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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Jan 12. 2019

#13 백조와 그 주인

언제나 데드라인에 쫓기는 당신에게

 오늘은 산속 마을에 5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장터는 언제나 흥겹다. 장터 한 구석에서 부주키를 멋지게 치고 있는 연주자, 차력쇼를 하는 사람, 먹거리 냄새를 맡고 몰려든 떠돌이 개 무리, 멋지게 차려입고 애완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 흥정하느라 목청을 높이는 상인들, 점심부터 술을 마시고 길바닥에 쪼그려 자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과 동물들로 어수선하고 왁자지껄하다.


 "저기 저 사람 좀 봐. 오다가 흙탕물을 뒤집어썼나 봐! 웬일이니? ㅋㅋ" 마을장터 초입에서 과일을 고르던 한 아낙네가 잿빛으로 바뀐 정장 바지와 구두를 신고 터벅터벅 황소와 함께 걸어오는 소몰이꾼을 보고 옆 친구에게 속삭였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장터에 도착한 소몰이꾼은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피다 깜짝 놀라서 생선가게 뒤편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다. 소몰이꾼 애인 중 하나인 늙은 과부가 여자 하녀들과 함께 장터에 왔다가 돌아가는 걸 숨어서 지켜봤다. 한 여자 하녀의 손에 커다란 수탉이 들려있다. '오늘 삼계탕을 만들어먹나?, 이따가 저녁에 잠깐 들릴까?, 아니다. 오늘은 '카테리나'를 만나는 날이니 조심해야겠다.' 소몰이꾼은 혼자 골똘히 생각 중이다. 그에게는 두 명의 애인이 있었다. 한 명은 부유하지만 과부인 늙은 애인과 또 한 명은 예쁘고 놀기 좋아하는 젊은 애인이다.  


 소몰이꾼은 한숨을 돌리고, 다시 장터를 두리번거리다 왠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카테리나를 발견했다. "카테리나~ 여기야, 여기! 저 남자는 누구야?", "아니, 투자상담 좀 잠깐 받았어. 근데 자기 옷이 왜 이 모양이야? 창피해서 같이 못 다니겠어." 카테리나는 주변 시선을 의식하면서 소몰이꾼에게 한마디 했다. 그리고 바로 "자기, 근데 황소는 팔았어? 황소 판 돈 얼마 받았어? 내가 자기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데 완전 대박 아이템을 찾아냈어. 이제 우리 황소로 힘들게 밭 갈고 그럴 필요 없어. 나랑 같이 '인싸'될 수 있다니깐!", 소몰이꾼은 '아니, 우리라니... 내가 힘들게 밭 갈았는데...' 생각하면서 카테리나에게 말했다. "오호! 그래? 그 대박 아이템이 뭔데? 그리고, '인싸'는 또 뭐야?", "아... 그런 게 있어. 여하튼, 자기는 나만 따라와 봐."


 카테리나는 소몰이꾼 팔짱을 낀 채 사람들이 동그랗게 모여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그곳에 가보니 백조가 죽은 것처럼 목을 쭈욱 뺀 채 늘어져 있지 않은가! 지금 백조는 쉬고 있고, 오늘 공연은 아쉽게도 모두 끝났다고 한다. 소몰이꾼은 카테리나에게 물었다. "무슨 공연인데 끝났다는 거야?" 카테리나는 1시간 전에 들었던 '천상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원숭이가 사람처럼 부주키 선율에 맞춰 춤추는 것도 놀라웠지만, 동물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백조의 노래'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비록 멀리서 지켜봤지만, 사회자가 어떤 행동을 하니 백조가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하는데, 그 순간 사람들 모두 따라 울 정도로 엄청났다.


 카테리나는 소몰이꾼에게 말했다. "자기야, 이거 우리 인생에 전환점이 될 놀라운 아이템이야. 내가 아테네 출신인 거 알지? 내가 아테네에서 잘 나가는 공연은 거진 다 봤는데 이런 공연은 처음이야. 이런 산골 구석에서 이런 경험을 할 줄 생각도 못했거든. 이 백조는 무조건 사야 돼. 그리고, 우리 같이 아테네 가서 살자."

소몰이꾼은 "우리 같이 아테네 가서 살자"라는 말에 그만 혹했다. 그동안 카테리나와 같이 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는데 지금이 바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 백조 그거 얼마나 된다고 내가 사버리겠어! 근데 아직 소를 팔지 못했는데..."


