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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Jan 21. 2019

#15 자유를 택한 떠돌이 개

퇴사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나는 떠돌이 개다. 나도 한 때는 하우스 개였다. 비록 손꼽힐 수준의 '집사'는 아니었지만, 집주인 부부들이 일하러 가면, 아이들을 지키며 함께 놀아주는 보모, 낯선 침입자들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방범대장, 고양이와 닭이 매번 싸울 때마다 어르고 달래는 중재자, 집 안 어르신이 비둘기 사냥이라도 가게 되면 비서 역할 등 가족의 구성원으로 다양한 일을 도맡았다. 때론 아이들의 거짓말로 잃어버린 양말의 범인으로 몰리기도 하고, 밤늦게 술에 취해 잘못 들어온 옆집 아저씨에게 꼬리를 흔들며 반기다 집주인에게 혼쭐도 나고, 비둘기 사냥에 나섰다가 산속에서 길을 잃는 등 크고 작은 일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어르신이 손수 나무목재로 만들어 준 내 집은 크진 않지만 안락했다. 마른 볏짚을 충분히 넣어 하루를 끝내고 배를 깔고 누울 땐 그 까칠까칠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평안한 시간이었다. 특히, 비 오는 오후에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사이로 보이던, 물기 어린 지평선 끝을 내다보는 걸 정말 좋아했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한 꿈이 있었다. 저기 멀리 보이는 지평선 끝에 산과 들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양을 관리하는 양치기 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안락한 현실을 포기하기엔 쉽지 않았다. 삼시세끼 걱정 없이 챙겨주는 식사와 1년에 한 번 떠나는 지중해 가족 여행은 삶의 큰 행복이었다. 행복한 시간은 영원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빗물에 고인 웅덩이에 비친 나를 보다가 무엇에 홀린 듯 그대로 집을 나왔다. 집구석 깊숙이 숨겨놓은 보물 1호인 작은 가죽 공까지 그대로 놓고 나왔을 정도로 무작정 뛰쳐나왔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간격이 컸다. 처마 밖에서 마주치는 빗줄기는 머리털이 바싹 올라올 만큼 섬뜩하게 차가웠다. 또한, 스스로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깨달았다. 우연찮게 발견한 잔치집에 가면 '개코'를 달고 나타난 떠돌이 개들이 잔뜩 모여 음식 쟁탈전이 뜨거웠다. 처음엔 '난 '하우스 개' 출신이야. 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바닥에 떨어진 저 품위 없는 음식은 먹지 않을 거야.' 라던 다짐이, 어느샌가 무리 사이에 뒤섞여 경쟁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자괴감이 든 적도 있었다. 휴가철마다 찾던 지중해는 이제 어부들이 남기고 간 음식들을 헤집고 찾아다니느라 그 반짝이던 물결을 근심 없이 지켜봤던 순간들도 가물가물할 정도다.


  떠돌이 개 생활을 한지 제법 되니 눈에 익은 개들도 생겨났다. 이 친구들이 나이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 함께 어울렸다.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니 서로를 보살펴 주고 지킬 수 있어 좋았다. 혼자 다닐 때는 부스럭 소리만 나도 잠이 깨서 도망치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서로가 등을 지켜주는 관계가 되어 편안하게 눈을 부칠 수 있어서 좋다. 친구들 사연을 들어보니 가지각색이다. 나처럼 자발적인 떠돌이 개도 있는 반면에, 애완동물 사이 구조조정(?)을 통해 방출된 개, 주인의 매질에 못 견디고 뛰쳐나온 개, 여행 중에 가족을 잃어 홀로 남은 개, 태어나서 눈 떠보니 처음부터 혼자였던 개 등 다양한 스토리를 갖고 있었다. 함께 돌아다니다 보니 각자의 장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떤 개는 안전한 잠자리를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능력이 있고, 어떤 개는 소리에 예민해 즉각적으로 위험 신호를 전파하는 개도 있다. 또 다른 개는 목청이 기가 막히게 커서 옆 산까지 울릴 정도이다. 나에 대해선, 잔칫집 같은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곳에서 '중재자' 역할과 자칫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해줬다. 이렇게 각자의 특징에 맞게 '따로 또 같이' 생활하면서 '하우스 개' 시절과는 또 다른 평안함을 느끼고 있다.


