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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Jan 13. 2019

#14 허풍선이

남들 자랑 듣느라 피곤한 당신에게

 "거기 여자분 이 동네에 사실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아니, 왜요?", "혹시 아테네 출신 아니신가요?", "칫! 제 얼굴에 아테네 출신이라고 쓰여있나요?", "네! 얼굴도 그렇고 스타일이 세련되신 게 아테네 출신이 확실한데요." 카테리나는 오늘도 언제나처럼 작업 거는 남자들 때문에 피곤하다. "저 남자 친구 있어요.", "당연히 있겠죠. 그게 아니라 제가 관상을 좀 볼 줄 아는데 조만간 아테네로 돌아가시게 될 겁니다." 카테리나는 귀가 쫑긋해서 그 남자에게 물었다. "흠... 흠...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현재 그녀의 남자 친구는 그녀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나마 이 산 구석 사람들과는 다르게 야망과 돈 욕심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어서 빨리 대박 나서 아테네 재입성을 항상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이런 얘기를 들으니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제 소개를 먼저 드리죠. 저는 아테네에서 투자 사업을 하고 있는 포스카(Φούσκα/그리스어로 거품이란 뜻)라고 합니다. 거기 아시죠?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 주상복합 아파트. 제 오피스는 거기에 있는데 지금 확장공사를 하느라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투자할 곳이나 찾으러 다니다 여행도 할 겸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포스카는 최근 아테네에서 사기를 치다가 꼬리가 밟혀 도망 다니고 있는 신세다. 대부업에 종사하는 지인 형님과 '드라크마 은화' 관련해 세상 물정 모르는 친구에게 작업(?)해서 제법 큰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다른 작업을 준비하던 차에 그 지인 형님이 모든 돈을 갖고 잠적해버렸다. 소문으론 페르시아로 넘어갔다던데... 역시 머리 검은 짐승은 믿지 말라더니만...


 "올해 아테네로 넘어가시려면 지금이 적기인데, 저야 사실 쉬엄쉬엄 여행이나 다니면서 땅을 보려 한 건데 같은 아테네 출신을 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요. 투자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페르시아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 문화산업도 확산될 겁니다. 최근 '애니멀 팝'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마 잘 모르실 수도 있는데요. 이게 페르시아 동방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중국 아시죠? 중국에서 '애니멀 팝'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어요. 제가 잘 아는 형님도 지금 페르시아에서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계시죠." 이 남자는 쉴 새 없이 래퍼처럼 떠들어댔다. "그런데, 뜻밖에 이런 촌 구석에서 그걸 발견한 겁니다. 혹시 아까 장터 중앙 무대에서 '백조의 노래' 들으셨나요?", "네! 물론이죠. 노래 듣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카테리나는 아까 들었던 그 감동의 여운이 아직도 남은 듯 몸서리치며 대답했다. "제가 말씀드린 '애니멀 팝'이 이겁니다. 아까 눈치를 보니 저기 저 사회 본 사람이 주인인 것 같던데, 이제 힘도 들고 은퇴하고 싶다고 선술집에서 혼자 밥 먹으면서 중얼중얼 거리더라고요. 지금 이 가치를 모르는 거죠. '황금알 낳는 거위' 아니 '백조'를 갖고 있으면서 그 가치를 모르다니... 허허..." 이렇게 말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그렇군요. 맞는 말씀이에요. 저도 왕년에 아테네에서 공연 관련 일을 좀 했었는데 이게 하나만 빵 터지면 돈을 긁어모을 수 있더라고요. 근데 중요한 건 투자할 돈이 없네요." 그녀는 그 남자의 말에 크게 동요되었다가 문득 현실을 깨닫고는 우울해졌다. "남자 친구한테 한번 잘 말해보세요. 저는 사실 뭐 별 상관은 없습니다. 원래 제가 집중해야 할 비즈니스들이 있어서요. 그래도 만약 생각이 있으시면, 빨리 결정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마침 제가 아까 말씀드린 그 페르시아와 무역한다는 그 형님이 도자기도 2/3 가격으로 받아줄 수 있다고 하니 도자기 투자도 같이 생각해보시고요. 그런데 제가 오늘까지만 이 마을에 머물러서 오늘 안에 결정해주셔야 합니다." 여자는 마음이 급해졌다. 사실 이 남자가 말한 내용 중에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다. 'High Risk, High Return'이다. 아무런 배팅이 없다면 계속 이 촌구석에 처박혀서 여생을 보내야 될지도 모른다. 저기 생선가게 앞에서 남자 친구가 손을 흔든다. 그 남자의 연락처를 받아놓고 남자 친구에게 뛰어갔다.


