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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Jan 08. 2019

#9 참나무와 갈대

세대 간의 소통이 힘든 당신에게

 나는 참나무다. 500년 가까이 살면서 산속의 모든 대소사를 내 눈으로 지켜봤다. 북쪽에 있던 도리아 사람들이 몰려와서 미케네가 쑥대밭이 될 때도 나뭇가지 몇 개가 불에 탈 지언정 이렇게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기억도 흐릿한 언제부턴가 바로 옆에서 쫑알쫑알 떠드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갈대 녀석들이다. 이 녀석들 때문에 조용했던 새벽 오솔길의 여유로움과 저수지의 고요함이 깨져 버렸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오솔길을 끼고 난 저수지 옆에 나란히 같이 살아야 할 팔자가 됐다.


 우린 갈대들이다.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저수지 옆에서 한 무리로 자라나게 됐다. 우리 옆에는 커다란 왕참나무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숲 속 동물들에게 들어보니 아주 오랜 옛날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단다. 몇 번 인사를 했는데도 무시당했다. 그 후론 잘 인사도 안 하고 데면데면하게 지낸 지 오래다. 그런데 자꾸 참나무 뿌리가 우리 구역을 침범하면서 저수지 물을 끌어 당긴다.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는데도 무시하거나, 알았다고 해놓고선 그대로다. 그러다 결국 이 건으로 말싸움이 붙었다.


"아저씨, 저희가 몇 번 말씀드렸잖아요. 저수지를 아저씨 혼자 쓰는 것도 아니고... 정말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

"요즘 친구들은 먼저 인사할 줄을 몰라. 인사를 해도 그냥 건성건성, 바람이나 불어야 까닥하지."

"아저씨도 저희한테 인사하는 것 못 봤는데요. 그리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미국 독립운동 때 워싱톤이 쉬고 갔다는 그 참나무 이야기 알지? 그리고, 팝송 제목으로도 있는 그 참나무에 노란 손수건을 거는... 예전엔 그런 낭만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어. 그 얼마 전에 있었던 토끼와 거북이 대결 알지? 그 토끼가 여기서 자고 갔잖아. 내가 거북이편이라 일부러 좀 재웠지." 참나무는 거들먹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놨다.

"아니 아저씨 자꾸 다른 얘기 하지 마시고요. 그리고, 미국 전쟁은 아주 나중 얘기인데 그게 왜... 아무튼, 저수지 물을 자꾸 아저씨만 쓰시면 곤란하다고요."

"지난번엔 내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어줘서 든든하고 좋다며. 왜 물 좀 더 쓰는 것 가지고 그러는 거야?"

"아저씨 덩치가 있으니 저희도 그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데요..." 갑자기 참나무가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 "아니 갈대의 마음은 여자라더니… 뭐 이렇게 말이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아저씨, 그거 사회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위험한 발언인 건 아시죠? 그리고, 파스칼의 팡세를 보면 '갈대는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어요. 위대한 철학자의 이런 '띵언'도 있는데 고작 그런 비유라니... 이거 오나전 갑분싸네요. 현타가 와서 지금 롬곡이 넘칠라고 그래요. 저희 오늘 아저씨 때문에 마상이 왔어요."

"잉? 도대체 뭐라는 거야? 그거 사투리냐?"

"자꾸 이러시면 대나무 숲에 가서 아저씨가 이러는 거 다 얘기할 거예요. 됐어요. 오늘 마상 땜에 저희 당분간 잠수 탈 거니 그런 줄 아세요."

"뭐 내가 말상이라고? 이게 어른한테 자꾸 말상이 뭐냐? 말상이..."


 한참 시끌벅적 말싸움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갈대들은 본능적으로 여느 바람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감지했다. 서둘러서 참나무에게 일러줬다.


"아저씨, 이거 평상시와 느낌이 달라요. 잘못하면 큰일 나겠어요. 빨리 몸통을 나뭇잎으로 가리든지 수그리든지 하세요. 빨리요, 빨리!"

"어이, 자네들 걱정이나 하라고." 껄껄 웃으며 바람에게 호통쳤다. "어이 바람, 느그 아테네 살제?! 에?! 내가 인마!! 느그 아버지랑 인마!! 몇백 년 전에!! 에?! 같이 밥 묵고!! 에?! 저수지도 같이 가고!! 에?! 이것저것 다 했어 인마!!..."


 그런데 커다란 바람 소리와 동시에 참나무 목소리가 사라졌다. 바람이 휘몰아쳐 지나간 후 갈대들은 평상시보다 하늘이 훨씬 시원하게 보이는 게 이상했다."앗! 하늘을 가리던 참나무 아저씨가 없어졌다!" 500년이나 된 두터웠던 참나무 몸통이 두 동강 나서 오솔길을 가로막아 버렸다. 저 멀리 들판에 웬 나그네가 하늘을 향해 뭐라 뭐라 소리 지르는 게 보이더니 이내 바람이 잔잔해진다.


 갈대들은 쓰러진 참나무를 보면서 안타깝게 말했다.

"TMT이긴 했어도 참나무 아저씨가 있어서 바람도 막아주고, 참나무에 달린 도토리 챙기러 오는 동물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좋았는데... 깐깐하긴 했어도 심적으론 든든했는데, 막상 안 계시니 롬곡이 흘러나오네요. '조오지 허버'라는 분이 이런 유명한 띵언을 남겼다는데, '띵언'이 다 옳은 건 아니네요. '참나무가 더 단단한 뿌리를 갖도록 하는 것은 바로 사나운 바람이다.'라고..."


