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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Jan 11. 2019

#12 각다귀와 황소

거절당해 상처 받은 당신에게

 각다귀 두 마리가 1시간 넘게 언성을 높이며 서로 악다귀를 놀리고 있다.

(*각다귀: 다리가 길며, 몸이 가늘고 모기와 비슷하게 생긴 곤충. 대개 초원과 저수지 같은 물가에서 볼 수 있음. 유충은 며루라 부르며 주로 식물 뿌리, 벼나 보리 뿌리를 잘라먹는 농업해충. 생김새와 달리 사람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먹지는 않음.)


 "내가 너를 며루 때부터 봐온 사이라 충고하는데, 남한테 빌붙어서 그렇게 살지 마라."

"아니 나만 빌붙어서 사냐? 나만? 왜 남에 들러붙어 남의 몫을 뜯어먹는 사람을 '각다귀'라고 부르는데? 원래 각다귀는 그런 거야. 그러는 너는 며루 때 나한테 빌붙어서 내가 보리 뿌리 잘라먹는 법도 가르쳐줬는데... 에라이~ 이런 '각다귀'같은 각다귀야!" 각다귀 2마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친구다. 유충 때부터 만나면 이렇게 티격태격하지만 금방 화해하는 절친 사이다.


 "너, 아까 저수지 갈대숲에서 그 암컷 각다귀랑 뭐 하고 있었냐? 나한테 오늘 동창회 땜에 못 만난다고 하더니만 갈대숲에서 연애하냐?" 조금 전 물에 빠졌던 그 소년이 갈대숲을 헤치는 바람에 갈대숲에서 한참 분위기 잡던 각다귀 친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야! 아직 썸타는 관계란 말이야. 동창회에서 오랜만에 만나서 그냥 카톡만 하다가 오랜만에 오프에서 만난 거다. 근데 너 질투하냐?" 각다귀 친구가 얼굴이 벌게져서 말했다.

"아니 이 자식이 질투라니, 내가 친구가 너 밖에 없는 줄 아냐? 니 인생 불쌍해서 같이 놀아줄라고 부른 건데 거짓말이나 하고 있고. 나도 이제 다른 친구들이랑 놀 테니 앞으로 연애나 열심히 하시게나." 빈정거리며 각다귀가 말했다. "그래 알았다. 근데 너 요즘 질 나쁜 모기들이랑 놀러 다닌다는 얘기가 있더라. 내가 니 친구라서 특별히 일러주는 건데, 너 요즘 소문이 별로 안 좋아. 너 점점 '수컷 모기'랑 닮아간다고 각다귀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거 알고는 있냐?", "야 이 XX야, 너 지금 당장 '수컷 모기'라고 한 거 취소 안 해? 그래 나 '수컷 모기'다. 너 오늘 피 한번 뽑자!" 화가 난 각다귀는 친구 각다귀에 얼굴을 들이댔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던 각다귀 두 마리는 언제나처럼 서로 오해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고 마무리했다.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또 싸우겠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끝났다. 그런데 갑자기 지진이 난 듯 땅이 크게 흔들렸다. ‘그래! 생각해보니 우리가 황소 등 위에서 싸우고 있었구나!’ 각다귀 두 마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 봤다. 요즘 썸타는 각다귀가 조심스럽게 한 마디 했다. "혹시... 우리가 너무 시끄럽게 해서 황소가 화난 거 아냐?", "맞아, 내가 봐도 분명 화난 것 같아. 내가 이 황소에 대해 좀 들었는데 이렇게 막 강하게 의사 표현하는 친구가 아니거든. 내가 아는 모기 친구들도 자기네들이 귀찮게 해도 이 황소는 크게 동요도 안 한다고 하더라고. 그러니까 이거 분명히 화난 거야! 너 빨리 황소한테 사과해야겠다." 요즘 부쩍 모기랑 놀러 다닌다는 그 각다귀가 친구에게 말했다. "사과를 왜 내가 해야 하냐? 니가 아까 막 화난다고 소리 질러서 황소도 이렇게 화난 거잖아! 황소가 더 화내기 전에 네가 빨리 사과해!" 각다귀 두 마리는 목소리를 낮춘 채 또다시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 요즘 연애하느라 사과 경험이 많은 각다귀가 총대를 맸다.


