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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당연필 May 16. 2023

[퇴근길] 경로이탈

가끔은 필요한 이탈

요즘 내 퇴근 시간은 평소보다 2시간 정도 늦다. 10년 전 공부만 하고 취득하지 못한 자격증이 있는데, 지금 내 직업과 연관이 많아 다시 도전 중이다. 아이 때문에 집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아 퇴근 후 사무실에서 2시간 정도 더 남아 공부를 하고 퇴근을 한다.


늦게까지 남아 있는 나 때문에 사무실을 청소하시는 분들이 난감해하신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가끔 내 방을 힐끔힐끔 쳐다보시는 것은 알았는데, 나 때문에 이 분들이 내 방을 제대로 치우지 못하거나 퇴근이 늦어지시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에 오늘은 퇴근 후 밴쿠버 다운타운에 있는 공공도서관 (Vancouver Public Library)으로 자리를 옮겼다.


회사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떨어져 있는 도서관인데, 다운타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모처럼 퇴근길 경로를 벗어나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저녁 시간 밴쿠버 다운타운은 관광객과 유학생 (어학연수생) 그리고 직장인들로 붐볐다.


직장인이지만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책가방을 매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내 모습은 얼굴 생김새와는 다르게 늦깎이 유학생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도서관. 참 오랜만이다.


내일모레 마흔을 앞두고 다시 공부를 한다고 도서관에 앉으니 기분이 묘하다.


20년 전 유학을 왔을 때 영어를 배우기 위해 8개월간 어학연수를 했는데, 그때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는 공공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전자 사전으로 영단어를 찾아가며 그날그날 신문을 읽으면서 공부하며 얼른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 꿈꿨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영어는 참 어렵다.


같이 살던 룸메이트 후배는 지금 투자회사 CEO가 되었고, 함께 수학 수업을 듣던 대학 동기는 사모펀드 상무가 되었다. 점점 내 주변에 성공하고 앞서가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나는 10년 전 포기했던 도전 앞에 다시 서 있다.


그 당시 내가 도전했던 그 길에서 경로를 이탈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지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까?


지금 또 평범한 루틴에서 경로를 이탈해 버린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우면서도 이번에는 제발 잘해보자 스스로 다짐해 본다.


모처럼 퇴근길 루틴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을 걸어보았다. 그리고 이제 경로를 재탐색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결국 목적지는 같은데..


참.. 바쁘다. 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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