠해진다. 반대로 우리가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CEO(ECN)'를 깨워 일에 집중시키면, '생각의 방랑자(DMN)'는 자연스럽게 조용해진다.


(4) '현재 집중하기'의 과학적 의미

따라서 "과거에 대한 반추를 멈추고 현재에 집중하라"는 스피노자의 조언은, 단순한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인 신경과학적 훈련이다.


과거의 실수에 대한 생각의 고리를 끊고, 지금 당장 설거지를 하거나, 책의 한 문단에 집중하거나, 내 숨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는 뇌의 CEO인 ECN을 강제로 깨워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 ECN이 활성화되어 '현재의 과제'라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시소의 반대편에 있는 DMN, 즉 후회와 자책을 반복 상영하던 뇌 속의 영화관은 자연스럽게 불이 꺼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과거에 대한 반추를 멈추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은, 뇌의 '공회전 모드'를 끄고 '작업 모드'를 켜서, 우리 정신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매우 효과적이고 과학적인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평정심의 선물: 영원의 상 아래에서

스피노자의 궁극적 가르침은 "영원의 상 아래에서(sub specie aeternitatis)"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실수가 우주적 관점에서, 혹은 10년 후의 관점에서 과연 그렇게 중요할까?


모든 것이 거대한 인과관계의 사슬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남을 이해할 때, 우리는 개인적인 후회와 자책을 넘어선 깊은 평정심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체념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이해함으로써 얻는 지혜로운 수용이다.


과거는 이미 끝났다. 그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이해를 통해 더 나은 현재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건네는 후회 없는 삶의 지혜다.


다음 장에서는 부정적 관념을 적합한 관념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실습법들을 다룰 것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적 통찰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관념의 재구조화 훈련'을 함께 탐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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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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