 "이봐요, 사회자 양반 그 백조 얼마나 하오?" 무대를 정리하던 사회자는 자기 앞에 서있는 두 남녀를 힐끗 쳐다본 후, 다시 무대를 정리하면서 무심히 말했다. "너무 비싸서 아저씨는 못 삽니다. 팔지도 않을 거고요.", "아니, 이 양반이... 얼마요? 얼마? 내가 오늘 소를 팔건대 그 돈이면 이런 백조 몇 마리는 살 거요.", 그 사회자는 역시나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말했다. "비싸다니깐요. 거기 옆에 있는 황소 한 마리보다 비싸요.", 소몰이꾼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괜한 자존심에 하얀 정장 깃을 고쳐 잡고 말했다. "오늘 급하게 오느라 돈을 안 챙겨서 그런데 여기 이 황소를 넘길 테니 이 백조를 나한테 파시오." 그러자, 사회자는 자세를 고쳐 앉고 두 남녀를 바라보면 말했다. "손님이 정 그렇게 하시겠다면... 안 그래도 나도 이제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참에 은퇴하게 생겼네요. 하하하, 아~ 그런데 동물들과 내가 너무 정이 들어가지고 고민이네요.", 소몰이꾼은 그 남자가 마음이 바뀔까 봐 급하게 소 코뚜레에 연결된 줄을 넘기고, 낚아채듯 백조가 들어있는 커다란 새장을 들고 나왔다. 소몰이꾼은 한 손엔 새장을, 다른 한 손은 카테리나를 잡고 잰걸음으로 뛰듯이 걸었다. '역시나 저 남자 마음이 바뀌었나 보다.' 그 사회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황급히 쫓아온다. 우린 때마침 지나가는 마차 택시를 잡아탔다. 다행이다. "야호! 오늘 아침에 있던 일들은 액땜한 거구나!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었어." 하지만, 불안한 마음도 한편에 갖고 있다. 아직까지 백조의 노랫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소몰이꾼은, 아니 백조 주인은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이런저런 고민이 가득한데,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어깨에 기대고 있는 카테리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하다. 백조 주인은 한숨을 크게 쉰 후, 모자를 벗고 숱이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쓸어 넘기는 순간 마차가 흔들리자 새우리도 따라서 크게 흔들렸다. 그러자 갑자기 백조가 무엇에 놀란 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달리던 마차도 백조의 우아하면서도 애절한 노래를 듣느라 멈춰 섰다. 노래가 끝나자 백조 주인은 무릎을 탁 치며 카테리나를 꼭 껴안고 말했다. "이거였구나! 이제 우린 부자다! 디오니소스 님 감사합니다! 카테리나! 아테네에서 제일 큰 공연장을 예약해 줘. 그리고 카테리나가 그쪽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기자들이랑 음악평론가들 좀 초대해줘. 비용? 그런 거 신경 쓰지 말라고! 대출받으면 된다니깐. 아테네로 드디어 진출하는구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한 두 남녀는 마차 안에 몰래 들어와 백조를 노렸다가 실패하고 사라진 살모사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공연 준비는 일사천리로 준비되었다. 마침 디오니소스 공연장도 비수기라 지체 없이 바로 대관할 수 있었다. 백조 주인은 우뚝 솟은 디오니소스 공연장을 내려다보며 감격에 젖었다. '매년 절기마다 디오니소스 신전을 방문할 때마다 지나치던 공연장이었는데 이 곳에 내가 서있다니...' 공연 준비 10분 전. 관중석이 꽉 차진 않았지만 그래도 눈에 익은 몇몇 셀럽들과 음악 관련 기자와 평론가가 VIP석에 앉아있다. 카테리나는 기자와 평론가들에게 백조의 노래에 대해 뭐라 설명을 하는 것 같은데 표정들이 시큰둥하다. 아마도, 저 사람들은 VIP들에게만 나눠줄 한정판 페르시아 도자기 그릇 때문에 이 자리에 참석했을 것이다. '두고 봐라!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어줄 테니...' 드디어 막이 올랐다. 음악 전문 기자와 평론가들이 한 마디씩 했다. "얼마 전에 그 부주키 공연처럼 뒤통수 맞는 건 아니겠죠?", "나 그때 그 집 아버지 때문에 일부러 선배 평론가까지 데리고 갔다가 얼마나 욕을 먹었는데..." 무대 중안에 핀 조명이 떨어지자 커다란 새우리 안에 하얗게 눈부신 백조가 앉아있다. 그리고 하얀 중절모에 하얀 정장과 백구두를 신은 백조 주인이 나란히 서있다. 백조 주인은 하얀 중절모를 벗고 청중에게 인사했다. 백조 주인은 호흡을 가다듬고 새우리를 크게 흔들면서 숱이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연신 쓸어 넘겼다. '이상하네, 왜 백조가 반응이 없지?' 백조 주인은 당황스러웠다. 더 힘차게 새우리를 흔들며 과격하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래도 백조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상하네, 분명 마차에선 이렇게 하니까 노래를 불렀는데...'


