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대한 편지, 유희
이제 며칠 뒤면 아이의 일곱 살 생일이 됩니다. 일곱 살이지만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6년밖에 되지 않았지요. 아이를 낳고 키우며 행복했던 날도 많았지만 버거운 날도 많았습니다. 진물이 계속 차오르는 습진을 온몸에 달고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기도 했고, 잠투정을 하는 아이의 짜증과 울음을 받아내기도 했으니까요. 밤부터 아침까지 이유 없이 울기만 하는 아이와 함께 울어버린 날도 있었습니다. 아이가 영원히 울기만 할 것 같은 날들이었지요. 그런 고비들을 지나 아이는 아이돌 춤을 따라 하고 혼자서 책을 읽을 정도로 자랐습니다. 아직도 가끔 울기는 하지만, 자지러지게 우는 날은 이제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아이가 이만큼 자라니 요즘은 아이가 아닌 스스로를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질문을 하게 되고 한숨을 쉬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할 때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그 일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던 이십 대의 제 모습이 불쑥불쑥 스치고 지나갑니다. 지금은 아이를 잘 돌보는 일이 제가 가장 열심히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일이 되었지만 지난 꿈에 대한 미련은 아직 버리지 못했습니다.
이십 대 처음으로 쓴 이력서도 오로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쓴 이력서였습니다. 생계를 위한 선택이 제일 컸지만 생계를 이어감으로써 살아있고 그렇게 해서 운 좋게 살아있다면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스무 살에 들어가 스물두 살에서 나온 제약회사는 이력서를 쓸 때 가장 먼저 제 경력란을 채우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사실 제약회사 연구소 연구보조원으로 일을 한 것이라 이름 있는 프로젝트를 맡은 것도 아니고 대단한 실험을 진행한 것도 아닙니다. 이력서의 공란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2년 동안 한 회사를 버티며 다녔다는 인내심을 증명하기 위해 이력서에 적을 뿐이죠.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 틈에서 실험기구를 닦고 영수증을 처리하고 실험용 주사기를 정리하는 일. 대학을 가지 못하고 하게 된 일이 어린 시절 꿈꾸던 일과는 달라서 눈물을 많이 쏟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여성들의 이미지,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던 연구원들의 이미지, 공단으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냄새와 소리까지 책이 아닌 감각으로 익혔고, 이렇게 체득한 감각은 제가 살아가고 글을 쓰는 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력서를 쓴 다음에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이력서를 쓴 것 같습니다. 첫 회사를 나와 학교에 가고 학교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졸업 이후에는 한 회사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회사를 전전했으니까요. 뭐 그리 거창한 이력서를 쓴 것은 아니지만 이력서를 작성하며 저는 초라한 기분을 많이 느꼈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에서 자격증 시험을 보거나 토익 점수를 위해 공부를 했던 것이 아니라 이력서에 공란이 많았습니다. 재학 시절 공부했던 시와 소설로 이력서를 채울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문학을 전공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지만, 문예창작과를 다닌다고 하면 한숨을 짓던 어른들의 한숨이 제 것이 되어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공란이 많은 이력서와 정성을 다해 쓴 자기소개서를 일하고 싶은 회사에 메일로 보내고 나면 회사에서 연락이 오는 꿈까지 꾸며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꿈이었던 제게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생계를 위해 간절하게 다가왔습니다.
이력서를 보내기 전에는 제가 회사를 선택하는 것이었지만 이력서를 보낸 후에는 회사의 선택을 간절히 기다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잘 쓴 이력서 하나에 먹고사는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력서에는 넣지 못할 이력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했던 놀이공원, 음식점, 치킨집 아르바이트와 대학 때 했던 도서관, 학과 사무실, 대필 아르바이트 등은 저의 살아온 날을 거창하게 꾸미지 못합니다. 이력서에 넣는 이력들은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이고 많은 공부를 했는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안타까워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부끄럽게도 저는 졸업 이후 오래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을 할 때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항상 간절했고 그 간절함이 회사 생활에 방해가 되더군요.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졸업 후 길지 않은 사회생활을 마치고 저는 스물여덟에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돌보며 이제는 이력서에 큰 공란이 생겨 버렸고요. 언젠가 다시 이력서를 쓰고 사회에 나갈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의도와 다르게 커져 버린 긴 공백이 공포로 다가옵니다.
열심히 육아를 하고 있지만 육아를 한몇 년이 제 이력서를 채우지는 못합니다. ‘육아를 하면서 일까지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써야 할까요? 이력서가 어렵게 어렵게 통과하더라도 면접에서 서른일곱 살이 되도록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는 질문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남편과 같이 일을 해야만 생활이 되시나요?”하고 물어보던 지난날의 면접관처럼 말입니다.
이경 씨와 저는 이력서에 같은 한 줄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이후에 이력은 우리의 선택과 운에 의해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졸업 이후에 우리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 있었으니까요. 어느 쪽이 더 만족스럽고 편안한 지는 누군가 판단할 수 없을 겁니다. 다만 고단한 삶을 이기고 우리가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이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편지 마지막에 하게 됩니다. 이경 씨, 견디고 버티며 서른여섯의 이경 씨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 이제 몇 달 뒤면 만나게 될 서른일곱의 이경 씨의 모습도 기대가 됩니다. 마음이 부쩍 헛헛해지는 계절이지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또 안부를 전합니다.
이력서 쓰기
무엇이 필요한가?
신청서를 쓰고,
이력서를 첨부해야지.
살아온 세월에 상관없이
이력서는 짧아야 하는 법.
간결함과 적절한 경력 발췌는 이력서의 의무 조항.
풍경은 주소로 대체하고,
불완전한 기억은 확고한 날짜로 탈바꿈시킬 것.
결혼으로 맺어진 경우만 사랑으로 취급하고
그 안에서 태어난 아이만 자식으로 인정할 것.
네가 누구를 아느냐보다, 누가 널 아느냐가 더 중요한 법.
여행은 오직 해외여행만 기입할 것.
가입 동기는 생략하고, 무슨 협회 소속인지만 적을 것.
업적은 제외하고, 표창받은 사실만 기록할 것.
이렇게 쓰는 거야. 마치 자기 자신과 단 한 번도 대화한 적 없고,
언제나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해 왔던 것처럼.
개와 고양이, 새, 추억의 기념품들, 친구,
그리고 꿈에 대해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지.
가치보다는 가격이,
내용보다는 제목이 더 중요하고,
네가 행세하는 ‘너’라는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보다는
네 신발의 치수가 더 중요한 법이야.
게다가 한쪽 귀가 잘 보이도록 찍은 선명한 증명사진은 필수.
그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보다는
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더 중요하지.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
이런, 서류 분쇄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잖아.
-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