 그 남자는 잠시 마을 장터를 기웃기웃 돌아다니다가 장터 중앙에 있는 무대에 다다랐다. 오늘 동물 공연이 모두 끝나 사회자가 정리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사람들이 아쉬운지 여전히 모여서 동물들을 구경하고 있다. 나는 슬쩍 그 사회자에게 다가가 물었다. "백조, 오케이?", 그 사회자가 입술 모양으로만 말했다. "오케이!"라고. 정리를 모두 마친 사회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이~ 친구, 오랜만이야. 우리 아테네에서 만나고 몇 년만이야? 내가 얼마 전에 아테네에서 열린 5종 경기를 마치고 여행이나 할 겸 돌아다니고 있는데 여기서 볼 줄이야!", "5종 경기라고? 거기 출전했었나?", "말도 말게. 이번엔 진짜 힘들더라고. 하지만 내가 누군가? 올해 드디어 우승을 했다네." 중앙 무대를 중심으로 흩어지려던 사람들이 아테네 5종 경기 소식을 듣고 다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무리 중 한 명이 물어봤다. "5종 경기에 참가했다고요? 그렇게 근육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그러자, 포스카가 한마디 했다. "제가 좀 마른 편이라 그런 오해를 자주 듣습니다. 실제로 시합에서도 상대방이 저를 얕봤다가 크게 다치는 경우도 발생하죠. 아시죠? 레슬링. 레슬링 경기에서 저보다 아마 키가 두 뼘 정도 더 크고 다리 근육이 저기 보이는 저 소년 몸통만 한 친구랑 결승에서 붙었는데, 예상대로 힘이 어마어마하더라고요. 힘으로만 승부하면 아마 제가 졌을 겁니다. 그 친구가 암바로 저를 제압하려는 순간 브라질에서 연마한 브라질 유술, 아마 여러분들은 잘 모르실 텐데 '주짓수'라는 무술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몸을 비틀고 빠져나와서 '트라이앵글 초크'로 상대방을 실신시켜서 승리했죠. 정말 힘든 경기였습니다. 제가 여기서 이 친구에게 시범이라도 보여주고 싶은데, 암바에 걸린 왼쪽 손목이 부상이라... 이 친구는 뭐 그 덕분에 산거죠..." 옆에 있는 그 사회자 어깨를 툭치며 껄껄 웃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년이 다시 한번 물었다. "5 종목 득점 합계로 순위를 결정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아저씨는 레슬링 말고 또 어디서 1등을 하셨는데요?", "어이 소년, 5종 경기에 대해서 잘 아나 본데... 달리기는 1위, 멀리뛰기 2위, 레슬링 1위, 나머지 창던지기와 원반 던지기는 레슬링 이후에 진행했는데 왼쪽 손목 부상으로 생각보다 기록이 좋지 않았지. 그런데 가산점이 높은 종목 순위가 높아서 이렇게 우승을 할 수 있었던 거야." 소년은 이상하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 남자는 소년의 표정을 살피다가 급하게 화제를 전환했다. "이봐! 소년, 그런데 왜 이렇게 옷이 젖었어? 비는 오늘 오전에 다 내렸는데... 내가 너무 무서워서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거 아냐.... 하하하." 그 남자는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계속 해댔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에 단추가 다 날아간 듯한 낡은 외투를 입은 한 어르신이 군중을 뚫고 나와서 한마디 했다. "이보게, 그러면 한번 멀리뛰기라도 보여주게나. 그건 손목 하고는 별 상관없는 종목이니... 나도 한때 아테네에서 살았었는데, 가산점 얘기는 처음 들어보네. 그리고, 멀리뛰기, 원반 던지기, 창던지기, 달리기, 그다음 마지막 순서로 레슬링을 하는 걸로 아는데 순서가 왜 그렇게 된 거지?", 소년은 짓궂게 웃으면서 그 남자에게 다시 말했다. "아저씨가 이번에 우승하셨다고 했죠? 우리 둘째 형이 이번에 5종 경기에 참가했다가 돌아오는데, 우승까지 하셨으면 아저씨를 바로 알아보겠네요. 이제 거의 올 시간이 되었는데 반갑게 인사나 나누세요.", "아이코! 이런! 내가 오늘 투자 상담하기로 한 그 여자분... 이름이 뭐였더라? 카테리나? 그분 투자 상담을 해야 해서. 이봐! 친구, 내가 요즘 이렇게 깜빡깜빡하네. 그럼 먼저 일어나 보겠네. 여러분들도 밤이 늦었네요. 요즘 사자가 자주 출몰한다는데 빨리빨리 집에 들어가세요." 말하며 성급히 자리를 옮기는데, 갑자기 그 소년이 반가운 얼굴로 소리를 지른다. "혀엉~~~ 여기야! 여기~ 아저씨, 우리 형 저기 오네요. 저기..."




