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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은경 Oct 28. 2022

훨훨 나는 새처럼

유난히 더운 올해(2022년) 여름 엄마는 어느 날 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새가 되고 싶은 이유를 안다. 하지만 무뚝뚝한 딸은 이렇게 대답했다.

     

"새가 뭐가 좋아. 더 큰 새가 잡아먹을까 봐 잠도 푹 못 자. 사람이 제일 낫지."

     

엄마는 젊었을 때부터 새처럼 훨훨 날고 싶어 했다. 생활에 갇혀 사는 삶 속에서 그런 소망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하는 엄마는 젊어서는 절약하느라 나이 들어서는 허리와 다리가 아파 자주 떠나지 못한다.     

젊었을 때 엄마의 여행은 성당에서 단체로 떠나는 성지 방문이 유일했다. 그런데 나는 네다섯 살 무렵의 기억도 꽤 잘 나는데 엄마의 나들이는 기억하지 못한다. 엄마가 티 나지 않게 나들이를 갈 때는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그때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할아버지 식사 준비와 집 안 청소 등 엄마의 공백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나들이를 갈 때 준비하는 게 아이들 물품, 옷, 화장 등이지 집안일을 챙기진 않는다. 생활에 갇혀있던 엄마가 새처럼 훨훨 날아갈 나들이를 준비할 때 설레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나들이 끝 무렵에는 다시 생활로 돌아와 가족들 식사 준비에 늦을까 얼마나 마음속으로 종종거렸을지. 그 당시에 알았다면 엄마가 옷 입는 거나 화장하는 걸 같이 봐주고 저녁 식사 준비를 미리 해두었을 텐데.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올해 여름은 무척 더웠는데 어느 날 설거지하던 엄마가 외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엄마 집에 내려와 계실 때도 여름이었다. 그때 할머니를 모시고 해수욕장에 모래찜질하러 갔는데 달리는 차 속에서 할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희 아버지는 이렇게 좋은 것도 못 보고 가셨다."

     

엄마는 여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난 것이다. 특별한 장소로 특별한 여행을 떠난 것도 아닌 근교의 해수욕장에 갔을 뿐인데도 할머니는 “좋다”를 연발하셨다고 했다. 이야기 끝에는 엄마의 울음이 묻어났다. 무뚝뚝한 딸은 엄마를 달랜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엄마도 내가 어디 가자고 하면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같이 가. 그래야 나중에 내가 마음이 안 아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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