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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Jan 09. 2019

#10 저수지에 빠진 소년

해결 방법보다 원인이 더 중요한 사람에게

 오전까지 비가 내려 길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지만 하늘만큼은 화창한 어느 오후, 근사한 빵모자를 눌러쓴 한 소년이 산속 오솔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오늘은 동네 마을장이 서는 날이면서, 동시에 아테네에 5종 경기를 하러 간 둘째 형이 돌아오는 날이다. 오솔길 옆 저수지에 한 무리의 갈대가 보인다. 무료한 마음에 갈대 피리를 만들기 위해 저수지로 향했다. 신발과 양말은 바로 옆에 쓰러져 있는 참나무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저수지에 발을 담갔다. 갈대는 보통 수심이 낮은 곳에 위치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스레 들어가 갈대를 꺾었다. 갈대 피리를 만들기 위해선 갈대 줄기 아래 5cm 정도 부분에 속이 비어 있어야 좋은 소리가 난다. 좋은 피리를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고르며 허리를 숙이는데 그만 빵모자가 물 위로 떨어졌다. '아이쿠! 이거 산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울상을 지으며 황급히 모자를 주으려는데 어느새 빵모자가 동동 떠내려갔다. '에이씨, 괜히 피리를 만들려고 그랬어.’투덜거리며 성큼성큼 모자를 향해 걷다가 그만 오른쪽 발바닥이 미끄러지면서 물에 빠져 버렸다. 전날 하루종일 내린 비로 수심이 제법 깊어진 이유도 있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당황해서 그런지 평상시처럼 수영을 할 수 없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소년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때마침 소를 몰고 지나가던 한 아저씨가 그 소리를 들었다. '어랏! 어디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데... 저기 참나무 위에 신발이랑 양말이 놓여있네. 저긴가?' 저수지 근처에 가봤더니 한 소년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


 소년은 순간 아저씨를 보고 희망이 생겼다. "아저씨,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런데, 아저씨는 그 소년을 보더니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 거기 저수지 내가 잘 아는데 거기 수심이 그리 깊지도 않은데 왜 물에 빠진 거야? 나이가 몇 살인데 지금까지 수영도 안 배우고 뭐했니?"

소년이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다급히 소리쳤어요. "아저씨, 빨리 도와주세요."

"허허 녀석, 어른이 먼저 물어봤으면 답을 먼저 해야지. 그니깐 어쩌다가 거기 들어간 거야? 어린 녀석이 혼자 이렇게 돌아다니니까 이렇게 위험한 일이 생기지."

소년은 몸이 점점 얼음장이 되고 입술이 파래졌다. "아... 아저씨, 빨... 빨리요..."

"그래, 당연히 도와줄 건데, 나도 이유를 알아야 어떻게 도와줄지 생각해볼 거 아니냐? 근데 물은 많이 차가운 상태니? 수영을 잘 못하면서 저수지에 들어간 이유가 뭐라니?"


 소년은 꺼져가는 희망이 갑자기 분노로 바뀌면서 정신이 번쩍 났다. 마지막 숨을 크게 들이켜고 잠수를 해서 상황을 살피니 발을 딛고 올라갈 만한 널찍한 큰 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돌을 밟고 간신히 올라왔다. 물을 뚝뚝 흘리며 아저씨에게 다가가는데 아저씨도 조금은 미안했는지 분노에 찬 소년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봐라! 아저씨 말이 맞잖아! 아저씨가 어디 빠지거나 하는 경험이 많아서 잘 안다니깐. 너도 늪에 빠진 비스마르크 친구 이야기 알지? 내가 너 구해주려고 들어갔다가 자칫 내 구두... 아니... 나도 빠지면 둘 다 위험하잖아. 그건 그렇고 정말 다행이다. 얘야! 미안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오진 마라. 물 떨어진다." 아저씨는 새로 산 하얀 정장과 백구두에 물이라도 튈까 봐 소년이 다가오자 뒤로 물러섰다.


