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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이성, 그리고 덕

: 스토아 철학의 현대적 적용

by 정지영

스토아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스토아 철학의 핵심 개념과 구조,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의 적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물리학, 윤리학, 논리학의 관계부터 '자연에 따른 삶'의 의미, 그리고 현대인의 삶에 스토아 철학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 물리학과 윤리학의 관계

스토아 학파는 철학에서 이성을 세 부분으로 나누며, 하나는 자연철학(물리학), 하나는 윤리학, 또 하나는 논리학에 해당한다고 말합니다. 키티온의 제논이 처음으로 자신의 저서 이성에 대하여에서 이 분류를 제시했고, 크리시포스가 이성에 대하여의 첫 번째 책과 자연철학의 첫 번째 책에서 이를 따랐습니다. (중략) 또한 철학을 비옥한 밭에 비유하여, 논리학은 울타리, 윤리학은 열매, 물리학은 토양 또는 과일 나무에 비유했습니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나남출판사), 7권 33절)


디오게네스의 비유는 스토아 철학이라는 비밀의 문으로 들어가는 열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스토아 철학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머리 속에 장면 하나를 그려보세요. 과수원에 사과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비옥한 땅에서 자란 사과나무는 빨갛게 익어가고, 그 주위에는 튼튼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습니다. 농부는 그 과수원에서 사과를 수확하며 즐거운 표정으로 일합니다.


잘 익은 사과는 행복한 삶을 상징합니다. 삶은 땅에 뿌려진 씨앗과 같이 시작되어 자랍니다. 햇빛과 물, 적당한 온도와 비옥한 토양이 자라는데 도움을 줍니다. 그러나 폭풍, 질병, 벌레, 동물들이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사과는 혼자서 자라지 않습니다. 주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때로는 싸우며 자랍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 자연과 타인과의 관계가 행복한 삶 또는 불행한 삶을 결정합니다. 스토아 철학의 윤리학이 바로 행복한 삶을 다룹니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행복이라는 열매는 건강한 토양에서만 맺힙니다. 사과나무가 뿌리를 내린 토양이 비옥하지 않으면 좋은 사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 비옥한 토양이 바로 자연에 대한 지식과 이해입니다. 우리는 이를 물리학이라 부릅니다.



2. '자연에 따른 삶'

스토아 철학에서 이상적인 삶은 '자연에 따른 삶'입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물리학에서 핵심은 자연이 내재적 질서와 조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질서는 우주적 이성(로고스)의 작용으로 이루어집니다. 로고스는 자연 법칙으로, 우주를 지배하는 보편적 이성 또는 법칙입니다. 현대적으로는 과학적 법칙 또는 자연의 질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 속 모든 것은 인과 관계의 법칙을 따릅니다. 어떤 것도 이 법칙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 우주적 법칙을 거스르며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 합니다. 욕심, 욕망, 질투, 반목 등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으려는 데서 생기는 삶의 질병입니다. 이는 자연과 자신의 본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스토아 철학에서 윤리적 삶이란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성을 따를 때 정의, 용기, 절제, 지혜와 같은 덕이 드러납니다. 욕망에 흔들리지 않고 절제하며, 옳은 일을 판단하고 실천하는 힘은 모두 이성에서 나옵니다. 이성에 따른 삶은 덕스러운 삶으로 이어집니다.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는가?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내 본성에 따르는 것이다."


오늘날 자연에 따른 삶을 실천하는 방법으로는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 마음챙김과 명상을 통한 자기 인식 증진,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기, 디지털 디톡스를 통한 자연과의 재연결 등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스토아 철학을 현대적 맥락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3. 치료제로서의 스토아 철학

현대인들은 경제적으로 풍요롭습니다. 억압과 차별이 사라지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자연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속은 다릅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타인의 감정과 욕망에 휘둘리며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차별은 질투와 비교로 내면화되어, 영혼과 정신을 더 괴롭힙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약속했던 유토피아는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 종말의 위험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자연과 자기 본성에 대한 착각과 무지입니다. 자연을 따르기보다는 싸우고 약탈합니다.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알지 못해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며, 불행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로 인해 정의, 용기, 절제, 지혜와 같은 덕을 잃었고, 삶의 조화가 깨져 분열과 파멸의 불협화음이 발생합니다.


철학으로 돌아갈 때는 작업 반장에게 돌아가듯이 하지 말고 눈병을 앓는 사람들이 작은 해면(스펀지)이나 달걀의 흰자를 구하러 가는 것처럼, 또는 병자가 찜질포나 세척제를 찾으러 가는 경우처럼, 그런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너는 이성에 대한 복종을 보여 주는 일이 없어도 이성 아래서 안식을 얻게 될 것이다.(아우렐리우스, 명상록 5권 9절)


스토아 철학은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병을 고치는 치료제와 같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작업장에서 인부들에게 작업을 지시하는 작업반장과 같이 고압적으로 어떤 지시를 내리고, 그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징계하지 않습니다. 대신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고쳐주는 치료제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걸 포기하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잘못된 종교나 이념 집단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론과 지혜, 실천방법을 따르다 보면 어느새 편안하게 스며들어있는 이성의 힘을 느끼며, 안식과 자유를 얻게 해 줄 것입니다. '이성 아래서의 안식', 이것이 앞으로 제시할 스토아 철학에 대해 소개하며 여러분과 함께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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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교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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