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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Oct 18. 2023

가득하게 읽고, 끝까지 쓰기

문학 전공에 대한 편지, 유희

   날이 부쩍 무더워졌습니다. 그치지 않을 것처럼 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조금도 시원해지지 않을 것처럼 더위가 극성입니다.  재택근무를 이어가는 이경 씨는 이 계절을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빠르게 자라나는 아이와 조금씩 늙어가는 고양이와 함께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이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고, 더위를 타는 고양이의 털을 빗겨주면서 말입니다. 이렇게 나름대로 계절을 즐기다 보면 언젠가는 선선한 가을이 찾아오겠지요.    


   대학교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일은 졸업 이후를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지금처럼  내내 졸업 이후를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당시에 저는 어머니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대단히 큰 사치를 하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죄책감도 가졌고요. 그래도 태어나 처음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있다는 기쁨에 학업을 놓치지 못하고 견뎠습니다.     


   그 많던 수업 중 저에게 가장 소중했던 수업은 이번 편지의 주제가 된 시창작수업과 소설창작수업입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했던 공부의 이유가 이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구나라는 생각이 매 순간, 순간마다 들었습니다. 수업에서는 주로 기성작가의 글을 함께 읽고,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써 온 작품을 읽었습니다. 다른 학교의 문예창작과 와 평범한 글쓰기 교실에서도 하는 수업 방식이지만 저에게 이 두 수업은 무척 특별했습니다. 동경하는 작가의 음성으로 진행되는 수업은 녹음을 하고 싶을 정도로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다시 되감기 할 수 있다면 그 부분만 반복해서 계속 듣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은 수업 중 하신 이야기에 대해 많이 잊어버렸지만 수업을 들으며 가졌던 기쁨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시의 감각과 문장, 묘사와 사유, 사실과 상상 이런 어려운 단어에 대해서 설명할 능력이 없습니다. 또 소설의 인물과 배경, 구상과 구성, 서술과 묘사에 대해서도 문예창작과 졸업생다운 지식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비싼 등록금과 많은 시간을 이 어려운 단어들을 이해하려고 공을 들였는데도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저의 글도 아직은 많이 서툴러서 쓸 때마다 좌절하게 되고요.     


   하지만 이 수업들을 통해 확실하게 얻은 것은 문학과 삶, 인간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자주, 또 깊이 연민하게 되고 왜 이토록 삶은 아름답게 처절한가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작게, 작게 쓰세요.”, “감각적으로 쓰세요.”, “왜 썼나요?”, “미사여구가 많으면 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여자를 보고 있는 것과 같다,”, “잘 지우는 것이 잘 쓰는 것이다.”    

 

   수업 중에 들었던 말 중, 떠오르는 말 몇 개를 적어보았습니다. 몇 개는 이경 씨도 생각이 나서 선생님의 음성을 떠올리며 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나시나요? 그때는 어렴풋하게 이해했던 말들을 지금은 무릎을 탁, 치며 이해하고 있습니다.


   졸업 이후, 글을 쓰는 작업이 매우 어렵게 느껴져 몇 년 동안 일기 몇 편 외에는 글을 쓰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제 속 안에 언어와 감정이 쌓여 해소되지 않는 것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아무 글이나 막 쓰고 싶어 지다가 쓰지 못하면 그 감정은 답답하고 우울한 감정으로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이야기를 만들고 시를 만드는 일로 해소돼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저는 대단한 작가도 아니고, 또 앞으로 작가가 될만한 자질이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 묻게 될 정도로 부족한 사람입니다. 왜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지만 쓰지 않으면 죽겠구나, 싶은 건 스스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동화 공부를 하며 이전에 배웠던 공부를 다시 떠올리고 있고요. 언젠가 이경 씨에게도 제 동화를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가 함께 한 공부가 그때는 제대로 빛을 발하겠지요? 이경 씨도 저도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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