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 Oct 12. 2023

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관계에 대한 편지, 이경

    오늘은 커피 한잔을 챙기셨을까요. 유희 씨. 저는 저녁을 먹고 커피를 한잔 사오며 동네 가로수에 빼꼼 나온 붉은 잎을 발견하며 새삼 가을을 알았습니다.  올해 마지막 계절이 머지 않았음을 생각하게 되더군요.


    날이 추워질수록 또 바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요즘도 출퇴근 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논의가 필요한 이슈가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한 마음에 자꾸 핸드폰을 확인합니다. 대행업이라는 게 이렇습니다. 종종 제 일에 대해 설명할 때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하기도 할 정도니까요.     


    친구들은 그래서 제가 늘 바빠 보인다고 말합니다. 사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확실히 일과 중에 가장 많은 말을 할 때는 일을 할 때기도 합니다. 재택근무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작년부터는 통화나 화상 회의를 할 일이 늘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특히 가장 신경써서, 끊이지 않게 말을 해야하는 일을 꼽으라면 '인터뷰'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늘 인터뷰를 했습니다. 신문사 내의 웹진팀부터 화장품 회사까지 대부분의 회사가 업종을 달리했음에도 말이지요. 연예인을 비롯해 화가, PD 등을 인터뷰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어떤 형태로든 그들의 인생사나 철학, 전문 지식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꼭 필요했던 것이죠.


    저는 그들의 소속과 경력 등에서 유추되는 정보를 모으고 질문거리를 만든 후에 마치 그동안의 행적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은 어땠는지 그이의 진짜 심경을 기 위해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네지요. 그러다 보면 그 혹은 그녀가 어떤 사람일지 윤곽이 그려지고 실제로 이야기를 나눈 후 원고를 쓰게 되는 단계에 접어들면 내적인 친밀감이 쌓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기사와 함께 쓸 인물 사진, 이야기와 관련된 자료 사진까지 편집해서 최종적으로 콘텐츠를 발행하고 그것을 인터뷰이에게 전달하고 나면 인터뷰는 완전히 끝이 납니다. 그 과정에서 인터뷰이에게 저는 어떻게 느껴졌을까요? 대부분은 일 때문에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 가끔은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 그보다 훨씬 더 드물게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좋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길게는 몇 주씩 걸리기도 하는 이 과정을 몇 년째 반복해 왔음에도 안부를 묻는 사람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인간성을 의심하게도 하지요. 이렇다 할만한 트러블을 일으킨 적도 없고 이야기를 잘 만들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적도 있지만, 결국은 사람들을 또 스쳐 보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에요.      


    언젠가부터는 사람의 등을 보는 일이라는 게 그런 건가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다른 일이지만 이미 일어나고 흘러간 상황이라는 점에서, 훼손된 마음을 언제까지고 방치할 수가 없어 그렇게 생각해 보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해 남자친구가 이별을, 그로부터 2주 뒤에 제가 스카우트해온 오랜 친구가 퇴사를 통보한 적이 있습니다. 핸드폰 너머의 목소리들이 제게 미안하다고, 그래도 함께할수록 서로 나빠지기만 할 것 같으니 더는 못하겠다고 했었죠. 솔직히 말하자면 꽤 울었습니다. 떠난다고 말해서 울었고 잡히지 않아서 또 울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랐고, 결국 등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에 무너진 셈입니다. 물론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대개 쌍방입니다. 얼마나 속앓이를 했든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저는 피곤하고 결국에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어느 밤에는 그들에게 정중히 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가능한 공손하게, 이력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처음 만나는 인터뷰이에게 묻는 것처럼 “저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싫었나요?” “저를 견디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나요?” 따위의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러면 고통스럽더라도 이유는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대답을 듣고 나면 제가 시간과 함께 흘려보낸 수많은 인터뷰이들처럼 그들도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음, 네. 그렇습니다. 아마 절대 그럴 수는 없겠지요. 저를 더 싫어하고 이상하게 여기며 지난 일을 들쑤시니 이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남겨진 괴로움을 견디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혼자서라도 여기저기 다녀봐도, 사람 인연이라는 게 이렇게 오고 갈 수도 있구나 하고 주변에 남 얘기처럼  흘려보내려 해도, 산책길에 멀리 흘러가는 한강을 하염없이 보아도 그렇습니다. 남의 마음을 충분히 듣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일은 어쩜 이렇게 어려울까요.      


    부디 올해가 완전히 흘러가기 전에 며칠이고 여행을 다녀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풍이 가득 여물어 떨어지기 시작하는 풍경이어도 좋고 겨울 한낮의 일렁이는 바다 풍경이어도 좋겠습니다. 어디로 가든 느지막이 일어나 이른 점심을 먹으면서 그런 풍경만 쳐다 보는 하루가 몇 번이나 반복되기를 그려봅니다. 그 풍경에 오가는 사람들은 있어도 없어도 좋겠습니다.      

이전 26화 마자용처럼 살아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