 소년은 아무 말 없이 아저씨를 노려보면서 그대로 지나쳐 참나무 위에 놓아진 신발과 양말을 오들오들 떨면서 신었다. 그리고,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떨리는 파란 입술로 소리쳤다. "아저씨도 언제가 이런 날이 오도록 신에게 간절히 기도할게요." 아이는 그 아저씨를 저주하면서 시장 방향으로 뛰어갔다.


 "아니 이 조그만 자식이 어디서 감히... 재수가 없으려니... 퉷!" 아저씨는 저 멀리 뛰어가는 소년의 뒤통수에 눈을 부라리며, 숱이 얼마 남지 않은 벗겨진 머리를 연신 쓸어 넘겼다.




 개인이나 기업이나 위기 상황이 갑작스럽게 닥치면 '블랙아웃(black-out)'이 된다. 머릿속이 '정전' 사태가 된 것 마냥 현명한 선택을 하지 못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는데 우왕좌왕하면서 발생한 위기 상황의 원인과 책임, 원인 발생자와 책임자, 어떻게 상황을 회피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물에 빠진 소년을 발견했을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행동은 당연히 물에서 건져내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론 '꼰대' 아저씨처럼 질문한다. '왜 하필 우리 회사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만약 제품 이상이 사실이면, 납품사 중 어느 곳 잘못이지?', '지금 나온 우리 부정 기사에 내 직책이 잘못 나왔네. 이거 언론사에 연락해서 수정해줘', '혹시 회장님은 지금 화가 많이 나셨는지?' 등 등...


 위기의 원인을 찾는 건 당연히 중요하다. 위기의 시작점, 즉 '원점'을 관리하기 위해 원인을 추적하고, 배경을 파악하는 건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당연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과거의 반복된 경험을 토대로 "그거 별거 아냐!", "내가 경험해봐서 아는데...", "그건 우리 부처 책임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와 같은 위기에 무감각한 모습과 과거 경험을 토대로 위기를 대응하려는 모습이나 위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쓸데없는 형식을 갖춘 의전(또는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는 잘못된 위기 커뮤니케이션 대응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 시 우리는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야 할까?


1. 위기 상황에서 각자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정리하자

 종종 실제 위기가 발생한 기업에 투입되어 위기 커뮤니케이션 컨설팅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현장을 확인하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내부 담당자가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이해 관계자(환자/의사/약사/경쟁사/식약처/언론사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 기업 내 부서마다 그 역할이 모두 다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서로 공유하는 To-do list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2. 두꺼운 위기관리 매뉴얼을 버려라! 즉각 행동할 수 있는 수칙을 만들자

 가전제품 매뉴얼을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하게 읽어보는 사람이 있는지?(아마 가전제품은 있을 법도 하다) 매뉴얼은 만들어지는 순간 읽히지 않는 마법 같은 문서다. 실제 위기 발생 시 매뉴얼을 들쳐보면서 대응하지 않는다. 즉각적인 행동을 위해선 이것만 기억하자. 'WTWA(Who/Task/When/Action) -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 실행하라.' 리더는 위기 시 의견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WTWA'에 근거해서 즉각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지시해야 한다.


3. 우리 기업에 맞는 이슈 유형을 규정하고, 가상훈련을 진행하자

 "우리는 B2B 기업이라 괜찮아.", "우리처럼 작은 스타트업에서 무슨 위기관리 훈련이야?", "나 같은 일개 직원이 무슨 위기관리야? 그건 임원들이 알아서 대응하겠지..." 위기 확산 속도는 SNS시대를 사는 요즘 초단위로 변화된다. 또한, 단순한 제품/서비스 관련한 위기로 한정되지 않고, CEO 개인 일탈, 갑질, 젠더 폭력 등 사회적 감수성과 밀접한 이슈가 기업 위기로 불거지는 걸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 기업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이슈 유형을 규정하고, 실제 발생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가상훈련이 필요하다.  


 끝으로, 성공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찾기 힘들다. 왜냐하면 큰 불로 번지기 전 소화기로 불을 꺼서 피해가 상대적으로 눈에 뜨이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가 없는 기업 위기관리는 불가능하다.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에 젖지 않고 소년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기업이 있다.
위기를 경험한 기업과 위기를 경험할 기업이다.

- 미국 위기관리 관련 명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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