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는 중 15>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간 자리예요.
아이를 기다리던 계절은 오래전에 저물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아직 우리 안에
낙엽처럼 바스락이며 살아 있지요.
누군가는 우리 집에 와서 말했죠.
아이 없는 빈 방이 허전하다고요.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비어 있다는 것이
반드시 상실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여기, 우리가 있는 이 자리에
귀한 사람들이 다녀갔습니다
약속도 없이 그저 문턱 닳도록
눈빛 하나로도 우리의 하루를 밝혀준 이들.
귀한 사람들은 선물처럼 와서
언제나처럼 조용히 돌아서지요.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의 사이에서
그 경계 위에 떠나지 않고 조용히 서서
서로의 손을 잡아 줄 준비가 되어 있어요.
사랑은 꼭
무언가를 소유함으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귀한 사람들 역시
비슷한 마음으로
어느 자리에 서 있겠지요.
우리가 그렇듯
귀한 사람들도 자신만의 여기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누군가를 기억하며
작은 숨을 고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한 얼굴로
이 자리에 묵묵히 남아 있으려 합니다.
기적이 스며들 수 있도록
문을 완전히 닫지 않으려 합니다.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비워진 것들을 다시 채우려는 마음으로
이미 귀하게 다녀간 사람들을
조용히 기억하며
다시 귀한 사람들을 기다립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18)
아이 없이 살아가는 중년 부부입니다. 누군가는 선택으로, 누군가는 상황으로 부모가 되지 못합니다. 저희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지요. 아마도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자녀양육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연재글은 '아이 없음'에 대한 내용보다 아이가 없어도 살아지는 중년부부의 일상 기록입니다. 저출산 시대에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럽습니다. 다양한 삶의 형태가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삶의 결이 닮은 분들에게 닿기를 소망합니다.
*자립청년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