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바로 옷 정리하기. 나와 남편은 성인이니 계절에 맞게 옷들의 위치를 바꿔놓기만 하면 된다. 다만 아이들은 계속 자라는 중이니 새 계절이 되기 전 미리 사이즈를 확인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옷을 사주고 입혀보는 일은 즐겁다. 매일매일 같이 있어서 성장을 체감할 수 없는데 바로 이때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바지 길이와 윗옷 소매 길이가 짧아지면 나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성장은 옷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발 크기로도 느낄 수 있다. 강물이와 마이산은 남자아이라서 운동화, 크록스, 겨울용 부츠 이 세 가지 신발을 주로 신는다. 운동화는 발 사이즈에 맞춰 신기지만 크록스와 부츠는 2 치수 정도 크게 신긴다. 그래야 2년 정도 신을 수 있다. 한 시즌이 지나서 신발이 작아지면 난감하다. 신발은 너무 멀쩡하고 그래서 아깝다.
아이들이 가장 자주 신는 신발은 크록스이다. 슬리퍼 겸용 샌들 기능을 할 수 있어서 아주 유용한데 이 크록스도 여름용과 겨울용이 따로 있다. 외관은 똑같지만, 겨울용은 안쪽에 털이 있다. 아이들 크록스 사이즈를 확인하다가 나는 문득 파란 슬리퍼가 생각났다.
재래시장의 신발 파는 곳에 가면 파란 슬리퍼를 판다. 욕실용 슬리퍼와 비슷한데 앞코가 막혀있고 플라스틱 재질로 되어 있는 슬리퍼이다. 이 파란 슬리퍼의 주인은 바로 나의 엄마이다.
엄마는 정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여러 가구가 같이 사는데 화장실은 하나인 구조로 되어 있는 곳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엄마의 하루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시부모를 모시고 시동생들 도시락까지 싸는 삶을 살던 엄마가 분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살림만 하지 않았다. 국수를 끓여서 시장 상인들에게 점심 장사를 하기도 했고, 야채를 손질해 되팔기도 했다. 모두 외할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잠시도 앉을 틈도 없이 바쁜 엄마의 발은 항상 파란 슬리퍼 안에 있었다. 엄마는 '내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다른 신발을 사지 않고 오직 파란 슬리퍼만 신기로 다짐했고 실제로 그랬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을 아주 오래 뒤에 알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오직 내 신발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신었던 신발들은 기억나지만, 엄마 신발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이토록 무심한 딸이다.
아이들 크록스 신발 상태를 살펴보던 나는 순간 울컥했다. 크록스는 여름용도 꽤 두께가 두껍다. 하지만 아이들 발이 시려 울까 봐 염려된 나는 겨울용도 구입한다. 파란 슬리퍼는 아주 얇다. 앞코가 막혀있어 여름에는 쉽게 땀이 차고 겨울에는 신발 자체가 꽁꽁 얼 정도이다. 사계절을 이 슬리퍼 속에서 엄마의 발은 온종일 종종거리며 움직였다. 얼마나 춥고 얼마나 더웠을까.
엄마는 참을성이 강하다.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그렇지만 나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과거의 일을 이야기할 때 원망을 담지 않는다. 엄마는 학창 시절에도 집안일을 해야 했다. 외할머니는 시장에서 장사했고 큰딸이던 엄마는 살림을 도맡아 하며 학교를 다녔다. 나 같으면 공부만 하기에도 힘들다고 투덜거렸을 텐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겨울이었던 어느 날 엄마가 빨래하는데 너무도 손이 시려워 시장에 있던 외할머니에게 고무장갑을 사달라고 말하러 갔던 엄마는 그냥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외할머니는 그때 생선을 팔고 있었는데 생선 손질하는 외할머니 손이 맨손이었다. 할머니의 맨손을 보고 엄마는 집으로 되돌아와 남은 빨래는 마저 했다. 나는 이건 참을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필요로 하면 반갑다. 엄마가 피자나 파스타를 드시고 싶어 하면 무척 반갑다. 하지만 엄마는 늘 필수품만 아주 가끔 필요로 한다. 불필요한 물건이나 사치품은 지금도 마다한다. 엄마의 필수품은 엄마가 나이 들었다는 걸 느끼게 한다.
오랫동안 엄마의 파란 슬리퍼를 잊고 살았다. 엄마에게 예쁜 운동화를 사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