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선택했던 건 그 동안 공부했던 것들을 눈으로 보고 싶었다. 밑줄 긋고 잔뜩 글을 쓰며 읽었던 마스다 무네아키의 츠타야 서점을, 그리고 새롭게 생긴 츠타야 쉐어라운지가 궁금했다. 책을 읽으며 상상만 했던 공간, 직접 경험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감각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일본에 도착한 일요일 저녁. 꽤 늦은 시간. 저녁도 먹지 않고 다이칸야마 T-SITE로 달려왔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주말 저녁, 평일 아침, 낮, 저녁의 다이칸야마 츠타야 T-SITE를 보는 것. 꽤나 무더운 여름이지만 주말 저녁에도 츠타야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고객들 중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관광객으로 보였다.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다이칸야마로 달려왔지만, 과연 나는 여기서 무엇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찾아내야하는 걸까? 혼란스러워 무더운 밤, 컴컴한 바깥에서 정신없이 메모를 했다. 본격 여행을 시작하기 전 조금은 겁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 다이칸야마 츠타야 스타벅스
- 츠타야 T-SITE 다이칸야마 쉐어라운지
- 블루보틀
- 히이퍼
- 오모테산도 힐즈
- 시부야 츠타야
무더운 도쿄의 7월,
노트북, 마스다의 책 두 권, 노트로 채운 백팩을 메고 2만 오천보를 걸으며 보고, 쓰고, 기록했다.
아.
내가 찾고 싶었던 건 이거였을까?
도쿄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들에서
나는 한 가지를 희미하게 찾은 것 같다.
다이칸야마 T-SITE
기획자의 고집
다이칸야마 츠타야 T-SITE는 2011년 개장한 서점이다. 이 서점이 위치한 부지는 무려 4000평. 마스다는 이 곳을 '숲 속의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그래서 서점의 중앙을 따라 걸으면 나무와 함께할 수 있다. 이 곳을 둘러보면 재밌는 게 주차장이다. 무려 주말에는 2만여 명이 방문하는 츠타야 다이칸야마 T-SITE. 방문객 수를 고려했을 때 더 많은 차량을 수용하기 위해 주차타워를 짓는 것이 맞겠지만, 그는 고객 경험을 위해 120여대를 주차할 수 있도록 땅에(?) 주차장을 만들었다.
4000평의 부지에서 서점이나 상가로 쓰고 있는 부분이 그리 크지 않다. 걸어다닐 수 있는 부분이 많고, 많은 고객들이 드나드는데도 그렇게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주말 낮은 모르겠다). 1층의 스타벅스는 좌석이 오밀조밀한 데 비해 2층 쉐어라운지는 여유롭다.
마음만 먹었다면 이 커다란 면적의 부지를 활용해서 더 큰 상업시설을 만들수도 있었을텐데, 마스다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항상 강조한 '고객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산책로를 조성하고, 주차장을 만들고. 이런 기획자의 고집이 아니었다면 이런 공간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30년을 내다본
힐사이드 테라스
츠타야 다이칸야마점에서 시선을 돌려 바로 옆을 봐도 마찬가지. 츠타야 바로 옆에는 '힐사이드 테라스'라는 곳이 있다. 힐사이드 테라스는 건축 복합 단지로 건축기간만 약 30년이 걸렸다. 건축가 후미히코가 설계한 이 곳은 주거, 상업, 문화 공간이 한 데 모여있는 독특한 단지인데, 1969년 시작되어 1992년까지 7단계에 걸쳐 완성되었다.
건축기간만 무려 30년. 이 단지를 설계할 때, 건축가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다이칸야마 지형을 활용하고, 오랜 기간이 걸린 만큼 새로 지을 건물과 이미 완성한 건물 사이의 연결까지 고려했다. 하나의 단지를 완성해나갈 때, 30년이 걸리는 신중함이라니.
그 덕택일까? 츠타야 서점을 걸어오는 길에 다이칸야마의 건축물들을 하나하나 볼 수 있는데, 하나하나가 특색있고, 그 전체가 주는 다이칸야마라는 지역의 도시감각이 참 좋다.
그리고
안도 다다오의 오모테산도 힐즈
출국 직전, 우연히 만난 안도 다다오의 책 덕택에 급하게 오모테산도 힐즈 일정을 끼워넣었다. 오모테산도 힐즈는 시부야 위쪽에 있는 고급 쇼핑단지다. 이 부지에는 1927년 지어진 아파트단지가 있었다. 60년대부터 재개발 이야기가 조금씩 논의되다가 안도 다다오가 프로젝트를 맡게 된건 1996년. 그리고 프로젝트가 협의하는데만 4년이 걸렸고, 완공되어 오프닝을 한 게 2006년 1월이다.
내부 경사로를 따라 걸어보면 좋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기존 아파트 주민들과, 상업시설을 만들고 싶은 양 측이 합의가 어려웠다. 안도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최소 3개월에 한 번씩 미팅을 하며 양측의 요구사항을 들으며 합의점을 찾아나갔다. 안도 다다오가 협의과정에서 포기하지 않은 것이 두 가지였다.
첫째, 건물의 높이가 오모테산도 힐즈 앞에 있는 은행나무의 높이를 넘기지 않을 것.
둘째, 기존 아파트의 일부분을 남길 것.
상업시설을 만드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한 건데, 상가 높이를 3층 정도 높이로 제한하겠다니, 입점시킬 수 있는 점포 수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거기다 기존 아파트의 두 동을 철거하지 않고 남기겠다니 부지가 더 적어지는 셈.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포기했냐고?
결과적으로는, 안도 다다오가 그렸던 그림대로 오모테산도 힐즈는 은행나무 정도 높이의 건물이 되었고, 대신 지하를 파서 부족한 점포 수를 만족시켰다. 기존 아파트는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현실적으로 보존이 어려워 모두 철거하고 한 동을 재건축했다. 오모테산도 힐즈의 끝까지 걸어가면 그대로 복원해둔 예전의 아파트를 만날 수 있다.
기존의 집합주택을 복원해뒀다
그의 고집 덕택에 오모테산도 힐즈 옆, 육교에 올라서면 뻥 뚫린 거리를 볼 수 있다. 길게 늘어진 은행나무가 보인다. 그리고 그 뒤에 단정한 오모테산도 힐즈가 보인다. 안도 다다오의 고집이 없었다면, 이런 뷰가 가능했을까? 고층빌딩도 나름의 멋이 있었겠지만, 도심 한 복판에서 이런 도시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역시 좋다.
육교에서 바라본 시야
1992년 힐사이드 테라스 2006년 오모테산도 힐즈 2011년 츠타야 T-SITE 다이칸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