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메시지를 남겨두던 마음
휴대전화에 대한 편지, 이경
외출하고 돌아와 가방 정리를 마쳤습니다. 떨어진 생필품 몇 가지를 사서 돌아온 길입니다. 그중에는 하나씩 개별 포장된 알콜솜도 있습니다. 언젠가부터 떨어지지 않게 챙겨두는 것 중 하나입니다. 집에 오면 포장을 뜯어 휴대전화를 닦아내기 때문입니다. 외출하게 되면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다니다가 식당, 카페 테이블이나 의자 위에 올려놓게 되곤 하는데 집에 와 씻은 몸으로 계속 만지기에는 마음이 불편해서입니다. 휴대전화가 변기보다 더럽다던 어느 기사의 제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탓인지, 이년 넘게 지속된 역병의 시대가 남긴 습관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휴대전화를 영 떼어 놓을 일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제가 중학생이던 때부터 대학생일 때까지는 작고 큰 폴더폰과 슬라이딩 폰을 차례로 사용했었는데 시스템은 다들 비슷했죠. 앱의 개념이 없었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방법은 데이터 부가 서비스명이 적힌 버튼을 누르는 것이 유일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데이터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키패드 중앙에 커다랗게 박힌 그 버튼을 누르면 평소보다 엄청나게 과금이 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용하는 것은 통화와 문자, 카메라와 미니 게임, 메모장 정도의 기능이었던 것 같네요. 이 모든 기능에 쇼핑과 금융 업무, 본인 인증까지 전부 처리하는 지금의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심심했던 셈이죠.
그래도 디자인은 더 다채로웠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휴대전화들은 지금처럼 액정이 클 필요도 없었고 자판도 잘 들어가야 했으니까요. 한글, 영어, 숫자에 온갖 기호까지 쓸 수 있는 키패드가 오밀조밀하게 박혀 있었지요. 누군가에게 문자로 보낼 때면 키패드를 꾹꾹 힘주어 누르던 감촉이 아직 떠오르는 듯합니다. 무제한에 가깝게 남는 카톡과 달리, 저장 용량이 정해져 있었던 당시의 문자 시스템 덕분에 저는 보관함에 남겨 두는 문자를 선별하느라 고심하곤 했습니다. 대개는 매년 말일과 새해 첫날, 친구들과 주고받은 덕담 메시지를 보관함에 넣어두고 가끔씩 살펴보곤 했지요. 한 해가 이제 막 저물고 또 시작된 설렘과 들뜸이 가능한 오래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은 하루에도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이고, 그걸 흘려보내기 바쁩니다. 트렌드와 업무 지식을 공유하는 오픈 채팅방, 고객사 담당자와 함께 일 이야기를 하는 방, 가족들, 친구들과의 대화방에서 올리는 것들입니다. 스마트폰을 쓰고 나서 갖게 된 가장 중요한 소통의 장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저는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정말 많이 써왔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끔은 중요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인지, 이야기를 많이 하다 보니 정말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헷갈리는 때가 있습니다. 중요도에 따라, 더 흥미로운 것을 따라 덩어리 진 이야기를 한껏 벼려내는 일에 너무 익숙해진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뜨는 키패드가 어떤 것을 누르든, 얼마나 고민하다 누르든 같은 촉감을 전하는 것처럼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제 모습을 종종 봅니다.
물론 형형색색 각양각색 이모티콘들이 가득한 이 소통의 창이 싫은 것은 아닙니다. 편리하고, 때로는 어설픈 말보다 재치 있게 제 의사를 표현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모티콘과 ㅋ의 반복이 주는 가벼움이 팍팍한 일상의 무게를 덜어줄 때도 있습니다. 마음에 두는 사람들과 함께 주고받는 애정 어린 농담의 힘입니다.
휴대전화와 그 속에서 오가는 메시지는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까요? 지난 10여 년이 그랬듯 앞으로의 10년도 그보다 더 먼 미래도 차마 짐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란 늘 동일한 법칙 아래에서도 저마다의 패턴을 지어 움직입니다. 어제와 오늘의 제가 그랬듯 다가올 시간의 저도 그렇겠지요. 유희 씨, 당신과 제 사이에 존재하는 패턴도 그 속에서 여전하기를 바랍니다. 형태도 내용도 달라지더라도 속에 깃든 마음만큼은 분명하고 따뜻하리라 믿고 그 옛날 보관함에 넣었두었던 문자처럼 간직해 보려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