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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니 May 18. 2021

11. 친정 부모님이 이혼을 받아들이는 과정

이혼은 부모 자식 관계도 성찰하게 합니다

안녕하세요? 레니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지난 글을 올린 지 벌써 2달이 넘게 지났습니다. 


그동안 저는 상당히 바빴습니다.

이혼소송이 종결되어서 여러 후속 일처리로 바쁜 것이라면 참 좋았 텐데, 아직 소송은 진행 중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법원 절차가 많이 지연되어서인지 참 더딥니다. 저 말고도 인터넷상에서 이혼소송을 진행하시는 많은 분들이 코로나로 인한 절차 지연을 겪고 계신 것 같습니다. 지치지만 지칠 수 없으니, 끝까지 잘 버텨 봐야지요.



오늘은, 이혼을 하면서 친정과 겪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합니다.



사실 이혼의 정의는 혼인관계의 해소이니, 이혼이란 두 성인 배우자 의 문제이며 그것이 가장 본질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의사결정으로 인해 영향을 받게 되는 자녀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 해도 가장 본질은 배우자 간의 문제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혼 과정을 겪다 보면, 나와 내 배우자 간의 이별이라는 핵심보다는 다른 부차적인 문제이 나를 더 괴롭게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겪게 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주변에 이혼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주변인들의 반응, 가족들의 반응 같은 것들입니다. 이는 이혼이 띠고 있는 사회적인 맥락 때문일 것입니다.




이혼은 과거에는 실패이자 수치였습니다. 이혼이 낙인이던 시기의 영향이 지금까지도 조금은 드리워져 있는지 모릅니다. 그 영향은 시대가 빠르게 바뀌어 오며 점차 옅어졌습니다. 즉 이혼을 하는 당사자보다 30년 정도 앞선 세대를 사셨던 부모님들은 아무래도 이혼을 좀 더, 실패에 가까운 뉘앙스로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이혼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도 점차적으로 바뀌어 왔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아무래도, 자식과 부모님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이혼이 실패라는 기본 인식과, 자식은 부모와 동일체라는 인식이 합쳐진 상황에서, 자식이 이혼 결심을 전해올 경우 - 부모님은 이것을 마치 "본인 인생의 실패", 혹은 실패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님 본인 인생에 대미지를 입은 것으로 받아들이시게 되기 십상입니다.



자식의 이혼 결정을 수용하고 지지하는 좋은 부모님이라 해도, 저런 세대적 사고의 영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식에게 부지불식간 상처를 주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자식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부모님 본인의 일로 받아들여 오히려 자식에게 속상한 감정을 역으로 쏟아놓아, 이혼소송 중인 자식이 오히려 부모님의 감정을 위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또한 자식 입장에서도, 부모님의 감정 섞인 한 마디는 타인의 한 마디보다 훨씬 아픕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부모님만은 나를 지지하고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데, 부모님에게 이혼과 관련하여 서운한 소리를 들으면 인내심의 끈이 끊어질 때가 있습니다. 분노합니다.


"이혼한 건 난데 왜 엄마 일인 것처럼 엄마가 더 흥분해서 내가 그걸 들어주고 있는 거야"라고 하면 부모님들은 아마 잘 이해를 하시기 힘들 것입니다. 자식에게 격앙된 감정을 토로하는 것에 대해서 문제라고 인식을 하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이혼 과정에서 친정의 조력을 받는 경우라면, 친정 부모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항하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당장의 실질적 도움이 절실하기 때문에 참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이혼 절차의 심리적 짐만으로도 버거운 어깨에 추가적인 무게가 더해지면, 마음의 병이 나는 상황이 오는 것입니다.




힘든 것은 당연합니다. 힘든 마음을 견디며, 왜 이렇게 속상한지 다시금 생각해보다가, 부모님의 시선이 성인이 된 지금의 나에게도 너무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구나 - 그러지 말아야겠다, 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하면 됩니다.



이혼은 정말이지 인생 최고 레벨의 자기 성찰의 기회입니다. 이혼을 겪으며 참으로 많은 다양한 것들이 어렵고 아프게 다가옵니다. 어떻게 해야 아픔을 극복할지 치열하게 생각하는 과정에서 아픔의 원인을 찾게 되고, 그 원인에서 부족한 나 자신의 모습들을 발견합니다. 휘둘리는 나, 타인의 시선대로 살아온 나,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스스로를 더더욱 괴롭히는 나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혼은 남들이 딱히 좋게 보아주지 않는 선택지를 스스로의 판단과 실행 의지로 고르는 행위입니다.

이혼 과정에서 성찰이 동반되고 독립심이 길러지는 것은 거의 필수 불가결한 일입니다. 겪고 있는 제 입장에서는 이혼이라는 것 자체에 내재된 기능으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친정 부모님께 이혼을 밝힌 후 상처가 되는 반응을 접한다면, 부모님의 세대적 한계를 이해하고, 자식의 이혼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시간적 여유를 드리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상처되는 말씀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 듣기 힘들다, 정도로 명확히 표현을 하는 선에서요.


친정부모님도 사람 따라 다를 것이니 만약 자식의 선택을 지나치게 깔아뭉개는 분이라면 다른 인간관계에서 하듯이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입니다.

자식의 선택을 인정하고 존중하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감정적 부침을 겪어 의도치 않게 자식을 힘들게 한다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며 여유를 드리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부모님의 판단과 판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바라보려고 하던 면이 있다면 한걸음 더 독립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으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혼으로 인해 친정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도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있습니다. 왜 잘 살지 못하고 이혼을 해서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하나, 왜 배우자를 잘못 선택했나 라는 죄책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머리로는 스스로 후회할 일인지언정 부모님께 죄송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만, 사회적 맥락에서 따로 빠져나와 살아온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이 왠지 죄송스럽습니다.


이 부분은 참, 건강하지 못한 감정이라고 느꼈습니다.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게 옭아매는 감정이라고 느꼈습니다.


생각건대, 내 인생의 선택에 대해 누군가에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내 인생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귀중한 태도입니다. 자식에게도 가르쳐야 할 태도입니다. 내 인생이 소중하기 때문에 더 이상 불행을 지속하지 않기 위하여 갖은 어려움도 감수하고 한 선택에 대해, 누군가에게 죄책감을 갖고 미안해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쩌면 정말 심리적으로 여유가 넘친다면,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당당하면서도 동시에 마치 '대의를 따르느라 이렇게 했지만 당신이 입은 상처는 유감이다'라는 식의 침착한 미안함 정도는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혼 소송을 겪고 있는 우리들은 자기 자신부터 세심히 돌보고 회복시켜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미안해하는 데에 쓸 에너지는 없는 것입니다.




배우 윤여정 님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윤여정 배우 같은 멋진 사람들도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합니다. 윤여정 배우의 한 인터뷰 기사를 보았습니다(아카데미 수상보다 한참 전입니다). 이혼을 하고 난 후 처음 TV에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어서 윤여정은 이혼녀이니 나와서는 안 된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이고 사람입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나도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제를 쓰고 나니 어쩐지 친정 부모님께 이 글에 대해서는 조금 죄송해지기도 하네요. 다행히 저의 친정은 제 이혼 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갈등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요.


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 중 친정의 인정과 지지 없이도 기꺼이 이혼을 선택하는 독자님이 계시다면,

저 또한 이혼 선택은 친정의 지지와 무관히 했으며, 친정이 도와주지 않으셨다 해도 지금과 똑같이 이혼 소송을 하는 중이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성인이니까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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