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 씨, 지난 편지를 받고 우리가 같은 색으로 안산을 떠올린다는 것에 조금 놀라고 깊이 반가웠습니다. 그 도시의 모든 순간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일들은 마음에 단단히 박혀있습니다. 시와 소설을 배웠던 시간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전공필수 과목이었던 시창작연구와 소설창작연구 그리고 시창작실습과 소설창작실습을 이르는 말이었던 '시창'과 '소창'이라는 단어는 학교에 다니는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습니다. 여러 작품을 읽고 그에 대해 논해야 했던 그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미야모토 테루, 오르한 파묵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름다운 숲 같은 문장 사이사이를 거닐다 보면 마침내 커다란 세상에 도착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무척 사랑했지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시보다는 소설에 더 많은 마음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시를 썼지만요. 아니, 썼다고 말하기에는 사실 조금 부끄럽습니다. 다만 운이 좋아 여고생을 대상으로 한 백일장과 식품회사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상을 타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 입시 시험은 산문으로 치렀습니다. 어설픈 첫 습작 시기동안 제게는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참여해 본 창작 시간들이 어땠냐고 물으신다면, 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느낀 시간이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제가 쓴 글을 교수님과 같은 반 학우들이 돌려 읽은 후 질문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합평 시간이면 그대로 땅 속으로 꺼지고 싶은 때가 많았습니다.
첫 학기 시창 수업에 냈던 과제 중 가능성을 아직 깎지 않은 연필 속에 숨어 있는 연필심에 빗대어 쓴 시가 있습니다. 드러나는 순간 무한하다는 속성은 영영 사라져 끝내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를 합평하는 시간에 교수님은 시를 쓸 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여쭤보신 다음 고개를 갸우뚱하고, 살짝 웃으셨지요. 이어진 총평은 “흥미롭지만”이라는 다정한 말로 시작되었지만 결국 남길 것이 없다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소창 시간에는 나름의 성과도 있었지만 부끄러움은 여전했습니다. 일년에 한 번 창작 반마다 한 명씩을 뽑아 자신의 작품 일부분을 낭독하는 과 행사를 기억하시나요? 어떤 해에 저는 낭독자로 뽑혀 담당 교수님과 함께 낭독회에서 소설의 어느 부분을 낭독할 것인지 정하고 다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 제가 읽기로 한 부분에는 이사 온 집을 정리하다가 벽에 새겨진 과거의 날짜를 발견하는 여자가 묘사되어 있었는데, 교수님은 왜 하필 그 날짜를 넣은 것이냐는 질문을 하셨어요. 저는 제대로 이유를 대지 못하고 물리적인 시간 상 이때쯤이면 좋을 것 같다고만 했지요.
대답이 끝나는 순간 짧은 정적이 찾아오며 제 얼굴은 이내 뜨거워졌습니다. 왜 그 질문을 하셨는지 뒤늦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 날짜는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짜이기도 했습니다. 교수님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날짜를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씀과 더불어 나머지 부분에 대한 의견까지 차분한 목소리로 전해주셨습니다. 낭독회에서 제가 읽은 것은 교수님이 주신 의견을 반영해 날짜와 묘사들을 바꾼 버전이었죠. 무지한 채로 들떠있던 저를 떠올리면 지금도 힘을 주어 입을 오므리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이 부끄러움을 수반한다는 것을 그토록 친절한 방식으로 배울 수 있던 유일한 때였습니다. "그걸 전공해서 뭐 해 먹고살려고 그러니"라던 엄마의 걱정과 달리 정말 다행히도 글 쓰는 일을 기둥 삼아 지금껏 밥을 벌어먹었으니까요. 작은 계곡처럼 소소하게 굽이치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면서 흘러온 인생 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때의 일들이 어느 깊은 곳에 고여있는 셈입니다.
쓰면서 새삼스레 복기합니다. 우리가 씀으로써 우리 각자의 삶을 있는 힘껏 쓰다듬어 온 사람들이라는 것을요. 이 생각을 하면 마음이 한결 부드럽습니다. 늘 다정한 유희 씨. 제게 또 편지를 남겨주세요. 당신의 편지를 통해 마르지 않는 물을 퍼올리려 애썼던 그때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