  산동네 5일장은 그나마 우리의 정기적인 식사 장소다. 언제나처럼 친구들과 함께 이른 오전부터 장터를 찾았다. 오전엔 비가 와서 사람 구경하기 힘들었는데, 오후가 되니 본격적으로 북적거린다. 5일장은 보통 늦은 밤까지 계속된다. 오늘은 하루 종일 여기서 눈치를 살펴야겠다. 저기 생선가게 옆에 포마드 기름으로 머리를 잔뜩 올려붙인, 도끼를 사용해 가른 듯한 2:8 가르마가 눈에 뜨이는 한 남자가 고삐가 풀어져있는 황소에 계속 시선을 두고 있다. 그러다 웬 여자와 웃으면서 짐짓 전문가인 척 제스처를 취하는데 딱 봐도 사기꾼이다. 과일가게 앞에선 장터에 한껏 꾸미고 온 동네 유지 부인들이 애완견을 끌고 고상하게 과일을 고르고 있다. 그런데, 구조 조정된 친구가 자신과 같이 살던 애완견과 우연찮게 마주쳤나 보다. "어이, 친구~  잘 지냈어?", 애완견 친구는 몰랐다는 듯 깜짝 놀란 척 대답한다. "엇! 너구나! 이게 얼마만이냐? 얼굴 좋네!" 반가운 척 인사를 건넸다. "뭐, 그냥 그렇지. 내 친구 소개할게. 얘는 말이지..." 나를 보면서 인사하라고 눈치를 준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엘류데리아(ἐλευθερία  :고대 그리스어로 '자유'라는 뜻)라고 하는데요. 그냥 친구들은 줄여서 '엘'이라 부릅니다. '엘'이라고 불러주세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저는 데스포테스(dĕspŏtēs : 고대 그리스어로 '주인'이라는 뜻)의 개라고 합니다.", "아니 그거 말고 본인 이름이요.", "아... 그러니까 이게 제 이름입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실례를 했다. 나 역시 '하우스 개' 시절 딱히 이름이 없었다. 그냥 철수네 개, 영희네 개와 같이 불렸다. 내 이름도 집에서 나온 후, 내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이 이름도 친구들이나 기억하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냥 나를 떠돌이 개 3 또는 떠돌이 개 4 이렇게 부를 것이다. 그래도, 난 내 이름에 자부심이 있다. "네, 실례했습니다. 저도 한 때 집 생활을 했었는데요.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도 있어요. 요즘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끼세요?", 데스포테스의 개는 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엘이 순수한 의도로 질문한 게 느껴져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흠... 불가피하게 집을 떠난 저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제가 맡은 역할에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아요. 물론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도 겪지만 그건 어디를 가도 벌어지는 일이니 감당할 수 있어요. 제가 밖에 세상은 잘 몰라도 적어도 우리 집 안 하나하나 자세히 알고 있거든요. 몇 번째 계단을 밟으면 소리가 난다든지, 둘째 아들은 왜 매일 밤 12시만 되면 창틈 사이로 머리를 넣고 소리 안 나게 빠져나가는지, 고양이가 숨겨놓은 털실을 마나님에게 한 번에 찾아다 줄 수 있는 것도 바로 저구요. 주인 나리가 기분이 우울하면 벽난로 옆에서 제 등을 쓰다듬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고요. 저는 제 역할이 다할 때까지 이 집에서 함께 보내고 싶네요. 그러면 '엘'씨는 밖에 나오니 무엇이 좋으세요?", "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만족합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 이름이 갖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성격상 애교가 없어서 당신처럼 주인 기분을 잘 맞추지 못하겠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비둘기 사냥을 갈 때 조력자 역할이나 고양이와 닭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 다리를 잇는 역할을 하는 게 좋더라고요. 내 장점을 더 살리기 위한 게 무얼까 고민하다가 발견한 게 '양치기 개'였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오게 되었죠.", "그래서, '엘'씨는 그 꿈을 이루셨나요?"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얼마 전까지 삼시세끼 걱정, 무서운 맹수와 잠자리 걱정으로, 내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잊고 살았다. '내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편한 집을 놔두고 뛰쳐나왔을까?' 가끔 후회도 하고 자책도 했다. 그런 고민에 한참 빠져있던 차에 우연찮게 멍하니 돌에 누워 있는 한 양치기 소년을 발견했다. 100마리 정도 되는 양을 풀어놓은 채 관심도 없다는 듯 떠다니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 수컷 양 2마리가 절벽 가장자리에 자라난 콩잎을 앞에 두고 옥신각신 싸우는 걸 목격했다. '이거 자칫 큰 일 나겠는데. 저 양치기 소년은 멍 때리기만 하고 뭐 하고 있는 거야?', 다급한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중재를 하고 절벽에서 안전하게 두 양과 내려왔다. 뒤늦게 이 장면을 목격한 양치기 소년이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봐, 제법이네. 앞으로 내 일 좀 도와줘." 이어서 바로 말했다. "놀라는 표정도 이제 지겹다. ㅎㅎ 난 동물이랑 대화할 수 있어. 날 도와주는 대가로 매일 말린 육포를 줄게." 괜찮은 조건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니! 그 날 이후 파트타임으로 양치기 일을 도왔다. 이 일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됐다. 양치기 소년과 양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양치기 소년은 대화가 가능할 뿐이지 동물의 본능적 습성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맹수가 나타났을 때 대응 훈련(떠돌이 개 무리 친구에게서 배웠다), 콩잎을 두고 싸우는 수컷 양들과의 대화(잔치집에 다니면서 쌓은 분쟁 조정 노하우)를 경험하면서 점차 양치는 일이 익숙해졌다.


