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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카레몬 Oct 31. 2024

마지막 수업,
접힌 꿈을 다시 피우다

꿈의 아가미가 숨 쉬기 시작하는 시간



카톡,

카톡,

카톡,


여러 단톡방에서 한강의 노벨 문학상 축하 메시지가 폭죽처럼 터지던 저녁이었다. 알람이 쉴 새 없이 울려댔고, 기쁜 소식을 모두 내 일처럼 축하하느라 분주했다.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너 생각나서 전화했어."

"어, 엄마. 왜 내 생각이 났어?" 

지난날의 장면 수백 겹이 문답형 대화 속에 두루마리처럼 펼쳐졌다. 

“한강 작가가 상을 받는 걸 보니까 네 생각이 나더라. 미안해... 우리 딸."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전화기만 쥐고 있었다. 삭제되지 않는 눈물이 얼굴과 손등으로 굴러다녔다.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마음 한편에 단단히 얹힌 것이 풀리는 날이었다.     


평생 글을 쓰고 싶은 사춘기 딸의 마음을 꺾은 것이 죄스러운 엄마다. 진로문제를 놓고 하고 싶은 것과 현실적인 선택 사이에서 부딪히던 시절, 엄마는 안정된 길을 권하며 마음을 다 잡아라 했다. 사랑하는 딸의 꿈을 응원하는 대신, '현실'이라는 이름의 걱정과 충고를 보태던 엄마의 마음이, 한강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다시금 선명하게 나를 떠올리게 만든 모양이다.

      

2024년 2월을 마지막으로 교편을 정리하고 명예퇴직을 하였다. 퇴직의 계기는 2년 전, 이어령 선생님과 김지수 작가의 인터뷰를 담은 책「마지막 수업」때문이다. 김지수 작가의 질문과 이어령 선생님의 답변은, 홀로 깊은 밤 신과 나누었던 대화의 한 부분, 부분들을 맞추어 놓은 듯 문장과 문장들이 살아 움직였다. 접혀서 숨을 쉬지 못한 꿈들이 잎을 내고 햇빛을 불러들였다. 그해 아동 문학으로 등단을 한 후, 마르지 않는 샘처럼 ‘시’를 쓰고자 하는 창작의 열정이 다시 불일 듯 일어났고, 퇴직에 종지부를 찍었다.     


삶의 긴 회로를 지나, 이제는 더욱 진실된 걸음을 내디뎌 보려 한다. 쓰기의 정도를 걷지도 못했고, 스승도 없다. 늦은 나이에 숨기지 않고, 가늘게 파닥이는 꿈의 아가미를 감싸고 바다로 나가고 싶다.「마지막 수업」을 읽고 또 읽으며, 내 안의 소리로 시를 짓는 재미에 빠졌다. 시편과 잠언, 철학자들의 아포리즘을 나의 언어로 다시 쓸 때마다, 창작에 대한 애착이 더 선명해진다.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도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스승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삶에 허락된 작은 기적 같은 일이 또 다른 기회를 얻는 통로가 되었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 승인을 받고, 작은 도토리로 숲을 이루길 소망하는 글밭도 선물 받았다. 오래도록 내 속에 묻어두었던 시어와 이미지를 꺼내어 삶의 빛 속에 내보는 일, 그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씩 알아간다. 


창작의 길, 쓰기의 길은 늦은 사람에게도 너그럽다. 끝없이 나아가는 길 위에 나도 한 발자국을 내딛을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당신의 속도대로, 당신의 길을 걸으라고. 너무 늦었다고 미리 주저하지 말라고.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성장하고, 꿈도 흔들릴지언정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날 무심히 바라본 그 자리가 자신만의 작은 숲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언제나 꿈은 우리를 어디로든 데려다줄 테니, 바람과 햇빛이 무심히 지나가는 그 숲 속에서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그 길은, 당신 것이므로.




오늘의 아포리즘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뿌리를 내린다. 

꿈도 흔들려야 깊어진다.

The tree is shaken by the wind and takes root. 

The dream deepens only when it shakes.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의 아포리즘

밖을 보는 사람은 꿈을 꾸지만, 안을 보는 사람은 깨어난다

Those who look outside dream, 

but those who look inside wake up


나의 아포리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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