 '사과했는데 황소가 거절하면 어떡하지? 각다귀 주제에 어디서 시끄럽게 난리냐고 소리 지르면 뭐라고 말하지? 앞으로 내 등에 올라탈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고 말하면 알았다고 해야 하나? 아! 고민이네.' 그렇게 한참을 망설인 끝에 조심스럽게 황소 귀에 대고 속삭였다. "황소야... 저기 미안한데 잠깐 얘기할 시간 좀 있니?" 황소는 소 귀에 경 읽듯 아무런 대답이 없다. 각다귀는 자신이 너무 작게 말했나 싶어 "황.소.야.얘.기.좀.하.자." 크게 소리쳤다.

그래도, 황소는 대꾸도 없이 계속 몸을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사실 그 시각 황소는 물웅덩이에 빠져 정신이 하나도 없던 상황이었다.


 각다귀는 갑자기 무안해졌다. 용기 내서 힘들게 얘기를 꺼낸 건데 대꾸도 없이 거절당한 모습이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시간이 좀 지나니 분노도 일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각다귀 친구 역시 화가 났다. "아니, 아무리 우리가 잘못하긴 했어도 너무 한 거 아냐? 친구야, 이거 나도 자존심 상해서 안 되겠다. 우릴 완전 X무시하네. 우리 각다귀가 '깡다구' 빼면 시체잖냐? 아주 그냥 내가 악착같이 사과를 받아낼 테니... 친구야, 우리 이제 다른 동물로 옮겨 타자. 그리고, 옮겨 탈 때 타더라도 내가 할 말은 하고 가야겠다. 아! 진짜 열 받네! 내 모기 친구들 중 피 좀 제대로 빨아봤다는 얘들한테 연락해서 황소 이놈 내가 혼쭐을 내줘야겠네."        


 "야! 황소! 우리 얘기 좀 하자! 조금 전에 우리가 큰소리로 소리 지르고 싸운 거, 예의 없고 교양 없는 행동이었던 것 인정한다. 100% 우리 잘못이고 이건 정말 사과한다. 그런데 우리도 배울만큼 배운 각다귀야. 유충이었을 때야 멋모르고 농작물 피해 주고 뭐 이랬지 요즘 우리 안 그런 거 너도 알잖아. 그런데... 아까 내 친구한테 네가 그러면 안되지..."  잔뜩 화가 나서 소 귀에 대고 크게 소리 질렀다.   


그러자, 황소가 눈을 끔뻑거리며 드디어 천천히 한마디 했다. "너희들 내 등 위에 있었니?”

 



 커뮤니케이션 시 가장 두려운 상황 중 하나가 바로 거절 당하는 순간이다. 거절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존재한다. 때론 거절을 하고, 때론 거절을 당한다. 잠시 눈을 감고 오늘 내가 겪었던 거절, 혹은 목격했던 거절의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봤다. 먼저 나는 화장실 청소를 내일 하겠다 호기를 부리다 집친구(와이프)에게 거절당했다. 삶은 계란을 사랑하는 8살 딸아이는 엄마에게 계란 하나를 더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이런 사소한 거절부터 시작해서 데이트 신청, 연봉 협상, 출판사에 보낸 원고, 아이디어 제안,  투자 유치 등에서 많은 '거절당하기'를 경험하게 된다.


 아마도 거절을 당하진 않았지만 거절당할게 두려워 포기한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해리 포터'의 작가인 J.K. 롤링은 해리포터의 첫 번째 이야기 아이디어를 떠올린 후, 실제 출판되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렇게 오래 걸린 이유 중 하나가 스스로 이 글이 형편없다고 생각해 몇 번이나 글쓰기를 중단했기 때문이란다. 실제로 '해리 포터의 마법사의 돌'은 열두 곳의 출판사에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 후 블룸즈버리 출판사의 사장이 해리 포터 원고를 손녀에게 보여줬는데, 이 아이가 해리 포터에 흠뻑 빠진 걸 본 후 해리 포터 출판을 결정했다고 한다. 해리 포터 팬들이라면 이 손녀에게 상이라도 주고 싶을 정도로 극적인 반전이다.


