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마음맑음

하고, 하고, 또 하기만 하는

being과 doing 그리고 자존감

by 휘연

종종 심리서나 자기개발서를 보면 being과 doing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돼요. 해당하는 정확한 한국어가 없어서 보통은 영어 단어를 그대로 가지고 와서 쓴답니다. 영영사전에서 말하는 의미를 볼게요.

- Being : the quality or state of having existence, a living thing
- Doing : the act of performing or executing (웹스터 사전, https://www.merriam-webster.com)

Being은 과학에서 정의하는 생명활동을 하는 것(3번 뜻)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나오는 1번 뜻은 존재하는 질이나 상태를 말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러니 being은 be가 ‘있다’라는 의미로 우리가 존재하는, 여기 있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데에 초점이 가 있죠. Do의 경우는 ‘하다’라는 뜻으로 하는 것, 그래서 행함 정도로 한국어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전에서도 수행하거나 집행하는 행동을 이야기한다고 했으니 실제로 뭔가가 일어나도록 만드는 걸 doing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 두 단어 자체나 의미만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상당히 깊은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단어들이에요.


우리 삶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대부분 being, 그러니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doing, 뭔가 하는 것에 주로 집중하며 살고 있어요. 어쩌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내가 거기에 더 초점을 둘 게 뭐가 있을까 싶거든요. 차라리 외부로 눈을 돌려 지속적으로 뭔가 해낼 수 있으면 당연히 더 생산적이고 좋은 거 아니겠어요? 이미 살아 숨 쉬고 있고, 존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신경 쓰는 건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그럼 여기에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더해볼게요. being과 doing의 가장 큰 차이를 자존감에서 찾을 수 있어요. 저는 자존감을 자신이 존재하는 감각이나 감정을 얼마나 느끼는지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잘 존재하고 있는지, 나의 살아있음을 내가 알고 받아들이는 감각을 자존감이라고 여기기로 했죠. 그러고 나니 막연히 읽히던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내가 존재하는 감각을 잘 느낄 수 있다면 자존감이 높다고 할 수 있고 나의 존재를 잘 이해하고 있는 거죠. 반면에 자존감이 낮으면 나 자신에게 나의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요. 가장 중요한 나를 보지 못하고, 다른 것들로 채우게 될 수 있죠. 그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다른 행위들이 될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거나 상처를 받는 것들이 다 같은 맥락이에요. 심지어 내가 아닌 타인의 우산 아래 있다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나 스스로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잘 느낄 수 없어 상처를 받는 건지, 뭐가 안 좋은 건지, 등을 헤아리기 힘든 거죠.

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이상한가요? 정의에 따라 나를 잘 알고 있다 모르고 있다가 결정될 수 있으니 개개인의 입장이 다를 거예요. 하지만 제가 내린 자존감이라는 정의는 단순한 듯 하지만 생각해보면 과연 내가 그런 부분을 평소에 직시했는지 의문점을 가지게 해 주죠. 물론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나의 존재가 어디 가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삶의 어느 지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없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허무감이 될 수도 있고, 무기력이 될 수도 있어요. 그 순간 being에 대해 고민하기도 합니다. 외롭기도 하고,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하고, 무기력해지기도 하죠. 이렇게 자존감과 being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나를 찾아 나를 쌓는 것이 자존감을 키워가는 것과 같은 말이죠.

자칫하면 우리는 ‘존재의 인간(human being)’이 아니라 ‘행위의 인간(human doing)’이 되어 이 모든 행위를 하는 자가 도대체 누구이며 또 애당초 왜 하는지도 잊어버리기 쉽다. - 존 카밧진, 『처음 만나는 마음 챙김 명상』, 안희영 옮김, 불광출판사(2015), 38




반면에 Doing은 해도 해도 끝이 없어요. 우리가 doing에 집중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그 행위 자체에 용을 쓰고 하나를 하고 나면 또 다른 걸 해야 하고, 하고 또 하고 계속해요. Doing은 하는 것이고, 행위하는 그 자체를 나타내는 말이니까요. 그 과정에서 쉴 새 없이 나를 깎고 깎아 소진하기만 하죠.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금방이라도 큰일이 날 것 같거든요. 이런 시간 속에서 나는 당연히 나의 존재감을 온전히 느낄 수 없어요. 이유는 어디를 보고 있는지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죠.

삶의 측면 – 행위(doing) : 바깥세상에서 보이는 우리의 얼굴 / 존재(being) : 삶을 경험하는 우리만의 방식(프리타지&크리슈나지, 『마음의 평안과 성공을 위한 4가지 신성한 비밀』, 추미란 역, 김영사(2020), 38)

being은 나 자신으로, 내 안으로 눈을 돌리는 행위이고, doing은 밖으로 드러나는 직관적으로 당장 알 수 있는 것들에만 눈길이 가기 때문이에요. 밖만 보고 있으면 내 안이 어떤지는 당연히 볼 수 없어요. 모든 것이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상황을 살피고 있으니 나를 돌아볼 시간이나 여유를 갖기 힘들죠. 심지어 그런 시간과 힘을 쓰는 게 낭비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유를 모르는 이들도 있어요.



