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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Jan 10. 2019

#11 소몰이꾼의 기도

행동 없이 기도만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기껏 물에 빠진 놈 건져줬더니 말하는 뽄새하고는...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요즘 어린놈들이 더 문제야! 문제!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아주 가정교육이 엉망이야! 엉망!" 황소를 몰고 가는 복장으론 조금 어울리지 않는, 하얀 정장에 백구두를 신고 있는 저 소몰이꾼은 조금 전 물에 빠진 소년이 내뱉은 몇 마디 때문에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소몰이꾼은 투덜거리며 소를 몰고 조심스레 걷고 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땅바닥이 질척거린다. '이 놈의 기상예보는 맞는 걸 못 봤어' 세상만사 모든 것에 불만이 가득 차 있다. 오늘은 한 달에 한번 있는 마을 5일장이 서는 날. 시장에 황소를 팔기 위해 가는 중이다. '이 놈의 황소를 키워 어느 세월에 돈을 모으나? 한탕 크게 벌 수 있는 걸 찾아야 구질구질한 산 구석을 벗어나 카테리나랑 아테네 가서 살 수 있을 텐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다.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님 ~ 시장에서 황소 판 돈으로 대박 날 수 있는 아이템을 구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열심히 기도하면서도 행여 하얀 정장 바지에 흙탕물이 튈까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다.   


황소 역시 생각이 많다. 아침에 출발하면서 대략 눈치는 챘다. 다행히 도살장은 아닌 듯싶다. 도살장은 마을 끝 자락에 있다. 어떻게 아느냐고? 유난히 ‘햇볕에 반짝이는 초록잎을 좋아하던’ 사촌 형 황소가 말해줬다. 서쪽 끝으로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고. 그 얘기를 해준 사촌 형도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도살장이 아니라면 아마도 시장이겠지? 오늘 드디어 나를 팔러 가나보다. 머리숱이 부족한 주인아저씨는 성질이 게으르고 이기적이긴 했어도 포악하진 않았다. 오히려 게을러서 나를 너무 방치해 제 때 밥을 못 얻어먹은 것 빼곤 이리저리 동네 돌아다니면서 맘 편히 지낼 수 있었다. 이번에 주인 잘못 만나면 어찌하나? 소몰이꾼과 황소는 서로 딴생각을 하며 걷다가 그만 물 웅덩이에 빠져버렸다. 아마도 수렵꾼이 덫을 놓은 게 밤사이 물로 가득 찼나 보다.  


"에이씨, 오늘 진짜 재수가 없으려니...." 아까 그 꼬마 얼굴이 떠오른다. "그놈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이런 거 아냐? 아주 그냥 잡히기만 해 봐라. 내가 그냥..." 소몰이꾼은 오늘 하루 종일 저기압이다.

"어이 황소, 가만히 있어. 구두에 흙탕물 튄다. 내가 해결해 줄 테니 그냥 가만히 있어."

소몰이꾼은 비록 게으르긴 했어도 열심을 내는 2가지가 있었다. 신앙과 돈이었다. 매년 절기 때마다 아테네에 있는'풍요의 신' 디오니소스 신전에 찾아가서 예물을 드리고 올 정도였다.

'그래, 기도를 해야겠다. 그동안 내가 신전에 드린 예물이 얼만데 내 기도를 외면하진 않겠지?' 소몰이꾼은 생각했다. "디오니소스 신이시여! 제가 원대한 꿈을 갖고 새로운 비전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황소를 팔아서 엄청난 돈을 벌면 제단에 엄청난 고가의 제물을 올리겠습니다. 디오니소스님이 좋아하시는 포도주도 최고급으로 준비해놓겠습니다. 제 기도에 응답하소서!!!" 정말 신실한 종교인이었나 보다. 무려 1시간 넘게 선 채로(아마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옷이 더러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비지땀을 뚝뚝 흘리며 열심히 기도했다. 장터로 지나가던 사람들이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집중해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흠흠... 흠흠...." 누군가 인기척을 낸다. 소몰이꾼은 기도를 멈추고 슬그머니 눈을 떠보니, 그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눈이 살짝 풀려있고 코가 빨갛다. 오른손엔 1/3 정도 와인이 채워진 잔을 들고 서있다. 이건 100% 디오니소스 신이다. "이봐~ 내가 오늘 헤라클레스랑 점심 약속이 있어서 낮술을 한참 달리고 있는데, 왜 이렇게 1시간 넘게 내 이름을 부르는 거야?"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소몰이꾼은 납작 엎드린(시늉만 했다. 옷이 더러워질까 봐) 채 디오니소스 신에게 말했다. "풍요의 신이요, 황홀경의 신이신 디오니소스 님, 제가 매년 절기마다 신전에 찾아가 제물을 드리고 있습니다. 제 이름은..."

"아니 됐고, 왜 나를 그렇게 불렀냐고?" 소몰이꾼은 디오니소스 신이 바쁜가 보다 생각하고 용건을 바로 말했다.

"다름이 아니오라 황소가 지금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오늘 장터에서 황소를 팔아 엄청난 아이템으로 돈을 벌어 제물로 올리려 했는데 웅덩이 때문에 그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기겠습니다." 말한 후, 디오니소스 눈치를 살폈다.

"흠... 그래? 그러면 뭐가 문제더냐? 밀어봤는데 꿈쩍도 안 하던가? 밑에 돌을 받쳐본 거야? 지나가는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은 거야? 그런 거야?"

"아... 그게... 기도에 집중하느라고... 땅도 젖어있고... 제 땀도 젖었고... 아까 소년이 물에 빠져 옷이 젖어서... 아니 그게 아니고...." 소몰이꾼은 당황해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중언부언했다.