"이봐요! '엘'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ㅎㅎ 그래서, 그 꿈이 이뤄졌냐고요?"

"네, 완성은 아니지만 여전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나는 슬며시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맴돌며 이야기를 엿듣는 영감이 하나 있다. 어느샌가 우리 옆에서 애매모호한 웃음을 띈 채 서있다. 우리 대화를 알아듣기라도 하는듯 옆에서 듣다 간혹 웃음을 터트리기도 한다. 복장은 거지 같은데 어느 날엔 부주키를 연주하다가, 또 다른 날엔 아이들을 모아놓고 옛날이야기를 전해준다. 아테네 출신이란 소문도 있고, 노예였다는 소문도 있고 여하튼 그렇다.


  얼마 전에 내 신상에 변화가 생겼다. 양치기 이 친구가 어떤 사건(?)을 겪고 나서, 마을로 내려가 수의사 공부를 시작하게 되어 새로운 양치기 소년이 왔다. 새로운 이 친구는 급하게 양치기 역할을 맡아 그런지 아직 어리바리하다. 양들도 그 친구를 우습게 본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그동안 양치기로 쌓은 능력을 십분 발휘해 일을 돕고 있다. 전임 양치기 소년이 마을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잘 말해 놓아서 이제 정식으로 비용도 받으며 일하게 되었다. 여전히 떠돌이 무리에 끼여 잠들고, 배고픔에 허덕이지만, 내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직장생활'이란 키워드로 조금만 검색해 보면, '퇴사' 관련한 글들이 부쩍 많아졌다. 아버지 세대에나 존재했던 '평생직장'이란 개념은 사라진 지 오래다.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은 크게 3가지 갈림길에서 고민하게 된다. '이직(또는 전직)'이냐?, '창업'이냐?, 아니면 '은퇴'할 것이냐? 무엇을 선택하든 쉽지 않다. 하다못해 은퇴마저도 계획이 필요하다.      


  우린 '떠돌이 개'와 같이 다양한 이유로 '퇴사'를 결정한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인간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답답한 기업 문화로, 일과 삶의 균형이 깨져서, 지위와 연봉 상승을 위해, 성장 없이 정체된 '자신' 때문에... 이직이나 창업을 고민한다. 하지만, 그 무엇이든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미생'은 주옥같은 대사로도 유명한데, 그중 퇴사와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대사가 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야!" 그런데, 누가 전쟁터에서 살고 싶고, 지옥에서 버티는 걸 원하겠는가? 힘든 건 어느 쪽에 서있든 똑같다.  


  우리가 '퇴사'라는 단어에 파묻히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칠 수 있다. 퇴사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현재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직업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여부다. 단순히 회사 소속으로 어떠한 직책을 갖고 있는 '직장인'이 아니라, 직무적인 전문성을 갖춘 '직업인'이 되어야 한다. 내 직업은 커뮤니케이션 코치다. 기업 조직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문제들을 돕고 있다. 또한,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영상을 찍어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통해 돈을 벌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직업인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나는 꽤나 어린 시절부터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사람들이 편하게 웃을 수 있을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는 거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어떤 메시지가 효과적일까?', '행동을 일으키기 위해선 어떤 순서로 말을 건네지?', 이런 주제가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특징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했다.  운 좋게도 이런 관심사가 'PR'이란 직업을 만날 수 있었고, 전문적인 직장 안에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사진과 영상을 통해 '사람'을 담아내는 걸 좋아했다. 오랜 취미 활동들이 지금은 소소하지만 비용을 받으면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으며, 또 다른 직업 발전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퇴사'의 정답은 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퇴사'는 '직업'을 찾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단지 그 과정 중에 퇴사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우화에 나오는 애완견과 같이 본인의 일에 만족하면서 그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아니면, '양치기 개'가 되기 위해 불편하고 어려운 길을 감수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길'을 결정하고 찾아가는 수고를 감내하는 당신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이 옳다.

- 앤서니 로빈스('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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