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day.
분별력이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성정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세.
왜냐하면 진실로 분별력 있는 사람이 먼저 현명해져야 한다면 나는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 즉각적으로 분별력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네.
마지막수업. 김지수. 열림원. 2021.
분. 별. 력 (分.別.力)
세상 물정에 대하여 옳고 그름 따위를 적당하게 판단하는 능력
서로 다른 일이나 사물을 종류에 따라 가려내는 능력
다음(daum) 한국어 사전은 분별력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러나 삶 속의 분별력은 이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능력을 넘어서서,
한 사람의 시간과 성정이 빚어낸 고유한 문양과 같다.
분별력은 지식처럼 외워 담는 것이 아니다.
살면서 몸에 밴 습관과 마음의 깊이를 따라
서서히 새겨지는 삶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분별력이 단순히 배우고 익혀서 곧장 갖출 수 있는 것이라면,
분별력이 없는 사람도 언제든 즉시 분별력이 있는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만약 그랬다면 세상은 벌써 더 살 만한 곳이 되었을 것이다.
분별력이 그토록 쉽다면, 매일 무리하게 차선을 바꾸던 운전사가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했을 것이다.
항상 화를 못 참고 직원에게 소리를 지른 상사가, 곧장 인내심 많은
성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분별력은 마치 오래된 항아리 속 장맛처럼, 천천히 발효되는 여정을 거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패와 후회, 부끄러움이 양념이 된다.
살면서 내게도 그런 순간들은 자주 얼굴을 내밀었다.
그 부끄러움과 슬픔 앞에서 서툴게 대처한 순간들이 쌓이며, 분별력이 자랐다.
내뱉은 말 때문에 괴로워하고, 성급한 실수로 되돌리고 싶은 경험들이
결국 우리 안의 분별력을 단단하게 키워준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하루는 크고 작은 분별의 순간이 늘 찾아온다.
저녁에 귀가한 배우자가 힘들어 보일 때, 내 피곤함을 먼저 토로할지,
“오늘 하루 어땠어?” 하고 묻는 한마디를 건넬지,
아이가 숙제를 미루고 있을 때, 화를 내며 억지로 책상 앞에 앉히려 할지,
작은 격려 한마디로 용기를 북돋워줄지,
설거지를 미뤄둔 싱크대를 보고 “또 내가 해야지” 하고 짜증을 낼지,
“오늘 내가 조금 더 하자” 하고 웃으며 받아들일지...
가정에서조차 사소한 순간을 어떻게 분별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온도가 바뀐다.
분별력은 결국 내 안의 속도와도 같다.
너무 빨리 달리면 함께 가는 이를 놓치고, 너무 늦게 멈추면 내 자리를 잃는다.
일상에 널려 있는 수많은 순간 앞에서 언제 멈추고, 언제 나아갈지를 아는 것,
그 리듬을 조율하는 것이 분별력이다.
오늘 하루,
너무 서두르지 말고 한 번쯤 멈추어 숨을 고르자.
너무 머뭇거리지 말고 필요한 순간엔 과감해보자.
작은 조율이 하루를 한결 편안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야고보서 1:5)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쉼이 있는 주말 보내세요!
사진. pixabay