우리가 너무 익숙한 doing만 하고 사는 세계, 괜찮을까요? 모두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경제적 자유에 온통 집중하고 있는 시기예요. 경제적 자유도 중요하기는 한데, 오로지 doing에만 집중하는 삶은 어떨까요? Being이 존재하지 않는 doing만이 반복되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Doing이 필요 없고 being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에요. 무엇이든 적절해야 하는 거예요. doing 하는 삶은 우리의 현실이고 대외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잘 사는 건 중요하죠. 이 또한 우리 삶의 한 부분이니까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죠. 하지만 doing만 하는 삶이 정말 괜찮을까요?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가족을 위해서, 혹은 자신에게 중요한 이유로 일에만 집중하고 몰두해서 회사의 임직원이 되거나 자수성가한 중년의 누군가. 아마 삶의 많은 시간을 doing 하며 외적인 많은 측면을 쌓고 쌓아 올려 삶의 길을 탄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하게 느껴질 것 같은 그런 사람도 여러 문제를 겪는다고 하죠. 가족과의 불화일 수도 있고, 어느 순간 번아웃이 오기도 하고, 혹은 극단적으로 삶의 의욕이 사라지기도 하고 말이죠.


또 다른 예로 신생아를 키우는 엄마들의 일상을 볼게요. Doing에 집중하고 싶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니지만 많은 엄마들이 일단 당장에 닥친 일에 집중하게 돼요. 특히 타인의 손길을 조금이라도 빌릴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요즘 많은 엄마들이 그 일생일대의 천지개벽한 사건을 온전히 혼자 견뎌내야 해요. 그렇기에 출산을 하고 모든 외부 활동을 그만두게 되고 집 안에만 머무르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죠. 아이와 관련된 활동 반경이 자신의 경계인 듯 그 안에서 나가기 힘들어요. 아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그렇죠. 그러다 보니 나의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운 순간이 있어요. 단순히 나 혼자만 있는, 외로운 느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느낌.



그 느낌이 무서워서 아마 어딘가에 죽자고 파고들게 될지도 몰라요. 그게 사람(주로 아이나 남편)이 될 수도 있고, 청소나 요리가 될 수도 있죠. 그런 건 좋은 거 아냐?라고 하지만, 위의 일에만 몰두하여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취를 해낸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요. 청소 후 그 깨끗함에 만족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그 성취 안의 자신을 뿌듯해한다면 좋겠지만, 다시 다음 청소를 찾아 나서고, 아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걸 용납하기 힘들어 화나 짜증이 올라오는 기분이 느껴지죠. 이런 모습이 온전히 성취를 이룬 나를 누리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자신이 이룬 성취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놓치지 않기 위해 용쓰는 걸까요. 이건 자신만이 알아차릴 수 있어요. 외부의 요소들만 자꾸 쌓고 있으니 엄청난 성취를 반복적으로 해내고 있다 해도, 내 안은 점점 비어 가는 거죠. 그리다 어느 순간 탁- 하고 내 안이 비어있는 게, 공허함이 느껴져요.




늘 그렇듯 중도, 적당히가 중요해요. Doing을 하면서 Being을 의식해 나의 자존감을 세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죠. being을 통해 자꾸자꾸 자신을 의식해야 해요. 나라는 사람을 자꾸 봐주고, 안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살피는 거죠. 힘들었으면 쉬게 해주는 때도 있어야 하고, 에너지가 넘치면 그만큼의 활동으로 이끌어 줘야 하는 거죠. 그렇게 내가 단단해지는 존재감을 세워 그걸 기반으로 doing 하면 쌓고 있는 블록이 더 견고하게 쌓일 거예요. 즉 나 자신이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 있으니 분명 doing에서 문제가 생겨도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어쩌면 being이라는 한 단을 쌓고 시작하니 내가 할 수 있는 doing의 능력치를 한껏 끌어올리는 것을 넘어서서 더 높이 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 그저 이를 악물고 쌩으로 버티지 않아도 좋아요. 충분히 잘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아이를 낳고 doing의 괴로움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느끼며 살다가, 길을 찾는 중이랍니다. 지금도 이 길이 맞는지는 몰라요. 단지 내가 살아있는 감각을 느끼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나를 잃어버릴 것 같거든요. being이 안 되어 있으니 doing이 의미 없이 느껴졌어요. 일 다음에 일 다음에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다가, 아이를 낳고는 먹이고 씻기고 돌보고를 강박적으로 하니 어느 순간 내가 나를 놓았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걸 알려주려고 몸 여기저기가 심각하게 고장 나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반 강제적으로 Doing 하던 삶을 멈추고 나니 being이 이렇게 안 되어 있었나, 하고 놀랐답니다.


그래서 다시 찾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한 사람의 being은 단순히 그 사람만이 만든 건 아니에요. 무수한 과거의 경험들이 나의 감정과 생각들과 엮이고 엮이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에요. 그게 어떤 모양이든 걱정 말아요. 처음부터 내 마음에 쏙 드는 형태로 되돌릴 순 없어도 어느 정도 수선하고 덧붙일 수 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내 감정들을 느낄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매 순간 나로 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늘 찾고 있어요. 아직까지 쉽진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올바른 방향을 잡은 건 알 것 같아요. 저항하는 나 자신을 뚫고도 끊임없이 이렇게 글을 쓰고, 쓰고 나면 나 스스로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거든요.


여러분은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알아 가고 있나요? being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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