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을 시작한 지 이십 년이 조금 안 되었습니다. 체리색 립밤과 얼굴빛이 약간 더 밝아 보이는 로션을 바른 것부터 시작해 파운데이션도 립스틱도 두 가지를 섞어 쓰는 지경입니다. 하면 할수록,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욕심이 나고 필요한 것도 많아집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끝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흔히들 말하는 코덕(코스메틱 덕후)은 아닙니다. 저는 아이브로우와 아이라이너를 딱 한 개씩만 씁니다. 브러시는 전부 합쳐서 네 개, 섀도는 팔레트 세 개와 단품 서너 개 정도입니다. 입술에 바르는 것은 일곱 개 정도 되는 듯하고요. 아주 적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리 자랑할만한 수준도 아닌 겁니다.
그래도 색조 화장품은 취향에도 맞고 얼굴빛에도 잘 어울리는 것들로만 고르느라 고심했습니다. 섀도의 색은 벚꽃, 팥과 초콜릿, 갈대를 딴 것입니다. 립 제품은 막 익은 사과부터 어두운 체리까지 붉은빛으로 퍼져 있습니다.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다녔던 시절에는 주홍빛이 강한 색도 잘 쓰고 다녔지만 이제는 아니지요. 저는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이 어울리는 타입이라는 것을 몇 년 전의 테스트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타고난 머리칼과 눈동자가 새까만 편이고 피부는 노란 기운보다 붉은 기운이 더 강한 탓이라고 하더군요. 이제는 골라 연한 것부터 진한 것으로, 넓게 펴 바른 후 좁게 안쪽을 채우는 방식으로 얼굴을 단장합니다.
유희 씨도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제가 이십 대 초반에 하던 것과는 다른 방식입니다. 그때 저는 섀도를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대신 공전의 히트를 친 로드샵 브랜드의 아이라이너 제품을 애용했지요. 넉넉한 용량에 길쭉한 붓까지 포함된 상품이라 사용하기에 효율이 좋았을뿐더러, 외까풀 눈도 단번에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제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눈은 가로로 길쭉하고 눈두덩이가 두터운 탓에 검은 자 윗면이 눈꺼풀에 덮인 것처럼 보여서 졸리거나 기분이 나쁜 상태는 아닌지 자주 오해를 받곤 했습니다. 이런 오해를 벗어나 누군가는 저를 더 선명하게 바라봐주기를 바랄 때마다 눈 위에 까만 선을 그리곤 했지요.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은 있습니다. 피부는 더 밝게, 눈과 입술의 색은 더 진하게 만들기 시작하면 얄팍한 기쁨과 희망이 생겨납니다. 제가 좋아하는 모습을 선명히 하는 데서 오는 감정입니다. 저는 제 얼굴형과 눈썹 모양과 입술의 두께를 좋아합니다. 눈썹 숱이 비교적 고르게 난 덕분에 모양을 잡기 편하고, 입술은 도톰하게 바르기 쉽습니다. 광대나 코가 특별히 예쁘지는 않지만 너무 모나거나 돌출되지 않고 적당한 각을 지닌 것 같습니다. 제 눈에는요. 물론 살이 많이 붙은 것이 흠일 수는 있겠습니다만, 요즘 화장품은 두툼한 턱을 조금은 감추고 제가 원래 가진 선을 짐작하게 하지요.
스스로가 좋아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방법에 정답과 오답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정돈되어 바라보기에 좋은 것들, 찬란한 색과 부드러운 어떤 형태들, 다정한 말과 배려들, 맑은 날 공원의 평화로운 풍경, 슬픔과 기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과 같은 것들이요. 이런 것들은 해일처럼 밀려오는 고통에도 저를 함부로 쓰러지지 않게 해 줍니다. 이 고통만이 전부라는 오해를 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지요.
제가 가진 것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것들을 발견하고 또렷이 다듬어내는 일은 그러한 의지를 굳게 하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그래서 가능한 아름다운 것들을 가까이에 두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지금 상태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고, 고통에 갇힌 나를 꺼낼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속삭여 주니까요. 폐허의 풍경이 내려앉더라도 그 밑에 푸른 새싹이 숨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강합니다.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키우는 일이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이던가요.
물론 저도 믿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애써보는 사람입니다. 어떤 길도 웃으며 씩씩하게 걷는 사람은 못됩니다. 서럽게 울면서, 둘러싼 온갖 것에 짜증을 내면서, 끝없이 의심을 하면서 한 발씩 슬쩍 내디뎌 보는 사람입니다. ‘어차피 걷는다면 그래도 이쪽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요. 가능하면 저는 더 이상 걸을 길이 없을 때까지 이런 태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화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비장해진 걸까 싶습니다. 그러나 마스크를 늘 쓰고 다녀야 했던 지난 2년을 떠올리면 작지만 분명한 기쁨 중 하나라는 생각도 뒤따릅니다. 아무쪼록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든 작든 무언가를 잃었으니까요. 그러나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삶을 마주해 오며 지금에 이른 것도 사실이지요. 또 한 번 꿋꿋한 사람들의 삶에 저마다 원하는 형태의 아름다움이 스몄으면 좋겠습니다. 유희 씨에게도요. 모쪼록 자유롭고 건강하십시오. 저는 당신의 기쁨을 자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