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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Oct 28. 2022

그때까지만 살고 싶다

시집살이가 심했던 엄마는 분가해서도 편하지 않았다. 경제적인 독립이 이루어지지 않아서였다. 내가 생각하는 독립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삶을 꾸려가는 것인데 엄마의 경제적인 독립은 달랐다. 시부모와 시동생의 뒷감당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빠의 월급은 매달 정해져 있고 생각지 못한 지출이 있을 때는 엄마가 나서야 했다. 엄마는 옷 수선도 하고 야채를 다듬어 되팔고 국수 장사도 했다. 그와 동시에 삼 남매 육아를 동시에 해야만 했다. 작은 체구에 이 모든 일을 할 힘이 있었을까. 너무 힘들 때는 참고 참던 엄마의 몸도 신호를 보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엄마는 이상하게 감기가 오래간다고 느낀 적이 있다. 보통은 약을 먹으면 낫는데 그때는 병원도 다녔다. 엄마는 어지간히 아파서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 지금도 그때에도. 너무 아파서 서울에서 외할머니가 왔다. 할머니는 지리도 모르는 동네에서 제 몸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딸을 위해 산에서 황토를 구해 배를 구웠다. 나는 어리기도 했지만, 엄마가 많이 아팠던 기억이 왜 없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막냇동생이 막 기어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 엄마는 크게 아팠다. 병원에 다녀도 차도가 없고 지금도 그 병의 정확한 명칭을 모른다. 엄마는 하루하루 생명이 꺼져가는 걸 느꼈다고 했다. 그때 엄마의 바람은 막냇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걸 보는 것이었다. 이제 기기 시작하는 아기를 보면서 할 수 있는 생각이 엄마는 그것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까.

     

삶을 포기하고 하루하루 살던 엄마에게 동네 누군가가 개정병원(그 당시 군산에서 큰 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했다. 엄마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그 병원에 가 진료받으면서 그동안 병의 진행과 먹었던 약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게 동네 병원 의사의 오진이었다. 개정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엄마의 병은 급속도로 나아졌다.

     

삶의 문턱을 넘는 생각을 하며 키웠던 아이가 벌써 중년의 남성이 되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엄마는 한결같았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었고 자식의 미래가 먼저였다. 엄마가 살아온 세월에 산후 우울증, 육아 우울증은 사치였다.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소진될 때까지 몸을 혹사하면서 살아온 엄마에게도 분명 번아웃이 온 시기가 있었을 텐데 엄마는 힘들었다고 푸념조차 하지 않는다. 가끔 외할머니 이야기를 하며 이야기 끝에 울음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나는 엄마가 지금이라도 더 이상 아무것도 참고 견디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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