 최근 J.K. 롤링은 '글쓰기 방법'을 묻는 독자들에게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올렸는데, 그중 인상적인 한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결국 실패한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항상 원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꿈꾸는 프로젝트를 실제로 끝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   


 '거절당하기'와 관련해 흥미로운 책이 하나 있다. 2015년에 나온 '거절당하기 연습(지아 장 지음/한빛비즈)'이란 책으로, 저자는 '100일간 거절당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얻게 된 노하우를 책에 담아냈다. 저자는 거절을 당하기 위해 경비원에게 100달러 빌리기, 오후에 맥도널드에서 아침 메뉴 주문하기, 코스트코에서 구내방송하기 등을 요구하다 거절당하는(혹은 승낙받는) 경험을 통해 '거절 근육'을 키우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가 거절을 당하면서 얻게 된 인사이트를 몇 가지 정리하면 이렇다.


1. 거절과 실패는 다르다

 거절이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실패는 합리적인 이유든지 핑계든지 실패한 원인을 찾기 쉽다. 하지만 거절은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서 두려움이 항상 존재한다. 실패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다.

 

2. 거절은 의견에 불과하다

 거절은 단순히 거절을 하는 그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이는 그 사람의 살아온 환경, 문화적 차이, 당시 심리적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거절의 이유가 보편적 진리나 거절당한 사람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


3. 거절 총량 법칙이 존재한다

 거절도 최대 횟수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롤링도 12번이나 거절당했지만 13번째에서 '해리 포터'가 등장했다. 물론 거절 횟수는 상대적이다. 하지만, 충분히 거절을 겪었다면, 한번쯤은 거절이 승낙으로 바뀌는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 거절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예스'를 받기 위한 방법으로,


1. 헤어지기 전에 이유를 묻자

 거절을 당하면 상처 받을까 봐 이유를 묻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왜' 거절했는지 그 이유를 묻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유를 듣게 되면 새로운 해결책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2. 도망치지 말고 물러나라

 거절당해도 바로 물러나지 말고, 한 단계 낮은 요청을 해본다. '설득의 심리학(로버트 치알다니 지음/21세기북스)'에서도 등장하는 '상호성의 법칙'이 이와 유사하다. 무리한 부탁을 한 후, 거절당하면 이어서 처음보다는 낮은 단계를 요청하는 방법이다.


3. '나'로 시작하라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요...", "여러분께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라는 광고 문구를 접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진실되다는 느낌이 온다면 당신은 '호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 필요한데 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요청했을 때 이것 역시 승낙이거나 거절이겠지만, 적어도 상대방은 '나'로 시작된 요청이기 때문에 거짓 부탁이 아닌 진실된 부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4. 상대방의 '의심'을 인정하라

 상대방이 의심하고 요청에 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상대방 앞에서 인정하면서, 동시에 왜 이런 요청을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면 승낙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제 정리하겠다. 거절은 두려움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거절을 당할까 두려워 우리는 '각다귀'처럼 혼자 창피해하다가, 자존심 상하다가, 분노하기까지 한다. 실상 거절한 상대방은 '황소'처럼 아무런 감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편으로, 거절을 하는 것 역시 그리 쉽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숙제다.

(거절 잘하는 방법으로 '나는 왜 싫다는 말을 못 할까(김호 지음/위즈덤하우스)'와 '미움받을 용기(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 지음/인플루엔셜)'를 추천한다. 조만간 다른 이솝우화 에피소드에 관련 내용을 다룰 예정임)

 

 당장 나부터 '거절 근육'을 키우기 위해, 거절당하기 프로젝트를 진행해봐야겠다. 생각만 했는데도 벌써 움츠러들지만 거절당할까 봐 시도조차 못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거절은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네가 부족해서 거절당하는 것이 아닐 때가 많단다.
상대방은 다른 사람이나 상황을 염두에 둘 수 있지. 단지 그거야.

-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니로 대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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