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에 대한 편지, 이경
유희 씨, 벌써 구월입니다. 만으로 나이를 세는 요즘 법에 따르면 저는 곧 한 살을 더 먹습니다. 두 계절을 보내도 지금 나이와 친해지지 못했는데, 또 바뀐 숫자를 받아들여야겠군요. 이리저리 들춰 보아도 제 것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서른 번을 훌쩍 넘겼으니 익숙해질 만도 한데요.
이런 느낌은 예전에 이력서를 쓸 때마다 더 강하게 받았던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이력서를 썼던 것은 스물네 살이 막 된 겨울이었습니다. 저는 졸업 학년 이후 다가온 마지막 방학에 대외 활동에 도전했는데, 당시 같이 활동을 하던 친구가 소개해준 인턴 자리에 면접을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내용을 어떻게 써야 봐 줄만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요. 오타난 곳이 없는지 몇 번씩이나 확인하고 출력한 A4 용지를 구겨지지 않도록 투명한 파일철에 끼워두면서 저는 약간의 흥분과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엉겁결에 수락한 제안에서 얼마나 운이 따를지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의 저는 방학이 시작된 순간부터 갑자기 쫓겨난 사람처럼 막막한 심정에 빠져있었습니다. 이유 없이 억울하기도 했죠. 어디서 무얼 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으니까요. 저에게는 16년 동안 당연히 갈 곳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마지막 방학이 끝나고 나니 더 가야 할 곳도 없이 길을 잃은 것입니다.
다행히 지금은 아홉 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적을 두었던 회사는 두 군데가 더 있었고요.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릅니다. 그동안 제가 썼던 이력서는 백 통이 훌쩍 넘을 겁니다. 적은 편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경쟁률이 지나치게 높을 것 같은 곳, 방송국, 출판사는 제외하고 글쓰기를 주 업무로 활용할 수 있는 곳, 그중에서도 제가 관심 있는 분야를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곳들만 찾아 신중히 넣어보았다는 조건을 붙이면 또 그리 적은 숫자는 아닐 겁니다.
그렇게 쓴 모든 이력서에는 이름 밑에 나이가 따라붙었습니다. 저는 하루빨리 안착할 곳을 찾고 싶었는데, 어째서인지 그 숫자가 바뀔 때마다 이력서를 써야 하는 순간이 이어졌습니다. 숫자 밑으로 이어지는 내용들은 더디게 변하는데 숫자만 쉬지도 않고 꼬박꼬박 바뀌어 가는 상황이 얼마나 조급했는지 모릅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곤혹스러웠던 것은 자기소개 란이었습니다. 지원하고자 하는 업무를 성실하고 즐겁게 해낼 수 있다고 꾸며 쓰면서도 거짓이 섞이면 안 되고, 읽는 사람의 눈에 아주 빠르게 들어야 합니다. 글쓰기를 3년 내내 배웠지만 그런 글은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자기소개란을 채워야 할 때면 늘 괴로워했고 한 번에 완성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지난 몇 년 간은 지금의 회사에 다닌 덕분에 이력서를 쓸 일이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처음으로 이력서를 쓰지 않고 들어온 회사이기도 합니다. 이 전의 회사에서 잠깐이나마 함께 일했던 대표님이 스카우트를 해주신 덕분이지요. 지금 이력서를 쓴다면 처음에 썼던 이력서보다는 더욱 세련되게 쓸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진짜로 써야 할 글을 먼저 선보일 수 있었던 행운이 따랐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력서를 쓸 때면 운에 대해 자주 생각했는데, 정작 이력서를 쓰지 않았을 때 운이 따른 셈이지요.
길지 않은 생을 살면서 운이 따르는 경우를 곰곰이 되짚어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경우도 생기곤 하지만요. “그땐 맞고 지금은 틀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렇게 순순히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밟고 지나온 길을 되돌이켜 생각해 보고, 여러 개의 변곡점을 지니는 삶이란 나름대로 괜찮지 않은가 생각도 하고요. 우리가 나누는 이 편지는 그런 삶에서도 제 인생의 이력에 곱게 남을 겁니다. 유희 씨, 우리 남은 해에도 잘 써보면 좋겠습니다. 계절을 건너가며 함께 걸었으니 올해도 꿋꿋이 걸을 수 있게 되겠지요. 정말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