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외갓집에 불이 났다. 전기 누전이 원인이었는데 집을 다시 지어야 할 정도로 큰 불이었다. 공사 중에 외할머니가 엄마 집에 내려와 있었는데 아마도 그때가 엄마가 결혼 후 가장 오래 외할머니와 함께했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가 후회스럽다. 외할머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고 나는 애교가 부족한 소녀였다. 엄마의 어린 시절, 할머니의 젊었을 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는데 신혼이었던 나는 할머니와 다니는 나들이에서도 남편 하고만 놀았었다.
엄마가 사는 아파트 아래쪽 길에 오후에 장이 선다. 하루는 할머니가 안 계셔서 어디 가셨나 찾았는데 할머니를 발견한 장소는 그 장에서였다. 손님이 아니라 상인으로. 생활력 강한 할머니는 어느 순간에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잠시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내가 남편과 연애 중일 때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걸 아신 할머니는 나에게만 따로 용돈을 주면서 “여자도 밥을 사기도 해야 한다. 남자가 매번 돈을 내게 하지 말고 너도 내라.”라고 말했다. 그때는 용돈이니까 감사히 받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할머니는 꽤 멋진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군산에 머무를 때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할머니의 외출복은 새하얀 삼베옷이었는데 이 삼베 저고리에 마음 아픈 이야기가 있다. 예전에 아마도 내가 초등 입학 전이라고 생각된다. 할머니는 서울에 사실 때였는데 어떤 일로 군산에서 엄마를 만났고 단칸방이던 엄마 집에서 하루도 묵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렸다고 했다. 집에 우산이 없어 할머니는 비를 맞고 가야만 했다.
할머니는 그때 삼베 저고리를 입고 있었는데 비에 젖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엄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말끝에 엄마의 울음이 묻어났다. 그럴 때 엄마를 안아주며 위로해줘야 하는데 무뚝뚝한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까 엄마도 내가 어디 갈 때마다 태워다 준다고 하면 그냥 차 타고 가. 엄마 뒷모습 보면서 내가 나중에 속상하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