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에 대한 편지, 유희
최근 하지 않던 일을 해내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해야 할 공부도 많았습니다. 일을 하느라 24시간 저와 꼭 붙어 있는 스마트폰은 저보다 더 바쁘게 지낸 듯하고요. 길치인 저를 안전하게 도착지까지 데려다주고, 메시지 알림음을 울리기 바빴으니까요. 이렇게 늘 함께하고 의지하다 보니 스마트폰이 없으면 제 자아 중 하나가 없어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지금은 다양한 용도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지만, 폴더 폰과 슬라이드 폰을 쓰던 시절에는 전화와 문자, 카메라 기능 외에는 크게 이용한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때도 휴대전화가 보이지 않으면 찾긴 했지만 지금처럼 수시로 들여다보고 의지했던 것 같지는 않고요.
그때는 오히려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휴대전화가 울리면 심장이 몹시도 요동치고 숨이 막혔던 기억이 납니다. 전화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눈물이 날 뻔했던 기억도 있고요. 전화를 받고 불행해졌던 기억이 많았기 때문에 벨소리가 울리면 불을 지피듯 불안이 확 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저를 불안하게 하는 전화는 주로 제가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과 관련된 전화였습니다. 월세와 생활비, 등록금까지 마련하느라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시기였으니까요. 대학생 신분으로 그 모든 것을 해결하기엔 모아놓은 돈이 많지 않았습니다. 수업을 들으며 하는 아르바이트 수입도 넉넉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하나를 해결하면 또 따른 것을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독촉장, 독촉 전화처럼 당장 생활을 위협하는 연락이었지요.
몇 없는 친척들과 통화하면 "그래도 네가 자식이니까 엄마를 잘 모시고, 네가 그나마 너희 오빠보다 나으니까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오빠를 잘 챙겨라." 같은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 말 안에 안부와 염려가 담겨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제 심리상태는 '전화 공포증’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전화와 관련된 좋지 않은 기억들이 단지 벨소리를 울리는 휴대전화를 회피하게 만든 거지요.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전화 공포증'을 느낀다고 합니다. 각자 좋지 않은 심리 상황과 물리적 상황 때문에 '전화 공포증'을 느낄 겁니다. 그 고통이 어떤 느낌일지 알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요. 울리는 전화와 메시지를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화를 받고 메시지에 답하며 충실히 어떤 관계나 상황을 해결하기 힘들 겁니다. 의지로 되지 않는, 힘에 부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나아질 겁니다. 저는 좀 이기적이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너무 많은 시간을 흘려보낸 후 깨달았습니다. 20대와 30대 초중반 내내 다른 이들을 살피느라 엉망이 되어 있는 제 자신을 너무 늦게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지내는 일상은 오히려 편하기까지 합니다. 죄책감을 덜어 놓고 어떻게든 살아내고 싶습니다. 지금의 '나'에 오로지 집중하려고 합니다.
혹여나 제 우울한 과거가 빼곡히 적힌 이 편지들이 이경 씨를 함께 가라앉게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나온 시절을 함께 편지에 적어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 편지가 계속 전해져 어느새 '지금'으로 오고 있고요. 애써 밝은 척을 할 수도 없기에 솔직하게 저를 다 드러내고 편지를 쓴 것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경 씨, 우리는 오랜 시간 함께하며 다양한 형태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했습니다. 자주 연락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끔씩 하게 되는 이경 씨와의 연락이 얼마나 안도감을 주는지 모릅니다. 이경 씨는 누구에게나 안도감을 주는 편한 사람이지요. 얼른 편지를 보내고 이경 씨와 연락하고 싶어 집니다. 언제나 서로에게 망해도 괜찮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