* 오나전 - 완전

* 갑분싸 - 갑자기 분위기 싸해지는

* 현타 -  현실 자각 타임

* 롬곡 - '눈물'을 뒤집어 놓은 단어

* 마상 - 마음의 상처 줄임말

* TMT - Too Much Talker 줄임말. 추가로 TMI는 Too Much Information

* 띵언 - '명언'이라는 인터넷 게시판 용어. 명곡은 '띵곡'이라고도 표현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원전 1,700년에 쓰였다는 함무라비 법전에도, 이집트 상형 문자에도, 현인으로 추앙받는 아리스토탈레스와 소크라테스 역시 한 목소리를 내며 말하던 게 있었다. "요즘 얘들은 버릇이 없어."


 '요즘 얘들'은 과거에나 지금이나 일관성 있게 제멋대로이고, 자기만 생각하고, 놀기 좋아하는, 참으로 걱정되는 세대들인가 보다.  


 흔히 '요즘 얘들'이라 불리는 Z세대는 인구통계학적으로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출생한 세대를 일컫지만 언제까지를 Z세대 끝으로 간주할지는 애매하다. 왜냐하면 현재 진행형 세대이기 때문이다. Z세대를 규정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게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으로, 태어날 때부터 이미 디지털에 노출된 세대답게 모바일에 최적화된 행동 패턴을 갖고 생활한다.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하고, 온라인 소비 활동에 적극적이며, 개인적이고 독립적이며, 경제적 가치를 우선시한다고 Z세대를 분석한 다양한 마케팅 보고서에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검색해보면 10년 단위로 항상 세대가 등장했다. 386세대, X세대, Y세대(밀레니엄 세대), Z세대 등 세대를 분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자료들이 매번 쏟아졌지만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 얘들은 버릇이 없다고.'


 Z세대의 부상과 함께 맞물려 떠오른 단어도 있다. 바로 그 단어 '꼰대'. Z세대는 대략적으로 규정하는 연령대가 있는 반면에, '꼰대'는 권위적인 사고를 하는 어른을 비하하는 말이다. 최근엔 단순히 '나이가 많은' 어른이 아니라 남녀 연령을 뛰어넘어 사용된다. '젊은 꼰대'라는 말도 나오는 걸 보면 '꼰대질'은 비단 세대 간의 갈등만은 아닌 듯싶다.  


 여하튼, 어차피 세대 간의 간극은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그들의 사고로 살아가는 건 다르다. 그 세대를 관통하며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 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그들의 놀이문화를, 그들의 의식주를, 그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 시간을 쏟는 것보다 우리가 Z세대와 진정성 있게 커뮤니케이션하려면 오히려 '꼰대질'이라 불리는 행동이 무엇인지 검토하고, 수정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렇다면,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1. 이제 과거의 영광은 일기장에만 쓰기

 슬랭덩크에서 강백호는 부상이 염려되어 코트 복귀를 허락하지 않는 안 감독님께 이렇게 말한다. "영감님, 영감님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죠? 전 지금입니다." 영광의 순간이 지금이 아니라면(설령 지금이라도), 굳이 말하지 말자. 건강한 자아를 위해선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며 각오를 다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영광은 본인의 일기장에만 남겨놓자.


2. 조언을 핑계로 자기만족에 빠지지 말기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조언이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조언을 핑계로 자신의 인맥, 경험, 전문 지식 등을 드러낼 때가 있다. '관심'과 '참견' 중 여러분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는가? 관심을 핑계로 참견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실 관심도 없는데 참견만 하고 싶은 것인지? 상대방이 먼저 조언을 구할 경우에만 경험을 나누자.


3. '말하기'보다 '듣는 것'이 근사하다는 걸 깨닫기

 '말하기'와 '듣기' 중 무엇이 더 어렵고, 에너지 소비가 크다고 생각하는가? 아니 질문을 조금 바꿔서 '말하기'와 '제대로 듣기(경청)' 중 더 힘든 건 무엇일까? 그냥 '듣는' 행위는 충분히 속임수가 가능하다. 상대방 눈을 응시하면서도 점심으로 짬뽕을 먹을지, 설렁탕을 먹을지 고민할 수 있고, 어제 주문한 택배가 어디쯤 와있는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이 '말하기' 위한 목적으로, '듣기'를 하나의 순서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 솔직히 직장/사회/커뮤니티 후배들의 부족한 모습들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선한 목적으로 말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의미 없는 메아리'일뿐이다.


 코칭을 공부하면서 '경청'이 얼마나 고도로 훈련되고 집중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인지 깨닫고 있다. 제대로 '묻기' 위해선 제대로 '듣는' 연습이 필요하다. 당장 회사에 있는 Z세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 전 '말하기:듣기' 커뮤니케이션 비중을 고민해보자. 예를 들어 30분 대화라면 '오늘은 말하기를 10분, 듣기를 20분 하겠어.', '아니다. 고민이 있다고 했으니 말하기를 5분, 듣기를 25분으로 하겠어." 하며, 시간을 체크해보자.

(보다 자세한 경청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조만간 다시 다룰 예정임.)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위에 언급된 3가지가 모두 내 얘기다. 언젠가 집친구(와이프)가 나에게 살짝 말해줬다. 후배들과 이야기할 때 위에 3가지 모습들이 다 보인다고. 그런 거 아니라고 둘러댔지만 속으론 뜨끔했다. 지금도 '꼰대' 필요충분조건에 모두 해당하지만, 불편하더라도 노력해야겠다.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성숙해지진 않나 보다. 세대 차이가 커질수록 더욱 불편함을 감수하며 본능을 억제해야겠다. 오늘도 자기반성 시간이었다.


쓰러진 참나무 뒤에서 발견된 사자 가죽은 어떻게 된 일일까요? 궁금하신 분은 아래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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