 한참 열심히 '고객사 응대 커뮤니케이션(이라 쓰고 '슬기로운 생활'이라 적는다)' 하던 시절, 결혼식부터 상갓집까지 빠짐없이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한 분이 있다. 나이가 제법 있던 고객사 분이었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회사를 대표해 부의금을 들고 찾아갔다. 간단히 육개장이나 한 그릇 먹고 나올 계획이었는데, 나를 붙잡고 장례식장에서 받은 온갖 명함을 보여주며, "이 분이 3선 의원까지 하신 분이네.", "이 분은 ***대학교 총장 하시다가 지금은 은퇴하셨네.", "이 분은 말이야..." 30분 넘게 그분의 황금인맥(?)을 다리에 쥐가 나는 걸 참아가며 듣고 있어야 했다.


 예전 어르신들은 그런 특별한 오프라인 장소에서 인맥/자식/학벌/경제력 등을 자랑했다면, 지금은 '인스타그램'으로 장소가 옮겨졌다. 물론,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어떻게 고상하게, 상대방에게 '내 자랑'을 티 안 나게 표현하냐이다. 솔직히, 나 역시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은 가지고 있는 걸 자랑하고 싶고, 가지지 못한 걸 숨기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인 듯싶다.


 한편으로, 우리는 자랑하거나 과시할 것이 없게 되면 우울해한다. 내가 아는 지인 중 하나는 인스타그램을 보면 나만 외롭고, 나만 힘들고, 나만 지지리 궁상처럼 사는 것 같아 탈퇴했다고 한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비교에서 출발한다. 과시하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허풍이 되고, 거기에 삐뚤어진 욕망이 추가되면 우리는 '사기'에 직면하게 된다. 사기는 그 욕망을 교묘하게 건드린다. 사기꾼들의 주요 특징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1. 나에게 경청은 없다. 말하기에도 바쁘다

 사기꾼 치고 말 못 하는 사람 못 봤다. 또, 사기꾼 치고 경청 잘하는 사람도 못 봤다. 말이 불필요하게 많으면서, 사소한 일에도 진실임을 수시로 강조한다. 쓸데없이 상대방 칭찬을 시도 때도 없이 던지며 친한 척한다.  


2. 세상 모든 일에 전문가인 척한다

 우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5종 경기 챔피언이자 투자 전문가에 트렌드 세터까지 겸한다. 우리 주변에도 정도 차이만 있지 세상 모든 일에 전문가인 사람들이 있다. 육아, 부동산, 스포츠, 주식, 건강 등 모든 분야에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정 지어 말해준다. 제시하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는 해외 자료일 경우가 많다.


3. 인맥 자랑에 열심을 다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확인하기도 어려운 인맥과 이력을 늘어놓는다. 개인적으로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워서 반발감에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특정 기업(보통 대기업)에 직책과 성명을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설명해주는 사람들을 그리 신뢰하지 않는다.


4. 경력이 쓸데없이 화려하다

 이런 사람들의 명함을 보면 '감투'가 너무 많다. '한국오소리감투관리위원회 위원장'과 같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감투'까지 명함에 가득 쓰여있는 사람들을 보면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5. 모든 대화의 결말은 돈으로 끝난다

 결국 기승전'돈'으로 마무리된다. 상대적으로 작은 돈을 투자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지금 투자하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며 사람을 초조하게 만든다.


 왜곡된 욕망으로 삐뚤어진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해당되지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속지 않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도에 벗어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된다.


사기를 당한 사람들은 모두 도둑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대가 없이 큰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비싼 값을 치르게 했다.

조지프 베일(미국의 전설적인 사기꾼)
     

카테리나와 남자 친구는 백조를 어떻게 구입할 수 있었을까요? 궁금하면 아래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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