디오니소스는 한심하다는 듯 소몰이꾼을 쳐다보면 말했다. "너 지금 아무것도 안 해보고 기도만 들입다 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 거야? 그리고, 번지수를 제대로 찾아야지 이렇게 힘써야 하는 일이면 헤라클레스에게 기도해야지, 왜 나를 찾는 거야? 내가 헤라클레스보다 만만해서 부른 거야? 술이 확 깨네. 진짜~ 너 이제 나한테 기도하지 마!" 언성을 높이고는 그대로 사라졌다.


소몰이꾼은 울상이 된 채 조심스럽게 하얀 정장 상의와 백구두를 벗어 바위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며 맨발 차림으로 황소에게 다가갔다.




사회 초년생 시절 직장 선배에게 질문을 하다 종종 혼난 적이 있었다. 자료는 먼저 찾아보고 물어보는 거냐고. 그때는 억한 마음에 화도 났다. '아니 궁금한 건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해놓고, 물어보면 이런 걸 물어보냐고 호통이나 치고.'


무엇을 물어볼지, 어떤 것을 요청해야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사전에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행동 없이 기도만 열심히 했던 소몰이꾼과 같다. 커뮤니케이션 코칭을 하다 보면 항상 간절함은 있는데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이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간절함은 세상 누구보다 열심이다. 그 열심이 왜곡되어 행동은 하지 않는데 스스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또, 자신의 열심을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 억울해한다.


예를 들어, 다음 주 수요일 회사 신년회를 위해 호텔을 예약한다고 치자. 신입사원 K 씨는 호텔에 전화를 걸어 묻는다. "다음 주 수요일에 회사 신년회를 하는데 예약 가능한가요?", "그날 예약이 꽉 찼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팀장에게 보고한다. "예약이 꽉 찼다고 합니다.", "그럼 다른 날짜는?", "네? 아... 확인해보겠습니다.", 전화를 거니 목요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목요일 가능하다고 합니다.", "흠... 대표님이 수요일 밖에 시간이 안된다는데..", "네?, 아... 그럼 다시 확인해서 수요일 예약 가능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신입사원 H 씨는 호텔에 전화하기 전 팀장에게 정확한 참석인원, 소요시간, 예산 등을 사전에 파악한다. 그러고 나서 호텔에 전화하니 수요일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 호텔 인근에 있는 다른 호텔 3곳을 확인하니 2곳은 수요일이 가능해 '사전예약'을 걸어놨다. 혹시나 팀장이 말한 그 호텔에 다른 일정은 언제가 가능한지 확인한 후, 저녁식사 메뉴별 가격대를 파악했다. 그리고 팀장에게 보고한다. "팀장님, 다음 주 수요일엔 말씀하신 그 호텔은 예약이 불가하지만 목요일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 호텔에서 가까운 호텔 3곳 중 2곳은 수요일 모두 가능합니다. 그러면, 날짜를 변경해 말씀하신 호텔에서 진행할까요? 아니면, 다음 주 수요일에 다른 호텔에서 진행할까요? 저녁식사 기준으로 이 정도 가격차이가 발생합니다."


여러분이 팀장이라면 신입사원 K와 신입사원 H 중 누구의 보고가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 행동으로 옮기기 전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 혹은 효과적인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선 전략적인 질문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직장 상사에게 효과적으로 질문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상사를 코칭하라(혼마 마사토 지음/넥서스 BIZ)'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1. 제안 유형별 질문하기

 - "팀장님, **은 안 될까요?" [끌어내는 제안]

 - "팀장님, A와 B, 또는 C 안이 있는 게 어떤 게 좋을까요?" [선택해 고르는 제안]

 - "혹시, 팀장님이 생각나시는 좋은 안이 있을까요?" [선택을 늘리는 제안]

 - "팀장님, 사실 ㅁㅁ와 같은 접근도 있긴 한데 어떠신가요?" [시점을 바꾸는 제안]

 - "어제 정리한 OO안 관련해 의견을 여쭤보고 싶은데요." [의견을 구하는 제안]


2. 바쁜 상사가 결정하도록 질문하기

 - YES/NO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

 - YES를 이끌어내거나 NO를 이끌어내는 질문

 -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실 정보를 묻는 질문

 -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의견 정보를 묻는 질문

 - 선택지 중에서 빠르게 고를 수 있는 질문


3. 리더 성격 유형에 맞게 질문하기

 똑같은 제안이더라도 리더의 성격에 따라 답변이 다르게 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선 리더 성격 유형에 맞는 질문이 필요하다.


 * 자신을 드러내고, 업무를 장악하고 싶어 하는 리더

 - 질문이나 요청은 상대방의 허가를 받은 후, 선택지를 미리 준비해 논의하는 것이 필요

 - 중요한 요청 사항을 먼저 이야기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기

 

 * 우유부단하고 자신감 없는 리더

 - 사전에 일목요연한 자료를 토대로 설득하기

 - 미래에 성공 가능한 이미지를 제시하기

 

* 인간적으론 좋으나 능력이 부족한 리더

 - 아낌없이 칭찬으로 시작하기

 - 솔직한 입장을 말하며 상대방이 속마음을 털어놓게 하기


아침과 저녁이 다른 언행 불일치 리더

 - 지시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공유하기

 - 기록에 근거한 질문과 요청사항 전달하기   


 정리하자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얻기 위해선 손 놓고 열심히 '기도'만 해서는 안된다. 요구해야 할 내용을 정리하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전략적인 질문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기도'하자.


아이들이 답이 있는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그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존 J. 플롬프(미국 작가) -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는 '그 소년'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길래? 궁금하신 분은 아래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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