 공연장 분위기가 무겁다. 지난번 부주키 공연에서도 제일 먼저 일어났던 그 평론가가 역시나 참을성 없이 바로 일어나 나가 버렸다.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한다. 무대에선 당황한 백조 주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계속 한 손으론 새장을 흔들고, 다른 손으론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다. 공연은 설명할 필요 없이 대실패다. 정신 차리고 보니 카테리나도 안 보인다. 모두가 떠난 텅빈 무대 위에서 백조 주인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백조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옆에 있던 마이크대를 쥐어 잡고 백조를 내리치려는 순간, 그때 마차에서 울려 퍼진 바로 그 소리, 눈물이 날만큼 아름답던 그 소리가 백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 사회자가 쫓아오면서 하려던 말이 이것이었구나. "이 백조는 죽음을 느껴야 노래를 부른다는 걸 기억하세요!"     




 집친구(와이프)가 문자로 새로운 미션을 부여했다. "피자 주문했으니, 도미노피자 마포점에서 찾아와." 내비게이션 앱을 열고 집 근처 도미노피자를 검색했더니, 가장 가까운 곳에 '도미노피자 신촌점'이 나왔다. '그래, 지난번에 여기 가봤지. 신촌점인데 마포점으로 헷갈렸나 보다.' 나는 일말의 의심 없이 신촌점에 찾아가 주문한 피자를 당당히 요청했다. 결말은 모두가 예상한 그대로다.    


우리는 이번 우화에서 3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1. '지식의 저주'는 어디서 오는가? 텔레파시 커뮤니케이션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지?" 이 표현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구체적인 설명 없이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텔레파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모든 정보를 넘겨짚고 이해하게 된다. 유사한 개념으로 '지식의 저주(The Curse of knowledge)'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을 다른 사람도 알 것이라 추측하고 행동하는 걸 말한다. 따라서,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없다면, 몇 가지 정보만으로 백조가 노래하는 방법을 추측한 백조 주인과 같은 실수를 저지를 수밖에 있다. '이심전심'은 업무에는 적용하지 말자.  


2. 데드라인이 닥쳐야 노래를 부르는 백조, 여러분은 직장 내 백조인가?

 말 그대로 '데드라인(deadline)'이 임박해야 움직이는 사람들(나를 포함해)이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백조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면 그나마 용서가 되겠지만 우리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마감에 쫓겨 기획했던 내용을 모두 담아내지 못하고, 심지어 오탈자도 제대로 확인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렇다면 '데드라인'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데드라인을 잘게 쪼개기 : 단계별 데드라인을 만들어 업무 완성도를 지속적으로 체크

  - 데드라인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데드라인을 공개해 의무적인 책임감 강화

  - 데드라인을 빡빡하게 잡기 : 최종 납기일을 의도적으로 1~2일 줄이기

  * 해당 사항은 '백조'와 같은(나와 같은) 사람에 한정합니다.   


3. 리더라면 팀원의 특징을 파악하고, 최대의 역량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리더는 팀원이 백조처럼 데드라인에 몰아세워야 노래를 하는 유형인지, 황소처럼 끈기 있는 유형인지, 각다귀처럼 짝을 이뤄야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유형인지 평상시에 세밀하게 관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각 팀원 특징에 맞는 역할을 부여해 최대의 역량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하자면, 항상 죽음의 공포 앞에 놓여야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백조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백조는 과연 행복했을까? 만약 당신이 백조의 주인이라면 백조가 행복하게 노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오늘이 그날입니다.
당신이 하고자 하는 모든 시작의 날은 오늘입니다.

짐 스토벌(미국 작가/운동선수/사업가)

지난 부주키 공연이 어떠했길래 음악 평론가들이 이렇게 혹평을 늘어놓는지? 궁금하시면 아래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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